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가 말한다 '이것은 그림이다'
작성일2015.10.20
조회수1,033
극사실회화 1세대 지석철 '의자로 쓴 스토리' 전
작품에 '빈 의자' 그려 넣어 '의자 작가'
현대인 상실·고독·불안감 표현
사진 같은 다큐멘터리 회화 20여점
극사실 화풍에 초현실성 녹여 이색
관훈동 노화랑 30일까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광활한 아프리카 케냐의 평원. SUV 자동차 한 대가 흙먼지를 내며 달려오고 있다. 그 아래로 동물 두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간다. 얼핏 보면 하늘이나 산 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면 우측상단에 드리워진 거대한 의자 그림자가 사진이 아님을 말해준다. 작품제목은 ‘시간, 기억 그리고 존재: 나쿠루, 케냐’다.
황토빛 물결 위에 나룻배 한 척이 떠 있다. 배 앞에는 소년이 앉아 있다. 고개를 돌린 소년은 누군가를 응시하는 듯하다. 시선을 따라간 뒤편에는 마치 소년이 만든 것 같은 작은 나무의자가 넘어져 있다. ‘부재의 기억: 메콩, 캄보디아’다.
사전정보 없이 도록이나 지면에 인쇄한 그의 작품을 보면 영락없이 ‘사진’이다. 다만 작품마다 들어가 있는 작은 나무의자 때문에 ‘합성사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는 있다. 의심은 전시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풀린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작품은 사진이 아닌 작가가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국내서 ‘극사실회화’ 1세대로 꼽히는 극사실주의작가 지석철(62·홍익대 교수)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서 3년 만에 개인전 ‘의자로 쓴 스토리’를 연다. ‘의자 작가’로 불리는 지 작가의 스토리는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의 대표 청년작가로 제12회 프랑스 파리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은 지 작가는 맥주컵 크기 정도의 작은 의자 100여개를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이 작품 덕에 지 작가는 파리비엔날레가 선정한 10대 작가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조각이었던 작은 의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화폭의 주인공으로 변모해 지 작가의 극사실화 속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지 작가는 ‘의자 작가’로 불리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는 의자는 현대인의 상실감과 불안, 고독, 부재 등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자 작가의 ‘아바타’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회화’ 2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포착한 다양한 이미지와 빈 의자를 함께 담아 작품 속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관람객이 작품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빈 의자의 울림과 더불어 그림 속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전시제목을 ‘의자로 쓴 스토리’로 잡은 이유다.
다른 스토리를 한 점 보자. 단발머리에 물방울 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조각상을 찍고 있다. 양팔을 좌우로 펼친 채 다리를 살짝 벌리고 있는 나체의 남성 조각상은 뒷모습만 보인다. 조각상의 다리 사이에 어김없이 작은 나무의자가 보인다. 화면 왼쪽 중앙 상단에는 영어로 ‘언유주얼 데이’(Unususal Day)라고 적혀 있다. ‘예사롭지 않은 날: 아테네, 그리스’란 제목이 붙었다.
김복영 미술평론가는 “지석철 작가는 정밀하고 정치한 극사실화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낯선 이방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부재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며 “화면에 자신의 분신이자 아이콘인 작은 의자를 말하는 사람으로 등장시켜 관람객에게 확장된 리얼리즘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100호짜리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개월가량이 걸릴 만큼 지 작가의 그림은 치밀한 계산과 섬세한 손작업으로 이뤄졌다. 혀를 내두를 만한 극사실적인 화풍이지만 르네 마그리트가 즐겨 활용한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과 만난 덕에 은근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도 많다. 지 작가는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精緻)한 묘사력은 그저 시작일 뿐”이라며 “대상과 이미지를 응시하는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그 상황을 어떤 맥락에서 재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광활한 아프리카 케냐의 평원. SUV 자동차 한 대가 흙먼지를 내며 달려오고 있다. 그 아래로 동물 두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간다. 얼핏 보면 하늘이나 산 위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면 우측상단에 드리워진 거대한 의자 그림자가 사진이 아님을 말해준다. 작품제목은 ‘시간, 기억 그리고 존재: 나쿠루, 케냐’다.
