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소통을 하고 있나요?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개막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무관심과 이기심을 감춘 가족의 모순을 그린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 지난 8일 개막했다. 이 연극의 제작진은 개막 4일째인 11일 작품의 전막을 언론에 공개했다.

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Nina Raine)이 쓴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2010년 영국에서 초연되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낸 작품으로, 청각장애인 빌리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결여된 모순된 가족의 모습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국내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에서는 <헤다가블러>의 박정희 연출이 지휘를 맡았고, 남명렬과 남기애가 각각 빌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김준원과 방진의가 빌리의 형 다니엘과 누나 루스를 각각 맡았다. 빌리와 그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 실비아는 이재균과 정운선이 연기한다.


연극은 빌리의 가족이 각기 문학과 음악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뽐내며 격렬히 토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만의 원칙을 가족들에게 강요하는 아버지 크리스토퍼와 추리소설가 어머니 베스,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다니엘과 오페라가수 지망생 루스는 모두 빌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빌리가 청각장애인인 것을 부정하며 빌리에게 비장애인처럼 듣고 말할 것을 요구한다.

빌리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기심은 빌리가 서서히 청각을 잃어가는 여자친구 실비아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표면 위로 드러난다. 실비아를 통해 수화를 배우고 직업까지 갖게 된 빌리는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진정한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한다.


150분간 밀도 높은 연기를 펼친 배우들은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각기 출연 소감을 밝혔다. 남명렬은 이 연극의 원제목이 ‘가족’이 아닌 ‘트라이브스(tribes, 부족)’임을 상기시키며 “가족이라고 하면 보통 따뜻한 느낌을 떠올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도 그저 개개인으로 살아간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가족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극중 맡은 역할처럼 실제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남기애 또한 “작가가 개인이 가진 배타성을 이야기하고자 ‘트라이브스’라는 제목을 지은 것 같다.”며 “그 의미를 계속 생각하면서 역할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히스토리 보이즈>에 이어 두 번째로 연극에 출연하게 된 이재균은 선배들 못지 않게 흡입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1년 전 이 연극의 대본을 받았다는 그는 “모험이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빌리를 연기하기 위해 수화도 배우고 많은 연구를 했다는 그는 “청각장애인이 어떻게 세상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이 아닌 눈과 마음으로 얘기를 하는 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전했다.

빌리의 누나 루스로 분한 방진의는 이번 연극출연에 대한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간 많은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해온 그녀는 오페라가수가 되기를 원하지만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 괴로워하는 루스의 괴로움과 애정결핍에 상당부분 공감했다고. 방진의는 “평소에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서 루스를 연기하고 고민하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의 박정희 연출은 “처음에는 이 연극이 청각장애인이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거울 같은 작품’인 것 같다. 그것은 우리네 가족을 비추는 거울 혹은 사회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거울이 될 수도 있다.”며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한 소통에 대해 곱씹어볼 것을 권했다. 공연은 오는 12월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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