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곡차곡 감정을 쌓는 공연” 연극 ‘월남스키부대’ 연출 심원철
배꼽 빠지는 웃음과 눈물 쏙 빼는 감동이 잘 버무려진 코믹 연극 한 편이 찾아온다. 10월 개막을 앞둔 연극 ‘월남스키부대’가 그것이다. 작품은 허풍으로 중무장한 노인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월남 영웅담에 빠져 사는 뻥쟁이 노인 집에 어느 날 ‘멍’ 때리는 도둑이 침입하면서 시작된다.
연극 ‘월남스키부대’는 약 3년간 지방 기획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나왔다. 작품은 관객의 반응을 토대로 대본을 착실히 완성했다. 생생한 관객 반응으로 마무리된 대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탄탄한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만남의 광장’, ‘조폭 마누라’ 등에 출연한 배우 심원철이 맡는다. 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3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
- 연극 ‘월남스키부대’가 오는 10월 개막을 앞두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예전에는 스태프 한 명 없이 혼자 모든 일을 다 해왔다. 이번에는 전문 스태프와 함께 작업하는데 오히려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웃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전문가들이고, 최고의 스태프들인데 일은 더 많아져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 3년 전과 비교해 이번 공연은 어떤 점이 달라졌는가.
극적인 부분에서 변경된 것은 30% 정도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그렇다. 일단 출연하는 배우가 바뀌었기 때문에 전달되는 느낌도 다르다. 3년 전에는 모든 것을 제가 다 관리했다. 이제는 그나마 줄어들어 연출과 배우에만 신경 쓰면 된다. 그러다 보니 극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팀워크는 3년간 동고동락 하듯 지냈기 때문에 두말 할 것 없이 좋다.
- 작품을 기획하고 공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저는 생각날 때마다 단어를 한 개씩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단어가 어느 정도 모여 줄이 되고, 줄에서 페이지로 이어지고, 한 권의 책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단어가 꽤 많이 모였길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덧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단어들을 모아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없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매일 다르고 특별히 무언가를 강조하는 극도 아니다. 작품이 전해주는 ‘위로’는 강요가 아닌 자연스럽게 나오는 관객의 반응이다.
- 한 작품 안에서 ‘연출’과 ‘배우’, 두 가지 역을 소화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가.
힘든 점은 제 연기를 연출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 연기를 누군가에게 지적받거나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다. 그동안은 관객이 제 연기를 평가해주는 가장 좋은 거울이었다. 제가 해석한 부분이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달됐는지는 관객 반응에 많이 의존했다. 이번에는 연기력을 검증받은 배우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배우들에게서 또 다른 나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수정할 부분도 많이 찾는다.
- 연출 입장에서도 트리플 캐스팅이 도움이 많이 되나.
어차피 연기라는 것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자기가 살아온 세월만큼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배우들이 같은 역을 연기하면 다른 느낌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에서 ‘김노인’ 역은 서현철, 이한위 배우와 제가 트리플 캐스팅됐다. 서현철 배우는 개구쟁이처럼 무대 위에서는 정말 자유로운 ‘김노인’을 연기한다. 이한위 배우는 강성(强性)의 ‘김노인’으로 눈매부터 세다. 이런 부분에서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굉장히 궁금하다.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 치유 받다
- 심원철 배우가 그린 ‘김노인’은 어떤 모습인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김노인’은 숨기는 것이 많다. 슬퍼도 그것을 ‘슬프다’고 표현하기보다는 계속 참고 오히려 웃음으로 풀어낸다.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꽁꽁 숨긴다. 연극 ‘월남스키부대’도 마찬가지다. 작품은 ‘김노인’처럼 계속 감정이 쌓이는 공연이다. 이야기는 쌓이고 쌓이다가 마지막 10분에 쌓아둔 것을 다 털어놓는다. 작품과 ‘김노인’은 그런 점에서 닮아있다.
- 연출과 배우로서 바라본 연극 ‘월남스키부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연출로서는 다양한 캐릭터가 한 작품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노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다르듯 그들이 보여주는 ‘김노인’ 또한 다른 사람이다. 캐스팅된 배우들은 공교롭게도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 함께하게 된 것이 아니다. ‘다양성’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관객들은 다양한 인물을 통해 똑같은 슬픔과 웃음을 전달받게 된다. 극을 볼 때, 배우마다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다.
배우로서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에게 치유를 받는다.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함인데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힐링’ 받는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도, 배우도 모두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든다.
- 작품을 연출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신경을 쓴다’라기 보다는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감동은 나중 문제였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건방지게 보이지는 않을까, 도를 넘지는 않을까, 훈계하는 것이 아닐까 등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없다.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나요?’라고 물어보는 극일뿐이다.
- 대학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과정이 궁금하다.
캐스팅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제작사 측에 ‘이런 색을 가진 배우였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했다. 이한위 배우는 저도 부탁을 해 함께하게 됐다. 서현철 배우 캐스팅 소식은 지금도 놀라는 부분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배우라 생각한다. 작품을 공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효과’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캐스팅이라 자부한다.
- 관객에게 연극 ‘월남스키부대’가 어떤 공연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삶을 살아갈 힘을 더해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또는 평소 잊고 지냈던 주변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공연을 보고 나서는 안부 전화를 걸게 하는 극이 되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공연을 볼 관객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공연 중에는 꼭 전화기를 꺼주시기 바란다. 전화기만 꺼주시면 배우들이 알아서 최선을 다해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것이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뭉치기 힘든 배우들이 함께한다. 관객 입장에서도 캐스팅이 매력적일 거라 생각한다. 캐스팅을 보고 좋아하는 배우, 보고 싶은 배우가 출연하는 날에 꼭 공연을 보러 오면 좋겠다. 이번 공연은 넉 달 동안 진행되지만 잘되면 1년 내내 무대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구성으로는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백초현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아담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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