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이야기만이 아니다” 막 오른 <프라이드> 현장

"이 작품은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연극 <프라이드> 프레스콜 현장에서 김동연 연출은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동성과 사랑을 나누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했던 사회 약자층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16일 개막한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필립, 올리버 등 두 명의 남자와 이들과 촘촘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여자 실비아가 등장해 저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와 서로에게 묻는다.


작품의 주요 장면을 공개한 프레스콜 현장에서는 1958년을 살아가고 있는 부부 필립과 실비아의 집에 동화작가 올리버가 방문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올리버가 사회적 책임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하고 억누르며 살아온 필립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장면과, 2014년으로 배경이 바뀌어 컬럼니스트이자 섹스 중독자 올리버에게 연인 필립이 헤어짐을 고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정상윤, 오종혁, 김지현(왼쪽부터)

최대훈, 김종구(가운데)

필립 역의 정상윤과 호흡을 맞춘 올리버 오종혁은 <프라이드>가 자신의 첫 연극 출연작이기도 하다. 대본을 처음 받고 "혼자서는 힘들 것 같지만 끌어주시면 무조건 하겠다고 연출님께 이야기했다."는 그는 안정적인 목소리와 연기로 무대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리허설 때 배우에게 마이크를 채워주지 않아 당황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짓기도 했는데 "대사를 객석 끝까지 전달하는 게 힘들다."면서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가짐도 잊지 않았다.

2008년 영국에서 초연된 영국 작품을 지이선 작가가 한국 무대에 맞게 각색했다. 특히 "여러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어 분량을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러닝타임이 3시간"이라며 길이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이야기한 지 작가는 "영국식 유머, 지명을 한국 관객들이 쉽게 받아드릴 수 있도록 수정했으며, 특히 실비아라는 인물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원작보다 그 인물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실비아 역은 <카페인>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 출연한 김지현과 <배수의 고도> <그날들> 등에서 활약한 김소진이 맡는다.

이날 선보인 2막 중 실비아가 여행 가방을 들고 나서며 필립과 올리버에게 하는 대사,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괜찮을 거에요."는 원작에는 없지만 지이선 작가가 새롭게 넣은 대사이기도 하다.


이명행, 김종구(왼쪽부터)


서로에게 닿아가는 올리버(박은석)와 필립(이명행)

또 다른 필립, 이명행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인식하던 1958년,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지만 자신의 감정이 육체적인 끌림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어두운 취조실 같은 병원에서 의사에게 난치병 환자 같은 대우를 받는 필립의 모습에 이어, 2014년 필립으로 등장해선 자신의 사랑에 정직하고 아름답게 인정해나가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상대역인 올리버 역은 박은석이 맡았다.


필립과 올리버 사이에서 끈끈한 역할을 하는 실비아(김소진)


<히스토리 보이즈> <수탉들의 싸움> 등에 이어 또다시 성소수자 역할을 맡은 박은석은 "게이 역이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게이 안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이 있기에 각기 다른 인물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하며 "작품들을 통해 이들이 겪어온 고통과 싸움들이 전 세계 공통적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굉장히 용감한 사람들이며 이들에 대한 존중심도 생겼다고.

이명행 역시 "처음 <프라이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땐 한 인물이 시공을 초월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컨셉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하며 "작품 속에 센 표현도 있지만 이 모두가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으며,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힐링되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배우들도 작품을 통해 정화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1인 3역으로 분하는 최대훈, 김종구도 <프라이드>를 찾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배우일 듯 하다. 이들은 동성애를 정신병이라 치부하는 폭력적인 1958년의 의사와 코스튬 플레이어로 살아가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2014년의 의문의 남자 등을 번갈아 선보인다. 과거 <김종욱 찾기>에서 최대훈을 보고 "연기의 신이라 생각했다."는 김종구와 그의 말을 넉살 좋게 받아 치는 최대훈의 모습에서  배우들 사이의 친근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따금 장면과 함께 흐르는 클래식 음악들은 차이코프스키, 라벨 등 훌륭한 작곡가이자 동성애자이기도 한 이들의 곡이다. 김동연 연출은 "편견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곧 인류의 역사이며,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한 사람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변화와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프라이드>와 연관 지어 소신을 밝혔다. 자신이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 닿기 힘겹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그린 <프라이드>는 오는 11월 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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