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예술가 되겠다”…안무가 김성용 인터뷰

김성용은 화려한 이력을 걸어온 무용인이다. 그는 1997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최연소 금메달 수상자로 주목받았다. 이후 일본 콩쿠르 한국인 최초 입상자, 2003년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 최우수안무가 선정, 해외 단체와 다채로운 협업 등 굵직한 발자국을 남기며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갔다. 현재도 국내외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는 11월 17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제34회 서울무용제에서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무용인의 꿈’이라 불리는 상이건만 수상 직후 극장 한 켠에서 만난 김성용의 얼굴은 담담했다. 하지만 입가엔 그동안의 고생을 씻어낸 듯 엷은 미소가 그어져있었다. 제34회 서울무용제에서 가림다댄스컴퍼니의 이름을 건 안무작 ‘초인’으로 대상을 수상한 김성용을 만났다.


내 안의 정의를 꿈꾸다


제34회 서울무용제의 대상이 발표됐을 때, 그는 무대에서 자신처럼 단단한 어투로 “정의로운 예술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예술가로서의 기백이 느껴지는 단출하고 강직한 대답이었다. 흥미로운 수상소감에 대해 묻자 “정의롭다는 말은 다들 아실거다. 조금 더 개인적으로 비춰보자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었던 것, 좋아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무용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 의지를 제 안에서 ‘정의롭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제34회 서울무용제에서 안무작 ‘초인’을 선보였다. ‘초인’은 김성용이 대본과 안무를 동시에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안무는 그가 우연한 기회에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접하게 되면서 구상한 것이다. 김성용은 이번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동안 ‘니체’라는 인물에 무관심했다. 그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신은 죽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간단하지만 세고, 명료한 말이었다. 내가 정의로운 예술가라 생각하는 지점과 가장 부합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성용이 이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도 다르지 않다. 그는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자기 자신을 잃지 말자는 것”이라며 “그것이 중심이었고, ‘신은 죽었다’는 말의 의미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고 주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초인’의 안무를 ‘자신으로 다시 돌아와 보고 느낀 것들’로 녹여냈다. 안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식으로 풀기엔 너무 거대한 주제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나로 다시 돌아온 순간을 생각했다. 이 작품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나는 어디있지’, ‘나는 어떻게 표현하지’를 생각했을 때 주로 안무가 떠올랐다. 제 안에서 찾기보다 저로 다시 돌아왔을 때 느낀 것들이 하고 싶은 소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김성용은 “무용수들과의 소통에서 친절할 수 없었던 상황”을 꼽았다. ‘초인’에 참여한 무용수들은 모두 수당이나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가림다댄스컴퍼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각자 자신의 일을 갖고 있어 연습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그가 다들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기억이 스치는지 그의 얼굴엔 약간의 미안함이 비쳤다.


“모든 걸 설명하고 설득한 다음 무용수들을 이 작품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야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원하는 상황을 못 만들어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하루 일과를 미룬 것처럼 말이다. 오늘 하지 않으면 작품이 풀어지지 않을 거라는 겁이 났던 것 같다. 신체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작품인데 많이 몰아붙였다. 제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오늘 이 상으로 많이 풀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웃음)”

 


“상 받을 수 있었던 이유?…보이는 그대로의 이펙트”


그는 이번 공연에서 ‘니체’라는 철학자의 방대한 사상을 춤으로 녹여냈다. ‘초인’의 안무는 어려운 주제를 시각적으로 쉽고 강렬하게 풀어내며 눈길을 끌었다. 김성용은 제34회 서울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보이는 그대로의 이펙트가 있었던 것 같다”며 “보는 이들이 자극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 않았나 한다. 내가 생각했던 주제들도 차분하고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다. 작품의 임팩트가 있고, 그 포인트를 잘 연결한 것은 분명하다”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성용에게 무용가로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잠깐의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생각을 정리한 뒤에는 특유의 담담한 얼굴로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이라 조곤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좋은 작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 같기도 하고, 나의 만족감인 것도 같다. 언제 어디서 공연되는 작품인가에 따라서도 ‘좋은 작품’의 기준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용은 향후 바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일본의 부토 무용가와 함께 3년 간 한?일 간을 오가는 협업이 계획돼 있고, 미국 미시시피에 있는 벨헤븐발레단에서 자신의 안무작을 지도할 예정이다. 현재 스위스에서 안무할 작품도 협의 중에 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힘이 실려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실질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용의 거침없는 행보는 제34회 서울무용제의 대상 수상으로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가 수상소감에서 “제 직업이 안무가가 되는 순간이 지금이라 생각한다”고 밝힌 것처럼, ‘진짜 안무가’가된 김성용이 ‘정의로운 예술가’로서 보여줄 앞으로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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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가림다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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