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전이 필요한 때” 김수로프로젝트 <밑바닥에서> 개막

연극 <밑바닥에서>가 2009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끼가 쓴 이 희곡은 배우 및 프로듀서로서 활약 중인 김수로가 아홉 번째로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김수로는 지난 달 28일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 이 작품의 전막을 언론에 공개했다.

1917년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밑바닥에서>는 알코올중독에 걸린 배우와 창녀, 몰락한 남작, 도박에 빠진 사내들 등 사회의 밑바닥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각기 다른 고통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루까'라는 노인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미묘한 변화를 그린다.

이날 출연과 제작을 겸한 김수로를 비롯한 전 출연진은 작품의 전막을 120분간 번갈아 가며 선보였다. 삶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던 인물들은 희망과 진실을 설파하는 루까를 만나면서 동요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품었던 희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고 더욱 깊이 절망하게 된다. 고리끼가 쓴 강렬한 대사들이 어두운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다.


배우 겸 프로듀서로서 이 작품에 참여한 김수로는 알코올중독자인 '배우'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대학시절 이 작품의 다른 등장인물인 '페페르'를 맡아 서울역, 용산역 등지에서 노숙자들과 어울리며 배역을 탐구했다는 그의 열정은 아직 변치 않은 듯 보였다.

그는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밑바닥에서>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와서 대중들에게 이름도 조금 알려졌는데, 지금이 고전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점에서 관객들과 함께 삶을 돌아보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처음에는 시끄럽고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한 그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갔을 때나 2~3일이 지난 후, 혹은 한달 후 묘한 상황에서 이 작품으로 인한 마음 속 울림을 느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라며 고전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왼쪽부터) 김수로, 임형준

몰락한 귀족 역할을 맡아 이 작품에 출연한 임형준도 출연소감을 밝혔다. 김수로의 대학 동기이기도 한 그는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이 좀 됐다. 가정도 있고 나이도 많으니 더 상업적인 작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출연하기를 참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밑바닥에서>에는 김수로·임형준 등 기성배우 외에도 조민성·김미정 등의 신인배우들이 출연한다. 이에 대해 임형준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나서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영화 단역 오디션이 전부다. 그런 배우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이런 공연을 기획한 김수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이외에도 도박꾼 '싸친'으로 분한 조영규·박한근, 정체불명의 순례자 '루까'로 분한 윤경호, 친언니와 형부로부터 학대를 당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나타샤' 역의 문진아 등 여러 배우들의 열연이 극의 깊이를 더했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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