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알몸 축제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희망찬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여러 형태로 자신의 각오와 소원을 비는 행위나 행동들을 한다. 필자의 기억으로 여섯 살 때인가. 오 형제를 거느린 필자의 부친은 새해 첫날 무슨 생각이셨던지 새벽에 자고 있던 아들들을 모두 깨워 동네 뒷산 약수터에 데리고 가셨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웃옷을 벗은 채 냉수마찰을 하며 ‘정신일도하사불성’ 구호를 외쳤다. 부친이 선창을 하면, 우리 독수리 오형제들은 목청껏 구령을 따라 했다. 마치 군대 훈련을 받는 것처럼. 그리고는 아버님께선 각자 소원을 빌라고 말씀하셨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등산객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했다. 아버지가 무서워 울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을 때 그중 한 노부부가 어린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며 ‘복돈’ 100원의 거금을 쥐어 주셨다. 노부부는 “아빠 말씀 잘 듣고 용기를 가져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덕담까지 해주셨다. 나는 그 말씀에 얼었던 몸과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따스해졌다. 정말 웃지 못할 이상하고도 신기한 체험을 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렸을 때 냉수마찰의 추억과 신비한 경험 탓에 나는 인생을 살면서 가끔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 힘들 때면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 산중턱의 냇가에 몸을 담근 후 답답했던 문제들을 크게 소리쳐 외치곤 했다. 그러고 나면 왠지 막혔던 근심 걱정이 한순간에 확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는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간혹 있었다.
미소기 마츠리
벌써 40년이 지난 이 추억이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온 국민이 사랑하고 즐기는 축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름 하여 ‘미소기 마츠리’, 바로 알몸 축제가 그것이다.
일본의 축제 용어 중에는 ‘하라이’와 ‘미소기’라는 말이 있다. ‘하라이’는 불제, 즉 신에게 빌어 죄·재앙·부정 등을 떨쳐 버리기 위한 의식이라고 말하며, ‘미소기’는 자신의 죄와 부정 그리고 나쁜 액운 등을 깨끗하게 씻어 내기 위해 강물이나 냇가에 들어가 몸을 씻는 행위를 뜻한다. 이 ‘미소기 마츠리’는 알몸 축제, 일명 ‘하다카 마츠리’는 또는 ‘목욕 축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한과 대한 사이에 행해지는 이 마츠리는 일본의 한중 축제 중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축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알몸 축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본의 알몸 축제 중 15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알몸 축제가 매년 10월에 열린다. 효고 현 히메지 시에서 열리는 나다의 싸움 축제는 ‘메가의 싸움 축제’라고도 불리는데,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마을을 지켜주는 미코시(신을 모신 가마)를 서로 부딪치며 그해 마을의 번영과 행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이 축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키사이 마츠리’로도 유명하며, 일본의 수많은 싸움 축제 중에서도 단연 최대 규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전부터 이미 이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알려져 있었으며, 전후에 더욱 특색 있는 축제로 유명했다. 야다이(포장마차)를 성대하고 호화롭게 만들어 서로 싸우는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모습은 해외에까지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했다.
알몸 촉제의 달 2월에는 곳곳에서 다양한 알몸 축제가 열린다. 수천 명이 참가하는 아이치 현 이나자와 시의 ‘코노미야 알몸 축제’는 매년 음력 정원 13일에 열리는데, 오후부터 벌거벗은 모습의 건강한 남정네들이 신오토코에게 자신들의 몸을 비비면 행운이 온다고 믿어 웅장한 남성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축제로 유명하다. 이 축제는 에도 시대 말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축제로 ‘야나추신사’가 메인 행사인데, 낮부터 시작해 그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또, 카나가와 현 후지사와 시 카타세카이간 히가시하마라는 어촌에서는 새해에 마을을 지켜주는 미코시를 메고 경루 바닷가에 나가 무병장수와 복을 비는 ‘에노시마 한중가마행렬성회’라는 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천 년을 이어 내려온 중요문화재인 ‘쿠로이시사 소민 축제’는 ‘빈고풍토기’에 등장하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역병을 쫓아내 주는 소머리를 한 신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하룻밤을 재워 준 형제에게 보답하기 위해 허리에 띠를 둥글게 맨 사람들은 역병을 면하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축제는 몇 년 전 지나친 누드로 경고 처분을 받아 이 축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한편, 어린아이와 부자지간은 물론 외국인까지도 함께 참가하며 즐기는 ‘기후시 이케노 카미쵸 니케노우에 알몸 축제’에는 빨간 띠를 한 사람이 그 해 신의 아들로 임명되어, 이를 보좌하는 분홍색 보좌인들과 함께 마을을 지나 강가에 나가서 소원을 빌게 된다. 특히, 이 축제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참가하는 축제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지상수구전을 연상케 하는 ‘하코자키궁 축제’와 아주 작게는 참가 인원이 50명도 채 안 되는 ‘철포주 한중 목욕’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알몸 축제가 일본 열도를 달구고 있다.
우리네 마음이나 일본인의 마음이나
이러한 알몸 축제의 특징은 ‘세시풍속’을 기준 삼아 기획, 참여하고 치르는 행사라는 점이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다르게 불리며 존재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세시풍속이라고 일컫는 용어가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연중행사’란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시풍속 혹은 연중행사에서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 연중행사란 ‘각별한 의미가 부여된 날을 맞이하여 일상과의 차별화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된 바 있다.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다. 결국 축제와 세시풍속의 핵심적인 요소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날’이란 사실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네 마음이나 일본인들의 마음이 다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풍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정초에 온몸을 정결하게 하고 복을 비는 전통 민속놀이가 발달되어 오지 않았던가 싶다.
글, 사진_석현수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예술감독 artst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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