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분의 륙 > 유지태

절제된 연기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배우이자 제작자 유지태 지난 11월 16일 사다리아트센타에서 있었던 연극 < 육분의 륙 >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유지태를 만났다. 바쁜 일정에도 제작발표회에 참석하여 연극 < 육분의 륙 >에 대한 제작자로 배우로 이야기하는 유지태가 부러워 보인다. 무론 부러워 보인다고 한다면 원망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일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서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재미가 사실은 쏠쏠하기 때문에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그가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변모하는 과정이 대단하지도 않고 소위 말하는 삐까뻔적이지도 않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유지태가 좋다.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소담하고 창작욕에 불타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좋다는 말이다. “잠을 거의 두 세시간 밖에 잠을 못 잤어요. 그것도 차에서 잠자는 게 다죠. 연극은 맑게 깨어 있어야 하는데 멍해지고 해서 걱정이 많아요.” 그가 시간에 쫓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가을로’를 찍고 있는 탓이다. 그의 직업은 배우이다. 영화는 20% 진척이 되어있다고 한다. 시간이 된다면 조금 쉬어서 찍자고 하고 싶지만 제목이 ‘가을로’이어서 가을배경을 찍어야 하는데 자신으로 인해 늦춰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유지태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만큼 그는 남보다 몇 십 배의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지태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자신을 밝혔다. 지금은 연기를 하면서 많이 변해 말을 많이 하지만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어떤 외향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에는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제가 배우에 맞겠다 생각하는 부분은 내성적인 반면에 생각을 많이 하고 창작의 욕구가 있다는 거예요. 연기도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죠. 그러면서 훈련되어지는 부분이 남아 있는 거죠. 스스로 훈련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혼자서 피 터지게 혼자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 질타도 많겠지만 스스로 터득해서 스스로 발견하고 싶은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사람은 창작하는 것에 좋은 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는 꼭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어요. 절제된 연기, 선이 보이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외국배우로 말하자면 영화 ‘카프카’에 나왔던 카프카로,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로 출연했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옛날 모습 같은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최근 외국배우로는 피아니스트 여선생으로 깐느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살아있는 연기의 어머니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이자벨 위페르 같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이 분들을 보면 ‘절제된 연기라는 것이 무엇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돼요. 물론 미하엘 하네케 같은 감독을 만나서 멋드러진 연기를 보였다고 하겠지만요. 저도 이런 분들과 같이 절제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 영화는 절제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여건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들로 치면 울고, 웃고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연기를 선호하는 편이고 연출자들도 절제 연기에 대한 선을 정확히 그어 주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 않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전반적으로 밋밋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모험을 쉽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가 그런 절제된 연기를 했다면 ‘봄날은 간다’나 ‘올드보이’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일 것이다. 절제에서 진정 자유로운 것을 연기하고 싶은 유지태의 연기를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만나보고 싶다. 대학교 때는 연극연출을 했었기 때문에 그가 재미를 느끼는 연극은 퍼포먼스에 가까운 연극이었다. 소위 말하는 ‘행위예술’이 그것이다. 사운드를 많이 이용하고, 무대를 이용하고, 배우의 춤, 무용, 몸짓, 소리 등을 이용하여 다채로운 모습을 구성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연극은 아직까지 구성적인 연극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드라마가 풍성한 연극을 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꿈 같은 퍼포먼스는 지금 만들어진다 해도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할 것 같다. “제가 하고 싶은 부분은 구성연극을 하고 싶어요.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는 것은 알고요. 지금은 좋으나 싫으나 배우라서 배우적 수양을 터득하기 위하여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죠. 연극은 ‘이런 아이템으로 이런 연극을 만들면 어떨까’에서 시작해 작가들에게 시놉시스를 주면 다양한 연극들이 나올 것 같아요.” 그는 차근차근 예를 들어 주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몽상가들’에 신인으로 출연했던 에바 그린은 작품과 감독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포르노 배우를 대하듯이 보는 시선으로 인해 활발하고 대인관계가 좋았던 그녀의 생활에 파탄을 가져오게 되었는데 지금은 대인기피증으로 사람을 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연극화해서 한 번쯤 예술과 생활, 현실과의 괴리감 또는 고민 등 무겁지만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유지태의 생각이다. 욕심이 많은 제작자다운 발상이다. 연극 < 육분의 륙 >은 작년 < 해일 >에 이어 그가 출연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연극은 두 번째 작품이고 영화는 열 세번째라고 한다. 그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은 영화와 연극이다.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은 대학교 때부터였으니까 그의 꿈이 몇 십 년 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키가 크다보니 학교 때는 배우를 못하고 스텝일만 했어요. 배우를 하면서부터는 꿈이 하나 생겼는데 우선 기회가 된다면 창작극으로 소극장 무대에 서겠다는 것이었죠. 배우로서 소양을 닦고 싶은 거죠. ‘제작에 참여해 이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고들 해요 그런데 연극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잘 아시잖아요.(웃음) 재창조자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 순수한 꿈을 위해서 소극장 무대에 선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연극 < 육분의 륙 >은 연극 < 해일 >의 연출 이해제씨와 만나 처음으로 무대에 선 연극이고, 이것이 계기로 삼아 유지태는 이해제와 함께 다시 연극 < 육분의 륙 >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육분의 륙 >은 저예산 영화로 만들려고 유지태가 가지고 있던 시놉시스였다. 제목이나 줄거리는 지금의 < 육분의 륙 >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의 향락, 게임, 완벽살인 등을 그린 시놉시스였다. < 육분의 륙 >은 히치콕의 ‘현기증’이나 ‘아메리칸 싸이코’ 등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친구들의 러시안 룰렛게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향락의 도구로 이용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연극이라고 한다. “연극은 유희이기 때문에 잘 놀고, 좋은 작품으로 좋은 공연 보여드리고 싶고요. 가치 판단은 관객의 몫일 겁니다.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잘 놀고 좋은 작품으로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연습시간이 부족해서 걱정인 유지태는 영화와 연극의 강행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그가 영화 ‘가을로’나 연극 < 육분의 륙 >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한다. “최선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많이 와서 봐주시고요. 이제 연극 < 육분의 륙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반응이 어떨지는 이 녀석(< 육분의 륙 >)의 운명에 맡겨 놓겠습니다." 그는 유무비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소위 말하는 뜨거나 말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계속해서 창작물을 만들어 내겠다는 창조자의 입장에서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비록 시간에 쫓기고 심적 여유도 없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인만큼 그의 욕심이 거대해 보이지 않고 소박해 보인다. 그래서 연극 < 육분의 륙 >이 남의 아이같지 않아 보인다. 그의 꿈과 욕심이 좋은 길을 선택하여 잘 갈 수 있게 빌어주고 싶다. -------------------- 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임미란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