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하고 계십니까?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제작발표회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지구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지구에서 올려다본 깜깜한 밤 하늘에는 무엇이 있을까. 광활한 세상에서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비밀리에 발사된 이후 12년간 지구와 교신이 끊겨 우주 속에 떠돌게 된 우주선 안 두 명의 우주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가 오는 4월 12일 한국 초연을 앞두고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로 영국 현대연극의 선두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데이빗 그레이그가 쓴 이번 작품은 우주미아가 되어 떠돌고 있는 두 명의 우주비행사를 비롯, 지구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들이 보내는 수많은 소통의 신호들, 그리고 이것들의 접촉과 소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엇갈리는 인간 자화상을 담아내고 있다.

번역과 연출을 맡은 이상우 연출은 "지난 9월 대본을 읽고 희한한 작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미지로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작품"이라고 이번 무대를 설명했다.

"최근 작업한 많은 영국, 미국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보면, 전통적인 극작술인 충돌, 갈등, 분노 등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을 버리고 보통 사람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장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서로 관계없는 장소와 사람들이 결국 다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 한다. 고대 마야문명 인사말이 "나는 당신입니다"이며, 상대방은 이에 "당신은 나입니다"라고 화답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바 같다."(이상우)


"저 밑에 사람들, 아무래도 우릴 잊어버린 것 같아"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이번 작품은 에딘버러, 런던, 파리, 오슬로 등 다양한 공간, 그리고 카페, 공항, 술집 등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반적인 장소 등 16개 공간에서 만나는 13명의 인물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7명의 출연 배우 중 6명이 1인 2역을 맡아 두 인물 사이 관련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영화 <해무> 촬영을 마치고 최근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 출연 중인 이희준은 이번 작품에서 세계은행에 다니는 성공한 인물 에릭과 하일랜드 술집 주인 역을 맡았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멋진 수트를 입고 나타나 "캐릭터에 맞게 힘을 준 의상인데 너무 혼자 튀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던 이희준은 "에릭이라는 인물이 평소 본 적도, 스쳐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또 과거 맡아본 적 없는 역할이라 신나고 재미있다"고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에 설레어 하면서도 "처음엔 고통스럽고 어려웠지만 인물의 본질, 이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에릭이 마음에 들어온다"고 연습 과정을 이야기 했다.

특히 7년 전부터 연극 <변> <늘근도둑 이야기> <비언소> 등 이상우 연출과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연극하고 싶다고 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드렸다"면서 "배우로서 창조하는 재미를 선생님이 많이 느끼게 해 주신다"고 덧붙였다.

"연극 자체가 퍼즐 같기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지만 장면의 연관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 최덕문은 부부관계에 위기를 맞은 중년 남편 이언과 비행물체와 통신을 시도하는 베르나르 역을 동시에 맡는다. 김소진은 이언의 아내 비비안과 또다른 인물 실비아로 분하며, 공상아는 클레어와 공항 카페 주인, 이창수는 올레그, 뇌졸중환자로 등장할 예정이다. 홍진일은 우주비행사 카시미르와 술집 주인 역을 함께 선보인다.

배우들 중 유일하게 한 명의 인물로 분하는 김지현은 런던 밤무대 댄서 나스타샤로 변신한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 같이 느껴졌다"는 그녀는 "연출님이 작품의 생명과도 같은 역할이라 말하셨는데 18세 소녀로서 만개한 꽃과 같은 기운을 갖는 인물 같다"고 설명했다.


이상우 연출

이상우 연출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공연장에 와서 실컷 별을 보고 가게 하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이번 공연에서는 영상 활용을 주목해봐도 좋을 듯 하다. 약 140여 분(쉬는 시간 제외)의 공연 시간 동안 120분이나 등장하는 영상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태왕사신기>를 비롯 영화 <해운대><화산고><7광구> 등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가 맡았다.

제작발표회에 함께 자리한 장성호 대표는 "영상이 주인공 혹은 배경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무대 뒤 LED 대형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영화 스크린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지구와 우주의 공간을 타임랩스 기법으로 표현하려 노력할 예정"이라 설명했다. 특히 "다양한 공간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적인 공간 표현이 목적이 아니라 기본 정보를 유지한 채 '결국 어디든 같은 곳일 수 있고, 한 우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이번 영상 활용의 목표이다.

우주와 지구의 어느 공간을 오가며 이어지는 장면들, 그리고 그 속에서 소통을 꿈꾸지만 아주 가끔씩만 접속이 이뤄지는 모습을 담은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는 4월 16일부터 5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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