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부부 이야기 > 성병숙

황혼의 완전한 사랑을 하는 이점순 할머니 황혼의 사랑을 유쾌하고도 행복하게 풀어 놓아 잔잔한 감동을 주는 한 편의 연극 < 늙은 부부 이야기 >에 이순재와 함께 커플을 이루어 이점순 할머니를 연기하는 여배우가 있다. 그 이름은 성병숙. 전혀 색다르지 않은 주제 속에서의 색다름을 보여주고 있는 < 늙은 부부 이야기 >와 그녀는 서로 닮아 있다. “30분 동안 울었어요. 진짜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죠. 저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몇 일 있다가 연락이 온 거예요.”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는 < 늙은 부부 이야기 >의 이점순 할머니 역을 해주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극중 박동만 역을 맡고 있는 이순재와 한 쌍의 노부부처럼 앉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순재와 성병숙과 같이 잘 어울리는 짝은 없어 보인다고들 한다. 단아한 인상에 곱게 늙은 할머니와 같은 분장을 한 성병숙은 < 늙은 부부 이야기 >의 이야기 보따리를 한소끔 풀어낸다. “이점순 할머니의 인생을 돌아보면 꿈많은 소녀시절을 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결혼해서 정말 억척스럽게 살았을텐데 남편이 암 걸려서 죽고 세 딸과 남았을 때 그 할머니는 전사가 되어 있었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요. 그래서 투철하게 아이들 먹이고 공부 가르치고, 시집 보내고, 그 다음엔 몸과 마음이 건조해져 버리게 된 할머니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는 그 때 이점순 할머니를 찾게 되고 외로울 때 친구가 생기게 된다. 자신을 토닥거려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런 사람이 생겼다면 옛날로 돌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세상이 촉촉해지고, 갈라졌던 논바닥 같은 마음에 싹이 트고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을 만끽하다가 아깝게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사랑하는 이를 혼자 두고 떠나는 마음이 절절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 연극을 하면서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요.” 그녀의 감수성은 예민하다. 냉철하게 연기에 몰입할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몰입하다가도 감성적인 부분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에는 여지없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사랑스러운 전경을 사람들 앞에서 직접 그려 그 그림을 드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녀도 그런 질문을 수없이 했었고, 사춘기 시절을 지나 사랑의 열병을 앓고 지난 시점에서 다시금 그 사랑을 보게 되었을 때 사랑의 감정의 시각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을 두고 가야한다는 그 마음을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한다면 아예 이런 사랑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떠날 때 떠나더라도 사랑할 것 같아요. 연극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노을처럼 활활 태우고 가거든요. 완성된 사랑인 것 같아요.” 노년의 사랑. 60이 넘어 동지이면서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친구이면서 애인이면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장점과 단점도 모두 사랑해 주는 마지막 노을 같은 사랑을 < 늙은 부부 이야기 >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점순 할머니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누군가가 있다고 한다면 서럽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 3학년때부터 TV를 시작했다. 학교 졸업 후 성우로 데뷔했고, MC, DJ, 개그 등 방송생활을 하였다. 젊음의 행진, 하나둘셋 등에 MC를 맡았고, 가위 바위 보, 가요앨범, 7시에 만나요 등의 DJ도 맡았다. 연극은 85년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1년에 1,2편을 하자고 마음 먹고 지금까지 32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으로 고대 90주년 기념 < 시련 >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 그대 꿈꾸고 있는가 >, <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 < 에쿠우스 >, < 돼지와 오토바이 >, < 아름다운 거리 >, < 이혼의 조건 >, < 발칙한 미망인 > 등 수많은 연극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가장 그녀의 기억에 남는 것은 이만희 작품의 < 아름다운 것 >이었는데 예쁘고,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연극이었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저는 따뜻한 연극이 좋아요. 관객이 보고 나갈 때 잔잔하게 남아서 나에게 잔잔함으로 정서적으로 언제나 남아 있는 연극을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 늙은 부부 이야기 >도 그녀가 좋아하는 연극을 닮아 있다. 사랑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 부호에 한 번 더 대답을 하자면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랑을 하면 자꾸 웃어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랑 사랑하고 난 뒤에 유지태가 바보처럼 웃더라고요. 방실방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구나.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 늙은 부부 이야기 >는 인생에 있어서 소풍과 같은 사랑이지만 완전한 사랑이라고 단언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녀는 < 발칙한 미망인 >의 모노 드라마를 끝냈다. 알콩달콩 살다가 남편이 바람 피우는 사실을 알고, 남편을 보면서 완전범죄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꿈꾸게 된다. 30,40대 아주머니들은 펑펑 울고 가고, 60,70대 분들은 인생의 선생님이 되셔서 조언도 해 주셨다고 한다. 3년 동안 꿈꿔왔던 모노드라마를 3탄, 4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싶어 한다. “금이 간 부부나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료하는 데에 일조하고 싶어요. 같이 나눌 수 있고 위로 해주고 위로 받는 그런 기회로 삼고 싶어요.” 그녀는 인생의 선배로, 인생의 후배로 알려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녀가 사는 방법은 이점순 할머니의 아름다운 사랑과도 닮아 있다. 연기에 푹 빠졌다가 다시 또 잘 나온다. 그것이 배우인가보다. 그녀는 사랑스런 할머니 역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풀어낸다. 그녀의 삶을 즐기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듯 하여 행복해 보인다.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사춘기 시절, 어린 시절을 안 놓고 있으면 언제라도 내 인생이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고요. 아무리 우리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하물며 죽더라도 인생은 정말 의미가 있는 소풍이다라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어요.” 성병숙은 그렇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다. 사랑을 나눠주고 있다. 일방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황혼의 사랑과 행복은 일방적이어도 좋다. 받을 줄도 알고 줄 줄도 아는 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성병숙은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황혼에 불태우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그녀의 인생이 의미있는 소풍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녀를 만나고 오는 이 시간 이후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내 인생이 의미있는 소풍이길 기대해 본다. --------------------- 글 : 이준한 (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김형준 (C&Com adore_me@naver.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