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추리소설의 여왕'의 자취를 쫓다, <아가사> 연습현장

<오리엔트 특급살인>< ABC살인사건>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십 대 중반의 어느 날 돌연 실종돼 자취를 감췄다. 11일 후 한 호텔에서 발견된 그녀는 열 하루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평생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창작뮤지컬 <아가사>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실종됐던 그 열 하루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지난 23일 방문한 이 작품의 연습실에서는 아가사 역의 양소민·배해선을 비롯해 전 배우진이 모여 한 주 앞으로 다가온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가사>는 <머더 발라드><블랙메리포핀스> 등을 무대에 올려온 김수로 프로듀서의 여덟 번째 프로젝트 작품이다. 신예작가 한지안이 작사를, <라디오스타>의 허수현이 작곡을 맡았고, <모범생들><히스토리 보이즈>의 김태형 연출가가 합류했다.

연습은 1953년, 시골의 저택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던 아가사 크리스티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 첫 장면부터 시작됐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오래 전 아가사의 모든 작품을 애독하며 그녀를 따랐던 레이몬드. 두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 속에서 그들이 잊고 살았던 1926년의 사건 정황이 점차 드러난다.


이 작품은 아가사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면서 아가사 주위 여러 인물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점점 어둡게 침잠했던 그녀의 깊은 내면에 주목한다. 당시 아가사는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그녀의 주위에는 남편 아치벌드 크리스티 외에도 기자 폴, 하녀 베스 등이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녀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인물은 크리스티가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 로이다. 묘한 매력을 가진 그는 실종 사건의 큰 실마리를 쥐고 있는 인물이며, 아가사의 마음 속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역할은 <나와 할아버지>의 진선규와 <넥스트 투 노멀>의 박인배가 번갈아 연기했다.

<블랙메리포핀스>의 박한근·윤나무와 <헤이, 자나!>의 김지휘는 레이몬드를 맡아 추리소설가를 꿈꾸는 소년과 27년 후 편집자의 압박에 시달리며 글을 쓰는 중년의 작가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이외에도 <필로우맨>의 홍우진과 <나와 할아버지>의 오의식이 기자 폴·편집장 뉴먼 등 1인 2역을 소화했고, <히스토리 보이즈>의 추정화와 <빨래>의 한세라가 하녀 베스와 아치벌트 크리스티의 불륜상대인 낸시로 분하며 각기 다른 빛깔을 더했다.


실종사건이 있은 지 2년 후, 아가사는 여행 중 만난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두 번째로 결혼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쥐덫>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뮤지컬 <아가사>는 실종된 기간 동안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그녀가 더욱 성숙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날 연습실에서 일별한 배우들의 연기와 인상적인 음악이 어떤 무대·조명과 만나 완성될지 기대를 높였다. 공연은 오는 12월 31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 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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