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즈 "꿈 접으려고 한 순간, 마지막 기회가 왔다"(인터뷰)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힙합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국내에서도 주류 음악으로 안착했다. 힙합이 차트를 휩쓸고, 래퍼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여성 래퍼들도 마찬가지. Mnet 여성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가 여성 래퍼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힘을 보탰다. 지난해 시즌 2가 방송됐고 여러 명의 ‘스타’가 탄생했다. 헤이즈는 그 중의 한 명이다. 예쁜 마스크에 랩 실력까지 갖춰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찾는 인기인이 됐지만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래퍼로서 그녀의 인생은 위태위태했다.

“제 자신과 약속했었어요.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미련없이 접기로요. 데드라인을 딱 두 달 남겨놓은 시점에 ‘언프리티 랩스타’가 들어왔죠. 저한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어요.”

헤이즈는 고향이 대구다.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냈고 고교 졸업 후 부산에 위치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구도 부산도 연예계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장다혜(헤이즈 본명)가 래퍼라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래퍼가 될 생각은 못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사를 썼어요. 제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는데 재미를 느꼈죠. 대학교 3학년 때 통계학 수업 시간에 가사를 쓰다가 교수님께 걸렸어요. 저희 과에서 제일 무서운 교수님이어서 혼날 줄 알았는데 제 가사를 보시더니 ‘너 그거(랩) 해. 공부는 뜻이 있으면 할머니 돼서도 할 수 있지만 래퍼는 할머니 돼서는 할 수 없지 않냐. 때를 놓치면 안돼. 네가 하고 싶은 걸 해’고 말씀해주시더군요.”

헤이즈는 교수의 말에 래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가족은 반대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딸이 허황된 꿈을 좇을까 걱정이 돼서였다. 당신의 마음을 알기에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했고 그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당시 성적이 바닥이었는데 그 다음 학기에 올 에이 플러스로 과 수석을 차지했다. 그런 다음 1년간 휴학하면서 서울에서 첫 번째 싱글과 미니앨범을 발표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다시 공부를 했고 다시 시간을 벌어서 싱글 두 곡 발표에 ‘언프리티 랩스타’와 인연이 닿았다.

서울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가 반대를 하는데 집에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오전에는 제과점 커피숍 오후에는 족발집 참치집 하루 1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비며 앨범 제작비며 해결했다.

“ 서울 생활 처음 1년 겨울은 거의 매일밤 울었던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알바(아르바이트)를 하니까 내가 서울에 알바를 하러 온 건지, 음악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어요. 그 전까지 살면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미친듯이 공부하고 미친듯이 일한 적이 없었는데 힘은 들었지만 그 시간들이 저를 강하게 단련시킨 것 같아요.”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 후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매일 스케줄이 있고 몸이 바빠졌다. 아버지는 그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헤이즈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돈 벌지마’를 부른 후 그녀의 오빠는 “나 출근 안 해도 되냐”고 눙치며 동생을 대견해했다.

헤이즈는 올 상반기를 목표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래퍼 헤이즈로 새롭게 출발선에 선다.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거짓없이 담아내는 래퍼이자 아티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지금부터 진짜 헤이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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