천국으로 가는 길에 선 사람들, 김동현 연출가에게 묻다

제2차 대전 당시 세계적으로 독일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나치는 유태인들을 동원하여 선전 영화를 찍어 적십자에 보냈다.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이러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수용소 유태인들이 각자 주어진 역할을 맡아 구성된 대본대로 광장과 벤치에서 연기하며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연극은 11월 8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동현 연출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작품 소개 부탁드린다.


연극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민간인 수용소를 방문했던 적십자 대표의 회상이다. 독일은 수용소에 방문하는 적십자단을 속이기 위해 유태인들을 이용해 연극을 만든다. 실제 독일 나치가 체코 테레진의 강제 수용소 일부를 수리해 선전 영화를 찍은 사실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이 작품은 규칙, 역할놀이 등 지극히 연극적인 요소들과 특성을 통해 비극을 부각시킨다.


- 연극 ‘다윈의 거북이’, ‘영원한 평화’, ‘피리부는 사나이’에 이어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작품을 네 번째 연출한다. 애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나와 나이가 같다. 연극 ‘다윈의 거북이’를 연출할 당시 작가가 한국에 왔다. 이틀간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마요르가 작가의 가장 훌륭한 점은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연극이라는 장르로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피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부합하고 실제적으로 유용한 질문들을 던진다. 이런 면에서 마요르가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다.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때가 있었는데, 개런티를 거의 안 받다시피 해준 적도 있을 만큼 인연이 깊다.


- 작가가 철학을 전공했다. 작가의 작품 연출을 위한 철학 공부를 따로 했는지?


연출가로서 철학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철학적 명제들이 적절히 도입될 수 있도록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한다. 연출가가 작품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요르가 작가는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 철학 교수다. 작가가 깊은 사유를 가진 덕분에 삶에 대한 질문을 현실과 상황에 적절하게 던진다. 물론 어떤 관객들은 작품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반면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연극을 결합시키며 즐기는 관객도 많이 만났다.

 


-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작가 스스로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과거 작품들보다 부담이 더 컸다. 작품이 갖는 질문 자체가 무겁다. 하지만 유태인 학살이라는 주제가 우리 삶과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한국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과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번갈아가며 생긴다. 무서운 것은 가해자들에게 실천의 명제가 너무나 분명해서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학대, 반감, 증오, 민간인 학살 등을 위장하는 가짜 사실이 많다. 이런 현실 위에 축적되는 질문들이 연극으로 펼쳐진다.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절묘한 반복을 통해 의미를 확대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 속 증기기관차의 연기와 가스실의 연기 등 단어와 상황 모두가 이중적으로 들린다. 연극과 극장이라는 요건을 통해 의미 있는 체험을 시켜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연출과 배우가 작품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러한 과정이 힘겨운 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즐겁다.


- 공연 시작 초반부인데,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든 연극을 만들고 나서 ‘충분하다, 만족스럽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 그러나 첫 공연을 보고 나서 배우들에게 개인적인 박수를 보냈다. 좋은 진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나 혼자 관객이었다. 앞으로는 모든 배우들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면서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 향후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내년도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극단에서 페이크다큐멘터리 연극 ‘착한사람, 조양규’, 연극적 다큐멘터리 ‘말들의 무덤’을 잇는 3부작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모두 유효하게 이중적으로 구성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 사건들을 표현하고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70~80년대 많은 한국인들이 노동인력으로 외국에 수출되다시피 했다. 역사는 사실만 기억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진실들을 연극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한국인이라는 태도, 지킬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발견하고 구상해 갈 예정이다.

 


남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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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코르코르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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