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발레리나 김지영은 무대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때론 관능적인 루비였다가 때론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고, 한없이 짙은 사파이어처럼 우아하고 도도한 매력을 뿜어내기도 한다. 가장 차갑고도 뜨겁게, 매혹적이면서도 청초하게. 무대 위에서 그녀는 그 모든 것으로 빛난다.
지난 12일, 인터뷰를 위해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지영은 무대 위와는 조금 달랐다. 재치 있는 농담, 시니컬과 소녀 감성을 넘나드는 표현,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주관을 놓치지 않는 강단이 동시에 느껴졌다. 국내 발레계를 대표하는 스타 발레리나라 하기엔 소탈한 모습이었다. “내일, 오늘 그리고 지금에 충실한다”는 그녀와 함께 춤 이야기를 나눴다.
유일하게 교체되어 무대에 올랐던 ‘호두까기 인형’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지영은 2000년에 이 작품에 처음 출연했다. 매년 오르는 송년 공연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무용수에겐 쉽지 않은 작품이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기교가 체력적 부담이 몹시 커서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작품이에요. 하지만 해가 갈수록 마지막 인사할 때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은 캐롤송과 함께 인사를 하거든요. 공연을 잘했든 못했든 간에 신나요. 무용수는 이때 더 바빠서 송년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요. 이 작품에서 그런 분위기를 받고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남긴 무대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시기, 공연 중간에 한 번도 투입된 적 없던 그녀가 크리스마스 날 2막 중간에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녀는 “수석무용수는 아니었고, 여러 가지 주역을 연기하던 시기였어요. 솔리스트 역을 하는 날이었죠. 2막 중간에 주역 무용수가 다쳤었어요. 솔리스트를 기다리다 갑자기 옷을 바꿔 입고 ‘마리’ 역으로 무대에 올랐죠”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어 “관객들은 놀랐을 거예요. 노란 머리가 까만 머리가 돼서 나타났으니.(웃음). 한 번도 맞춰보지 않은 파트너와 가장 어려운 파드되를 추게 됐어요. 저는 별 부담 없이 췄지만, 주변에서 더 떨면서 봤죠. 스릴 있는 공연이었어요”라며 웃었다.
그녀에게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을 묻자 “항상 이맘때면 봐야 하는 축제 같은 작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지영은 ‘성탄절 케이크’같은 익숙함도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이지만 진짜 매력은 ‘음악’이라 설명했다.
“‘호두까기 인형’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가장 큰 이유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이에요. 그의 음악 중 가장 아름다워요. 물론 송년 발레, 동심이란 이름에 가려져서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심오함도 있고, 슬픔도 있거든요. 그게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무용수, 김지영
김지영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발레를 시작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그녀는 몸무게는 20kg이 넘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말랐었고, 잘 먹질 않아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감기를 달고 살만큼 약했다. 발레는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발레’에 꽂혔다.
“어느 날 발레에 꽂혔어요. 이유도 없어요. 친구들이 다리 찢기를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요. 그 당시엔 발레가 흔하지 않아서 더 매달렸던 것 같아요. 나서서 학원도 알아보고요. 어머니께서 제가 하도 그러니 학원을 데리고 가셨죠. 운 좋게 좋은 선생님께 가게 됐어요. 다른 걸 했을 땐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발레를 하면서 칭찬을 받았어요. 칭찬에 눈이 멀어서 시작한 거죠.(웃음)”
그렇게 시작한 발레가 벌써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용수로 성장했고, 이제는 ‘발레’가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됐다. 오래도록 춤을 추며 슬럼프에 빠진 적은 없냐고 묻자 “슬럼프는 굉장히 자주 빠져요”라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정말 자주 온다’는 그녀의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특별하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어요. 견디는 거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어요. 춤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오고요. 제가 완벽주의가 있어요. 완벽주의자들은 하나가 잘못되면 아예 다 흐트러 버리잖아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든지, 포기하든지요. 예전엔 그런 스타일이라 더 힘들었어요. 그런데 저를 알게 되니까 많이 나아지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되더라도 흐트러진 상황에서 다시 가려고 노력해요. 너무 아깝잖아요. 이 코너만 돌면 문이 있는데.”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발레리나의 몸은 고통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발레리나는 매 무대에서 또는 그 아래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김지영은 그 노력에 대해 “너무나 정직한 것”이라 설명했다. ‘삶이 원래 그러한 것 아니냐’는 선문답이었다.
“힘들죠. 하지만 원래 삶이 그런 거 아닐까요? 정말 정직하잖아요. 당연하고 기본적인 거죠. 노력하지 않으면 성과가 없는 것. 이것만큼 정직한 게 없어요. 오히려 감사해야죠. 인간인지라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요. 한 만큼 얻어지는 게 가장 안 억울한 것 같아요. 이 세상엔 억울한 일이 너무 많잖아요. 한 만큼 얻어져서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춤? 지금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김지영에게 발레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인간 김지영에겐 ‘발레’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은 저를 ‘발레하는 김지영’으로 더 많이 알아요. 그냥 김지영으로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발레가 빠지면 폼도 안 나고요.(웃음)”
긴 팔과 긴 다리의 완벽한 신체조건, 기본을 놓치지 않는 결점 없는 테크닉,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감정까지. 김지영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무용수다. 무대 위의 그녀는 가끔 ‘무결(無缺)’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의 무구함은 ‘원칙’과 ‘노력’에서 나온다. 김지영이 스스로 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도 바로 ‘기본’이다.
