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출→살인→?' 놀 줄 아는 '국민엄마'
작성일2013.11.25
조회수2,443
6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김혜자
1인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드라마·영화 뜸하다고? 만날 보는 엄마는 안 해야지"
30년 넘게 '국민엄마'로…"내가 자격이 있을까?"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아이, 씨X.” 국민엄마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나도 내 마음대로 말할 권리가 있다고.” 가운데 손가락 하나만 세워 ‘손가락욕’도 했다.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무대. 배우 김혜자(72)의 얼굴에 익살이 돌았다. 골수암에 걸린 10세 소년에서 아이를 돌보는 간호사 장미할머니까지 1인 11역이다. 노배우의 얼굴이 11개의 초상화가 됐다. “처음엔 죽는 줄 알았다.” 김혜자가 쏟아내야 하는 대사만 A4 43장 분량이다. 무대를 오가며 왈츠도 추고 아이처럼 노는 것도 쉽지 않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여기에 우리 인생이 다 있어서”다.
“10년 전에 이 작품 하자는 제의가 왔을 때는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근데 이번에 다시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건 내가 해야 해’ 싶더라. 대본 보면서 ‘아 그래. 삶이란 이런 거야’란 생각도 많이 했고. ‘삶이 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 걸까’ ‘알지도 못하면서 왜 두려워하지?’ 같은 고민을 소년 등의 입을 통해 돌아보는 게 흥미로웠다.”
연극 ‘다우트’ 이후 6년 만의 무대 복귀다. 그간 드라마와 영화 외출도 뜸했다. 자상함 뒤에 숨겨진 광기를 보여준 영화 ‘마더’(2009) 이후 출연한 작품이라곤 시트콤 한 편(‘청담동 살아요’)이 전부다. 김혜자는 “해가 지날수록 작품 고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김혜자는 “여기서 제대로란 말이 중요하다. 작품 선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민엄마 캐릭터를 피한 거 아니냐고? 엄마라서 싫은 게 아니다. 어떤 엄마인 게 중요하다. 어떤 쪽에서 조명했나를 보는 거다. 하던 거만 하면 솔직히 흥미없잖나. 보는 분들도 마찬가질 테고. 내가 뭔가를 찾아내는 게 재미있다.”
1980년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 후 30년 넘게 ‘국민엄마’로 불렸다. 훈장 같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배우로서는 좋지만 엄마로서는 내가 과연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싶다. 누군가 어떤 자리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주위의 헌신이 필요하잖나. 난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에게는 미안했고.”
데뷔 시절 얘기를 꺼내자 “한심했지”라는 답이 먼저 나왔다. 1963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혜자는 “데뷔 초에는 연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열정만 있었지.” 김혜자는 “신인시절 도망치듯 결혼했다”는 말도 꺼냈다. 그래서 어떤 후배에게도 연기로 야단친 적은 없다고 했다. “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순수한 배우다. 김혜자는 “집에서 가만히 공상하는 게 취미”라며 웃었다. 젊어서는 담배를 즐겨 피우며 자유를 누렸던 그다. 골초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촬영장 가면 흡연 장소부터 찾았는데…. 딸 덕분에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됐다.”
알고 보면 속에 불이 있다. 무던해 보이지만 일할 때면 불이 붙는다. 김혜자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소품 팀이 준비해 온 인형 눈을 떼 달라고 했다. 원작에 ‘눈코 입이 다 떨어졌다’고 나왔는데 말끔한 새 인형이라 통일성이 흐트러진단다. 그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우리나나 경제학박사 2호이자 미 군정 때 재무부장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책임감을 새기며 자라왔다. 50년 넘게 큰 탈 없이 연기활동을 이어온 비결이다. “젊어서는 실수해도 괜찮지. 웃으면서 넘겨줄 수 있으니. 하지만 난 이제 실수하면 안 될 나이지 않나.”
22년 동안 양촌리 김 회장댁 부인으로 살다 가출(드라마 ‘엄마가 뿔났다’)했고 살인(영화 ’마더‘)까지 했다. “바로 이 맛이야.” 27년 동안 조미료 광고 속에서 포근함을 속삭였던 배우의 그 다음은 뭘까. “난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다. 정해진 답이 어딨나. 나한테는 그게 답이다. 대본에 ’처음 느낌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란 말이 있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고.”