황토빛 물결 위에 나룻배 한 척이 떠 있다. 배 앞에는 소년이 앉아 있다. 고개를 돌린 소년은 누군가를 응시하는 듯하다. 시선을 따라간 뒤편에는 마치 소년이 만든 것 같은 작은 나무의자가 넘어져 있다. ‘부재의 기억: 메콩, 캄보디아’다.
사전정보 없이 도록이나 지면에 인쇄한 그의 작품을 보면 영락없이 ‘사진’이다. 다만 작품마다 들어가 있는 작은 나무의자 때문에 ‘합성사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는 있다. 의심은 전시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풀린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작품은 사진이 아닌 작가가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국내서 ‘극사실회화’ 1세대로 꼽히는 극사실주의작가 지석철(62·홍익대 교수)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서 3년 만에 개인전 ‘의자로 쓴 스토리’를 연다. ‘의자 작가’로 불리는 지 작가의 스토리는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의 대표 청년작가로 제12회 프랑스 파리비엔날레에 초청을 받은 지 작가는 맥주컵 크기 정도의 작은 의자 100여개를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이 작품 덕에 지 작가는 파리비엔날레가 선정한 10대 작가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조각이었던 작은 의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화폭의 주인공으로 변모해 지 작가의 극사실화 속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지 작가는 ‘의자 작가’로 불리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는 의자는 현대인의 상실감과 불안, 고독, 부재 등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물이자 작가의 ‘아바타’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근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회화’ 2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포착한 다양한 이미지와 빈 의자를 함께 담아 작품 속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관람객이 작품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빈 의자의 울림과 더불어 그림 속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전시제목을 ‘의자로 쓴 스토리’로 잡은 이유다.
다른 스토리를 한 점 보자. 단발머리에 물방울 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조각상을 찍고 있다. 양팔을 좌우로 펼친 채 다리를 살짝 벌리고 있는 나체의 남성 조각상은 뒷모습만 보인다. 조각상의 다리 사이에 어김없이 작은 나무의자가 보인다. 화면 왼쪽 중앙 상단에는 영어로 ‘언유주얼 데이’(Unususal Day)라고 적혀 있다. ‘예사롭지 않은 날: 아테네, 그리스’란 제목이 붙었다.
|
김복영 미술평론가는 “지석철 작가는 정밀하고 정치한 극사실화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낯선 이방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부재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며 “화면에 자신의 분신이자 아이콘인 작은 의자를 말하는 사람으로 등장시켜 관람객에게 확장된 리얼리즘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100호짜리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개월가량이 걸릴 만큼 지 작가의 그림은 치밀한 계산과 섬세한 손작업으로 이뤄졌다. 혀를 내두를 만한 극사실적인 화풍이지만 르네 마그리트가 즐겨 활용한 데페이즈망(depaysement·엉뚱한 결합) 기법과 만난 덕에 은근히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도 많다. 지 작가는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精緻)한 묘사력은 그저 시작일 뿐”이라며 “대상과 이미지를 응시하는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그 상황을 어떤 맥락에서 재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 당신의 생활 속 언제 어디서나 이데일리 ‘신문 PDF바로보기’
▶ 스마트 경제종합방송 ‘이데일리 TV’ | 모바일 투자정보 ‘투자플러스’
▶ 실시간 뉴스와 속보 ‘모바일 뉴스 앱’ | 모바일 주식 매매 ‘MP트래블러Ⅱ’
▶ 전문가를 위한 국내 최상의 금융정보단말기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3.0’ | ‘이데일리 본드웹 2.0’
▶ 증권전문가방송 ‘이데일리 ON’ 1666-2200 | ‘ON스탁론’ 1599-2203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