“기본이 가장 중요해요. 클래식 발레에서 지켜야 할 것들은 ‘지키자’는 주의예요. 물론 모던 발레나 새로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클래스를 할 때도 기본을 굉장히 지키려고 해요. 기본이 틀어지면 무용수는 오래 춤출 수가 없거든요.”
일반적으로 ‘발레’하면 ‘클래식 발레’를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그 안에는 클래식 발레, 드라마 발레, 모던 발레 등 그 세부 갈래가 여러 개 있다. 김지영에게 좋아하는 발레 부문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망설이는 듯한 미소로 설명했다.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 비련의 여주인공이나 서정적인 작품에 어울리고 싶은데, 많은 분들이 저에게 ‘카르멘’이나 ‘돈키호테’가 잘 어울린다고 해요.(웃음) 제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굉장히 좋아해요. ‘카르멘’ 같은 센 캐릭터를 할 때 재밌긴 해요. 제가 어디에서 남자를 그렇게 홀리겠어요.(웃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할에 들어서 감정 연기를 하는 게 좋아요. 비련의 여주인공이든, 악한 역할이든 이야기 안에서 감정의 높낮이 있는 작품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쏟아내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하고요. 손끝에도 모두 의미가 다 담겨 있고.”
그녀는 해보지 않은 역할 중에서는 ‘오네긴’을 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다. ‘오네긴’은 ‘드라마 발레의 정수’라 불릴 만큼 드라마틱한 감정이 백미인 작품이다. 김지영은 “‘오네긴’은 정말 감정을 쏟아내는 작품이잖아요”라며, 이어 “새로운 움직임을 익히는 것도 재미있어요. 얼마 전 안무가 김보람 씨와 함께했던 ‘한팩 솔로이스트’에서도 많이 배웠고, 지나면서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라고 말했다.
국립발레단 ‘이젠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
김지영은 1997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입단 후 두 달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해 놀라움을 안겼고, 2001년까지 단체에서 활동했다. 이후 2002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그랑 쉬제’로 입단한 뒤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며 활발할 활동을 펼쳤다. 그녀가 다시 국립발레단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2009년 7월이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의 타이틀을 달고 이어온 세월로만 따지면 15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함께한 셈이다. 그만큼 국립발레단은 그녀에게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제는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는 말로 국립발레단의 현재를 설명했다. “국립발레단은 정말 빠른 성장을 했어요. 그릇이 많이 커졌죠. 예전에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헝그리 정신으로 더 열심히 했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죠. 예전의 상황을 알고 혜택 받는 것과 모르고 혜택 받는 것과는 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열심히 해서만 되는 게 아니라 프로페셔널하게 자기 일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요. 지금도 다들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래야 더 큰 발전이 있는 발레단이 될 것 같아요.”
국립발레단의 성장을 말하자면 최태지 단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996년 예술감독으로 첫 부임한 후 ‘해설이 있는 발레’ 등의 성공적인 대중화 프로그램으로 국립발레단을 국내 정상의 발레단으로 키워냈다. 특히, 김지영은 최태지 단장이 아끼는 무용수이자 국립발레단의 성장을 함께한 동지로서 특별한 관계다.
김지영에게 올해를 마지막으로 퇴임하는 최태지 단장에 대해 묻자 금세 눈길이 멀어졌다. 짧은 한숨도 이어졌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듯했다. “보내드리려니까 아쉽죠. 왜 안 아쉽겠어요. 항상 절 믿어주셨거든요. 믿어주는 사람이 떠나면 참 그래요. 엄마 없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있죠. 새로운 단장님을 모시고 잘해야겠지만, 그래도 아쉬워요.”
내년부터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새로운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취임한다. 새로운 단장에 대한 기대를 묻자 ‘수진 언니’라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온다. “아직까지 수진 언니라고 하네요.(웃음)”라고 말한 그녀는 이내 곧 호칭을 바로잡았다. “강수진 단장님과 97년도에 ‘노틀담의 꼽추’로 함께 인터뷰를 했었어요. 그렇게 알게 됐죠. 제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강수진과 친구들’ 공연에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고요.”
그녀는 새로운 단장님에 대해 “새로울 것 같아요”라는 말로 기대를 대신했다. “춤을 추신 분이기 때문에 잘 이해를 해주실 것 같아요. 당신이 오래 춤을 추셔서 무용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실 것 같아요. 그래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김지영에게 ‘2013년을 반추해 보자면’이란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슬쩍 웃더니 “사춘기”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사춘기?”라고 되묻자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큰 문제없이 지나왔어요. 하지만 저 자신을 들여다봤을 때는 많이 힘들었던 해였어요. 말도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게 진짜 힘든 거거든요. 정신적으로 생각할 것도 많았고, 몸도 아주 좋은 건 아니었어요. 예전엔 새해에 큰 의미를 뒀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부터는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됐어요. 지나가는 하루잖아요. 2014년이 된다고 해서 열시에 일어나는 제가 7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되진 않을 거고요. 저는 내일, 오늘 그리고 지금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녀는 얼마나 무대에서 춤을 추게 될까. 김지영의 대답은 “모른다”다. 그녀는 여전히 춤을 가장 잘 추고, 춤을 출 때 가장 밥벌이를 잘한다. 김지영이 춤보다 다른 것을 더 잘하게 되는 날, 그 날이 바로 그녀가 ‘춤’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춤’을 가장 잘 추는 김지영을 오래도록 만나길 바라본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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