△12월29일까지 서울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 1588-0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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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아이, 씨X.” 국민엄마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나도 내 마음대로 말할 권리가 있다고.” 가운데 손가락 하나만 세워 ‘손가락욕’도 했다.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무대. 배우 김혜자(72)의 얼굴에 익살이 돌았다. 골수암에 걸린 10세 소년에서 아이를 돌보는 간호사 장미할머니까지 1인 11역이다. 노배우의 얼굴이 11개의 초상화가 됐다. “처음엔 죽는 줄 알았다.” 김혜자가 쏟아내야 하는 대사만 A4 43장 분량이다. 무대를 오가며 왈츠도 추고 아이처럼 노는 것도 쉽지 않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여기에 우리 인생이 다 있어서”다.
“10년 전에 이 작품 하자는 제의가 왔을 때는 별로 다가오지 않았다. 근데 이번에 다시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건 내가 해야 해’ 싶더라. 대본 보면서 ‘아 그래. 삶이란 이런 거야’란 생각도 많이 했고. ‘삶이 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 걸까’ ‘알지도 못하면서 왜 두려워하지?’ 같은 고민을 소년 등의 입을 통해 돌아보는 게 흥미로웠다.”
연극 ‘다우트’ 이후 6년 만의 무대 복귀다. 그간 드라마와 영화 외출도 뜸했다. 자상함 뒤에 숨겨진 광기를 보여준 영화 ‘마더’(2009) 이후 출연한 작품이라곤 시트콤 한 편(‘청담동 살아요’)이 전부다. 김혜자는 “해가 지날수록 작품 고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김혜자는 “여기서 제대로란 말이 중요하다. 작품 선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민엄마 캐릭터를 피한 거 아니냐고? 엄마라서 싫은 게 아니다. 어떤 엄마인 게 중요하다. 어떤 쪽에서 조명했나를 보는 거다. 하던 거만 하면 솔직히 흥미없잖나. 보는 분들도 마찬가질 테고. 내가 뭔가를 찾아내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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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 후 30년 넘게 ‘국민엄마’로 불렸다. 훈장 같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배우로서는 좋지만 엄마로서는 내가 과연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 싶다. 누군가 어떤 자리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주위의 헌신이 필요하잖나. 난 연기밖에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에게는 미안했고.”
데뷔 시절 얘기를 꺼내자 “한심했지”라는 답이 먼저 나왔다. 1963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혜자는 “데뷔 초에는 연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열정만 있었지.” 김혜자는 “신인시절 도망치듯 결혼했다”는 말도 꺼냈다. 그래서 어떤 후배에게도 연기로 야단친 적은 없다고 했다. “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순수한 배우다. 김혜자는 “집에서 가만히 공상하는 게 취미”라며 웃었다. 젊어서는 담배를 즐겨 피우며 자유를 누렸던 그다. 골초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촬영장 가면 흡연 장소부터 찾았는데…. 딸 덕분에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됐다.”
알고 보면 속에 불이 있다. 무던해 보이지만 일할 때면 불이 붙는다. 김혜자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소품 팀이 준비해 온 인형 눈을 떼 달라고 했다. 원작에 ‘눈코 입이 다 떨어졌다’고 나왔는데 말끔한 새 인형이라 통일성이 흐트러진단다. 그만큼 자신에게도 엄격하다. 우리나나 경제학박사 2호이자 미 군정 때 재무부장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책임감을 새기며 자라왔다. 50년 넘게 큰 탈 없이 연기활동을 이어온 비결이다. “젊어서는 실수해도 괜찮지. 웃으면서 넘겨줄 수 있으니. 하지만 난 이제 실수하면 안 될 나이지 않나.”
22년 동안 양촌리 김 회장댁 부인으로 살다 가출(드라마 ‘엄마가 뿔났다’)했고 살인(영화 ’마더‘)까지 했다. “바로 이 맛이야.” 27년 동안 조미료 광고 속에서 포근함을 속삭였던 배우의 그 다음은 뭘까. “난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다. 정해진 답이 어딨나. 나한테는 그게 답이다. 대본에 ’처음 느낌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란 말이 있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고.”
△12월29일까지 서울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CGV신한카드아트홀, 1588-0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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