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딴따라' 이승철의 네버엔딩 '뮤직' 스토리(종합)
작성일2016.09.26
조회수2,163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30년 동안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로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가수 이승철이 데뷔 30주년 기념 소회를 이처럼 밝혔다. 이승처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승철 3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 및 라이브 DVD 앨범 시사회’를 열고 DVD 앨범 일부를 공개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인연’, ‘네버엔딩 스토리’, ‘희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말리꽃’ 등 숱한 대표곡을 보유한 이승철은 “이제 음악을 조금 알 것 같다”고 겸손한 소감을 말했다. 그는 “1994년 뉴욕에서 ‘색깔 속의 비밀’이란 곡을 녹음할 때 당시 50세였던 프로듀서가 ‘노래는 50세부터’라고 했다”면서 “올해 오십이 됐다. 예전에는 음악을 들려드리는 데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무대에 몰입할 수 있다. 거기서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승철은 1985년 10월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데뷔곡 ‘희야’에 대해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하다 부활이란 밴드를 만나 자취방에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LP판 시절 데뷔한 그는 “요즘엔 무형의 음원 시대”라며 “우리 땐 노래 하나만 잘해도 스타가 됐지만 요즘엔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당시엔 건전 가요가 있었다. 영어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고, 장발을 하거나 선글라스도 쓰면 안됐다”며 “격변의 격변을 거쳤다”고 30년 전을 회상했다.
다사다난했던 그는 부활 보컬로서 첫 콘서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꼽았다. 그는 “공연 포스터를 직접 붙이러 다니고, 악기도 직접 날랐다. 하지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추억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솔로로 데뷔했을 당시였다. 그는 “마지막으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감격스러웠다”며 자상한 가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30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힘은 공연에 있었다. 이승철은 “공연에서 노래는 기본”이라며 “콘서트의 음악적 분위기는 매번 바꾸고 있는데, 20년 이상 함께 한 밴드, 27년을 함께 한 음향 엔지니어, 17년을 함께 한 코디네이터 등 오랜 시간 함께 한 스태프들이 있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30번 정도 콘서트를 하는데 20년 넘게 했으니 호흡이 잘 맞는다”면서 “콘서트 횟수는 늘 25번에서 30번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이 유지된다. 꾸준한 활동이 목소리 유지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DVD는 지난 7월 1~2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치러진 서울 공연을 담고 있다. 그는 “10월 7일 발매와 동시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된다”면서 “수익을 목적으로 한 앨범이 아니라 팬들과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 팬들은 아날로그 감성이다. 25주년 기념 앨범도 공연장에서 1만장 넘게 팔렸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태생적 딴따라’라고 칭한 이승철이 꿈꾸는 향후 30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찾아가는 콘서트’를 희망했다. ‘무궁화 삼천리’라는 올해 콘서트 타이틀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앞으로는 음악적 장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음악이 저를 찾아와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찾아가는 콘서트다. 제 목소리가 다하는 날까지 전국 방방곳곳을 찾아가겠습니다.”
가수 이승철이 데뷔 30주년 기념 소회를 이처럼 밝혔다. 이승처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승철 3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 및 라이브 DVD 앨범 시사회’를 열고 DVD 앨범 일부를 공개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인연’, ‘네버엔딩 스토리’, ‘희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말리꽃’ 등 숱한 대표곡을 보유한 이승철은 “이제 음악을 조금 알 것 같다”고 겸손한 소감을 말했다. 그는 “1994년 뉴욕에서 ‘색깔 속의 비밀’이란 곡을 녹음할 때 당시 50세였던 프로듀서가 ‘노래는 50세부터’라고 했다”면서 “올해 오십이 됐다. 예전에는 음악을 들려드리는 데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무대에 몰입할 수 있다. 거기서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승철은 1985년 10월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데뷔곡 ‘희야’에 대해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하다 부활이란 밴드를 만나 자취방에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LP판 시절 데뷔한 그는 “요즘엔 무형의 음원 시대”라며 “우리 땐 노래 하나만 잘해도 스타가 됐지만 요즘엔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당시엔 건전 가요가 있었다. 영어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고, 장발을 하거나 선글라스도 쓰면 안됐다”며 “격변의 격변을 거쳤다”고 30년 전을 회상했다.
다사다난했던 그는 부활 보컬로서 첫 콘서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꼽았다. 그는 “공연 포스터를 직접 붙이러 다니고, 악기도 직접 날랐다. 하지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추억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솔로로 데뷔했을 당시였다. 그는 “마지막으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감격스러웠다”며 자상한 가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30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힘은 공연에 있었다. 이승철은 “공연에서 노래는 기본”이라며 “콘서트의 음악적 분위기는 매번 바꾸고 있는데, 20년 이상 함께 한 밴드, 27년을 함께 한 음향 엔지니어, 17년을 함께 한 코디네이터 등 오랜 시간 함께 한 스태프들이 있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30번 정도 콘서트를 하는데 20년 넘게 했으니 호흡이 잘 맞는다”면서 “콘서트 횟수는 늘 25번에서 30번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이 유지된다. 꾸준한 활동이 목소리 유지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DVD는 지난 7월 1~2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치러진 서울 공연을 담고 있다. 그는 “10월 7일 발매와 동시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된다”면서 “수익을 목적으로 한 앨범이 아니라 팬들과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 팬들은 아날로그 감성이다. 25주년 기념 앨범도 공연장에서 1만장 넘게 팔렸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태생적 딴따라’라고 칭한 이승철이 꿈꾸는 향후 30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찾아가는 콘서트’를 희망했다. ‘무궁화 삼천리’라는 올해 콘서트 타이틀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앞으로는 음악적 장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음악이 저를 찾아와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찾아가는 콘서트다. 제 목소리가 다하는 날까지 전국 방방곳곳을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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