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헤드 소년 英 최고 사진작가 되다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 영국작가 첫 한국 개인전 반항의 아이콘 '스킨헤드'부터 매퀸 등 톱 디자이너 작품까지 상업과 예술의 경계 넘나들어 "패션은 결정적 자기표현 수단" 사진·영상·설치 등 110여점 대림미술관서 내...
닉 나이트의 ‘핑크 파우더’(2008).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드레스에 분홍빛 파우더를 흩날리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사진=대림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버렸다. 몸에는 문신과 피어싱을 했다. 외모만으로도 남들과 확연히 구분됐다. 사람들은 그들을 ‘스킨헤드’라고 불렀다. 1970년대 중·후반 영국사회에서 ‘스킨헤드’는 노동자계층의 자녀가 사회에 반항하기 위해 모이면서 형성됐다. 무리지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공포감을 자아냈다. 중산층 부모 밑에서 비교적 부족함 없이 자란 10대 후반의 한 소년은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기이한 옷차림이었음에도 그 자체가 ‘힘’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무리 안에 들어갔다. 그들이 듣는 음악을 듣고 또 어른스러워 보이는 소녀들과 어울리며 몰려 다녔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는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포토그래퍼로 꼽히는 영국 출신 사진작가 닉 나이트(58)의 국내 첫 전시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나이트가 촬영한 작품 가운데 엄선한 사진·영상·설치 등 110여점을 6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인다.

◇ “패션 결정적 자기표현 수단…스킨헤드가 알려줘”

닉 나이트가 1979년부터 1990년대까지 영국 런던의 스킨헤드 집단을 찍은 작품 중 하나인 ‘더기’(Dougie)(사진=대림미술관).
1958년 런던에서 태어난 나이트는 필름으로 인화하는 사진을 디지털그래픽으로 매만지는 기술을 접목한 1세대 작가로 꼽힌다. 그는 스스로를 ‘이미지 만드는 사람’(image maker)으로 칭했다.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패션, 디지털 영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사진작업을 해왔다.

전위적인 작업 스타일 덕에 알렉산더 매퀸, 존 갈리아노, 이브 생 로랑, 톰 포드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그의 카메라 앞에 자신의 패션작품을 기꺼이 선보였다. 디자이너 외에도 비요크, 레이디 가가, 케이트 모스 등 유명 뮤지션과 배우·모델들이 그의 피사체가 돼 새로운 매력을 뽐냈다. 테이트모던과 빅토리아앨버트미술관, 사치갤러리, 보스턴미술관 등 세계서 내로라하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덕분에 그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0년에는 대영제국훈장(OBE)을 수훈하기에 이른다. 2015년에는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심리학자이던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이트는 1970년대 후반 런던으로 돌아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시 본머스 앤드 폴 예술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 중 하나는 10대 후반 직접 스킨헤드에 가담해 그들의 일상을 보고 느낀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선 나이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스킨헤드를 카메라에 담았고 이를 계기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작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킨헤드의 강렬한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다.

전시 개막에 앞서 대림미술관에서 만난 나이트는 “내가 스킨헤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들의 모습과 패션이 어떤 힘을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패션은 가장 기본적이고 민주적인 예술형태”라고 강조한 뒤 “어떤 옷차림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날의 기분을 비롯해 성적 기호나 정치성향까지 나타낼 수 있다. 패션이 가장 결정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란 것을 스킨헤드가 알려줬다”고 말했다.

◇ 패션화보의 고정관념을 깨다

나이트의 전시작을 보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련의 패션사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나이트가 시도했던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사진이 이내 주류가 되고 다른 사진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유행이 된 덕이다.

닉 나이트의 ‘레드 코트’(1987). 요지 야마모토가 디자인한 옷을 나오미 캠벨이 입고 촬영했다(사진=대림미술관).
특히 여성을 상품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1980년대 패션사진의 흐름을 거부하고 오로지 의상 자체에만 집중했던 작품이 돋보이는데 ‘디자이너 모노그래프’의 섹션 아래 모은 사진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페인팅 & 폴리틱스’에서 보이는 사진들은 스스로를 ‘이미지 메이커’라 칭한 나이트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과 회화, 디지털그래픽 기술을 결합해 평소에 인지할 수 없는 순간을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담았다.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드레스에 분홍빛 파우더를 흩날리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핑크 파우더’가 대표적이다.

통상적으로 사진은 피사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는 다큐멘터리 기능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 접어들면서 사진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필름에 사진을 담는 것이 아니라 0과 1의 디지털기호로 저장하고 조작할 수 있기 때문. 이에 대해 나이트는 이렇게 답한다.

“결정적인 순간 피사체를 포착하는 것에만 집중하던 사진은 이제 끝났다. 지금은 휴대폰을 통해서도 사진을 찍고 있고 자유자재로 매만질 수 있다. 이제 사진은 한순간을 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을 담아야 한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촬영자의 인식이자 직관이다. 이젠 그것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성인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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