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그 산속에 활짝 피었습니다

뮤지엄 산 '판화, 다시 피다' 전 호크니·이영애 등 국내외 41명 작가 작품 113점 전시 현대미술 거장 앤디 워홀의 '꽃' 다색목판에 새긴 키스의 세시풍속도 눈길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이 판화기법의 하나인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꽃’(1970)(사진=뮤지엄 산).


[원주(강원)=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판화는 작품이기보다 인쇄물의 하위장르였다. 어떤 사실이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보조도구였다. 근원을 따지자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 시작했다. 하지만 인쇄기술을 익혔던 장인들이 점차 작가로서 자의식을 갖추면서 판화도 미술 장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회화의 대중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들도 판화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고야나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는 유화로도 유명하지만 판화작품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내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서 내년 2월 28일까지 여는 ‘판화, 다시 피다’ 전은 지난해 열었던 ‘한국화와 판화’ 전에 이은 두 번째 대형 판화전이다.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꽃’(1970)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석판화 ‘순회’(1993) 등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외 작가 41명의 113점을 선보인다. 목판화에서부터 동판화, 실크스크린, 석판화, 오목판화 등 판화기법을 총망라한 전시 덕에 다양한 판화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구성했다. 그중 ‘판화, 한국미술로 펴다’에서는 이영애 작가를 비롯해 국내 중견작가 20여명의 최신 판화를 볼 수 있다. 특히 이 작가의 ‘부유하는 삶’은 동판화 기법 중 하나인 에칭과 에쿼틴트로 작업한 것으로 커다란 바위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독특한 질감의 풍경을 내보인다. 이 작품으로 이 작가는 2003년 크라코프 국제판화트리엔날레에서 상을 받았다. 동판화의 한계를 넘어 섬세한 돌 표면과 입체감을 부각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영애의 ‘부유하는 삶 03’. 동판화의 제작기법 중 하나인 에칭과 에쿼틴트로 바위의 질감을 표현했다(사진=뮤지엄 산).


예리한 도구로 동판을 긁는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쓴 강승희의 ‘새벽’ 연작은 판화라기보다 얼핏 수묵화처럼 담담한 느낌이다. 신장식의 목판화 ‘아리랑-생명력’은 날카로운 선의 숱한 교차 속에서도 또렷하게 피어 있는 노란구절초를 통해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나타냈다.

‘판화, 시대로 피다’에선 ‘벽안에 비친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풍속과 풍경’이란 부제를 달았다.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일본의 목판화 기법인 우키요에로 작업한 다색목판화를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와 폴 자쿨레가 남긴 당시 우리의 세시풍속과 풍경은 한국민속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쓰일 정도로 표현이 정밀하다. 작가적인 고민이 녹아있는 예술작품은 아니라고 해도 판화가 본래 지닌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두 명의 아이들’(1925). 일본의 전통판화기법인 우키요에로 작업한 다색목판화다(사진=뮤지엄 산).


워홀과 호크니, 프랭크 스텔라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가가 판화는 ‘판화, 현대미술로 피다’란 주제 아래 모았다. 팝아트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워홀은 판화가 가진 복제성에서 현대적인 미술의 특성을 간파한 작가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대부분의 작품은 실크스크린을 통해 캔버스에 찍어낸 작품들이다. 이 주제를 둘러보면 판화를 통해 현대미술이 어떤 형태로 발전해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판화는 회화와 공통의 조형적 요소를 지니면서도 고도의 기술적 다양성, ‘찍어낸다’는 제작방식 덕에 특이한 예술영역이 됐다”며 “판화가 지닌 독자적인 예술성에 대한 재점검과 더불어 우리의 현대 판화세계를 조망하고자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판화와 인쇄물의 차이는?

판화는 회화처럼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판형을 만들어 찍어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인쇄물일 수도 있다. 반면 작가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판형을 만들고 또 직접 찍어 제작하며 수량을 한정하는 ‘에디션’이 있다는 점에서 인쇄물과 차이가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석판화 ‘순회’(1993)(사진=뮤지엄 산).



▶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신문 PDF바로보기
▶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 모바일 투자정보 ‘투자플러스
▶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3.0’ | ‘이데일리 본드웹 2.0
▶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1666-2200 | ‘ON스탁론’ 1599-2203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