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왜 아시아 유물에 집착했을까
작성일2014.10.31
조회수2,332
국립중앙박물관 '동양을 수집하다' 특별전
中반가사유상·중앙亞 벽화 '천불도' 등
조선총독부박물관 수집 문화재 1600점
식민통치 기원 '선녀와 나무꾼' 눈길
내년 11월11일까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15년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며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경복궁 내에 건립한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는 물론 고대 일본 유물을 모으는 데 적극적이었다. 1918년에는 중국 현지에서 직접 진열품을 수집하고, 1923년에는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서 120여건의 고대 일본 유물을 구입했다. 이들의 문화재 수집은 단순히 박물관의 컬렉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19세기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스스로를 ‘동양 유일의 문명국’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낙후된 동양을 문명세계로 인도할 적임자라 자부했다. 박물관은 이러한 자신들의 논리를 역사에서 찾아오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는 ‘동양(東洋)을 수집하다: 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 특별전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진출했던 일본인들이 모은 아시아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이왕가박물관·미술관이 수집한 유물들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문화재는 약 1600건. 유물들은 기원전 중국의 전국시대와 중국 한대 고분 출토품부터 일본의 근대 미술품까지 2000년 세월을 망라했다. 그간 일제시대 수집된 유물들이 간헐적으로 전시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유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수집되고 전시됐는지를 통사적으로 살펴볼 기회는 사실상 드물었다.
우선 기원전 중국 청동시대의 청동 장식 유물과 낙랑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세계적 골동품회사였던 야마나카 상회의 주인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기증한 ‘수정 감잎 네 잎 청동장식’은 기원전 만들어져 수천년이 지났지만 수정 안쪽에 그려진 인물의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낙랑의 유물 수집에 열을 올렸던 것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낙랑을 강조해 한민족의 역사적 자주성을 폄훼하기 위해서였다. 6세기 중국 수나라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석문’은 도쿄제국대 교수였던 세기노 다다시가 1918년 중국 베이징의 골동품점에서 당시 쌀 몇백가마를 살 수 있던 1162.5원에 구입했던 유물. 해학적이지만 기품있는 사자상 두 개가 당시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불교 조각 중 백미로 꼽히는 북제시대의 반가사유상도 나왔다.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간결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춰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아시아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의 회랑을 장식했던 벽화 ‘천불도’와 둔황 석굴에서 발굴한 ‘여행하는 승려’ 같은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아울러 예전 조선총독부 건물(철거된 중앙청)의 중앙홀에 걸려 있던 벽화도 공개됐다.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와다 산조(1883~1967)가 그린 두 개의 그림다. 한국과 일본에 공통으로 전해오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주제로 그렸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이를 토대로 영구적인 식민통치를 기원하는 섬뜩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일본이 치밀하게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의의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148매의 도판이 수록된 이번 전시도록을 홈페이지와 및 정부 공공누리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11월 14일 대강당에서 한국·일본을 비롯해 서양 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02-2077-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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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15년 식민통치 5주년을 기념하며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경복궁 내에 건립한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는 물론 고대 일본 유물을 모으는 데 적극적이었다. 1918년에는 중국 현지에서 직접 진열품을 수집하고, 1923년에는 후쿠오카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서 120여건의 고대 일본 유물을 구입했다. 이들의 문화재 수집은 단순히 박물관의 컬렉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19세기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스스로를 ‘동양 유일의 문명국’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낙후된 동양을 문명세계로 인도할 적임자라 자부했다. 박물관은 이러한 자신들의 논리를 역사에서 찾아오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는 ‘동양(東洋)을 수집하다: 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 특별전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진출했던 일본인들이 모은 아시아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이왕가박물관·미술관이 수집한 유물들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문화재는 약 1600건. 유물들은 기원전 중국의 전국시대와 중국 한대 고분 출토품부터 일본의 근대 미술품까지 2000년 세월을 망라했다. 그간 일제시대 수집된 유물들이 간헐적으로 전시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유물들이 어떤 맥락에서 수집되고 전시됐는지를 통사적으로 살펴볼 기회는 사실상 드물었다.
우선 기원전 중국 청동시대의 청동 장식 유물과 낙랑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세계적 골동품회사였던 야마나카 상회의 주인인 야마나카 사다지로가 기증한 ‘수정 감잎 네 잎 청동장식’은 기원전 만들어져 수천년이 지났지만 수정 안쪽에 그려진 인물의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낙랑의 유물 수집에 열을 올렸던 것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낙랑을 강조해 한민족의 역사적 자주성을 폄훼하기 위해서였다. 6세기 중국 수나라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 석문’은 도쿄제국대 교수였던 세기노 다다시가 1918년 중국 베이징의 골동품점에서 당시 쌀 몇백가마를 살 수 있던 1162.5원에 구입했던 유물. 해학적이지만 기품있는 사자상 두 개가 당시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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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불교 조각 중 백미로 꼽히는 북제시대의 반가사유상도 나왔다.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간결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춰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아시아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의 회랑을 장식했던 벽화 ‘천불도’와 둔황 석굴에서 발굴한 ‘여행하는 승려’ 같은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아울러 예전 조선총독부 건물(철거된 중앙청)의 중앙홀에 걸려 있던 벽화도 공개됐다.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와다 산조(1883~1967)가 그린 두 개의 그림다. 한국과 일본에 공통으로 전해오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주제로 그렸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이를 토대로 영구적인 식민통치를 기원하는 섬뜩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일본이 치밀하게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의의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은 148매의 도판이 수록된 이번 전시도록을 홈페이지와 및 정부 공공누리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11월 14일 대강당에서 한국·일본을 비롯해 서양 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02-2077-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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