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매튜 본과 만나다!
작성일200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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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3월9일, LG아트센터에서는 한겨레 신문(강선만 기자) 취재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호두까기 인형!>의 안무가 매튜 본의 대담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고전발레를 이끄는 최태지 전 단장과 정통발레를 비틀어 혁신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영국의 안무가와의 흥미로운 만남! 이때 나온 주요 내용을 정리해 봤다.
최태지 : 작년 서울에서 공연된 <백조의 호수>를 보고 너무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다. 발레와 드라마, 영화 기법 등 모든 것이 높은 수준에서 만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영화처럼 빠르게 진행되었고 표현력도 대단했다. 특히 호수에서 백조가 등을 보이고 앉은채 조용히 흘러가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동시에 남자 백조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백조가 죽어가는 왕자를 안고 울부짓는 장면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과 슬픔, 인간적인 면 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받은 감동을 일일이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먼저, 본인의 작품을 어떤 장르로 불러야 하는지 알려달라.
매튜 본 : 물론 엄격히 말해 이 작품을 발레라고 할 수 없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결합을 댄스 뮤지컬 또는 댄스 시어터로 일컫는다. 여러 장르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장르를 헷갈려 하는데, 나는 이게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정해져 있는 어떤 장르의 틀을 벗어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하나의 작품일 뿐이다. 굳이 한 마디로 말하자면 ‘특수한 형태의 시어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태지 : 무용을 스물 두 살에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매튜 본 : 보통 아주 어린 나이부터 발레 훈련을 받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이다.
최태지 :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오늘의 매튜 본 작품이 가능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당신의 작품들을 보면 당신이 무용만이 아닌 연극 등 타장르의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느낄 수 있다. 늦깍이로 무용을 시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용수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다.(웃음) 당신의 초창기 활동에 대해 알고 싶다. 처음 무용단체를 만들며 활동했던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
매튜 본 :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연보는 것을 매우 좋아는 했지만 그것을 즐겼을 뿐, 내 가 직접 어떤 작품을 만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1987년 6명의 단원과 함께 현대무용단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안무를 시작했는데, 1992년에 우연한 기회에 <호두까기 인형>을 안무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처음으로 대작을 안무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스토리를 좋아하는 내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 서울에서 공연할 <호두까기 인형>이 바로 그때 처음 공연된 작품이다.
최태지 : 당신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백조의 호수>에서는 바(Bar) 장면도 등장하고… 그런 것은 고전발레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매튜 본 : 나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과 영화를 보고 자랐고, 지금도 여전히 굉장한 영화광이다. 타장르의 공연들은 내 작품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준다. 특히 음악은 내게 가장 큰 동기부여와 영감을 주는 것이다. 19세 때 발레 <백조의 호수>를 처음보았는데, 이때 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것을 나만의 <백조의 호수>로 만들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특히,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같은 음악은 원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라 음악 자체에 이미 매우 탄탄하고 매력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러한 연유로 앞서 두 작품 뿐 아니라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같은 작품에도 역시 도전해 보고 싶다.
최태지 : 공감한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음악하면,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꼽는데,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완성된 음악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두까기 인형!>의 서울 공연이 더욱 기대된다.
대중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보았으면 좋겠는가?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라도 있는가
매튜 본 : 사실 딱히 정해진 메시지 같은 것은 없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감성과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르게 반응할 수 있고,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와서 보기만 하면 된다. <호두까기 인형!>은 매우 인간적인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기쁨과 슬픔 등 감정의 기복도 많다. 또한, <호두까기 인형!>은 우리들의 성장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린시절과 성장기, 첫사랑 등의 기분을 관객 들이 다시 한번 느껴보고 추억에 잠겨 보기를 바란다. 보통 발레하면 어린소녀와 부인들이 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의 작품은 어린아이부터 청소년들, 그리고 성인 남자 관객까지 모두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최태지 : 작품을 만들 때 특별히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매튜 본 :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 그 작품이 원래 지닌 큰 틀과 음악은 그대로 사용하되, 이 외의 다른 것은 모두 바꾼다. 특히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포착해서 이를 발전시켜가며 작업한다. <백조의 호수>의 경우, ‘남자 백조’와 현재 영국 왕실을 닮은 ‘로열 패밀리(Royal Family)’가 아이디어의 큰 줄기였고, <신데렐라>의 경우, 2차 세계 대전시 폭격 맞은 도시가 테마였다. 이번 <호두까기 인형!>의 경우에는 ‘고아원 소녀’라는 점이다. 원작에서 나오는 중산층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보다는 가난하고 외로운 고아원 소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품게 되는 꿈과 소망이 생생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최태지 : 그렇다면 다른 작품을 볼 때 특히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는가?
매튜 본 : 음악과 춤이 완벽하게 일치할 때 가장 큰 감동을 받는다. 나에게 음악이 없는 작품은 상상할 수가 없다. 실제로 어떤 움직임이나 작품이 음악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모든 흥미를 잃어버린다. (웃음)
최태지 : 나 자신도 국립발레단 시절 발레를 대중화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본인의 작품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매튜 본 : 무엇보다 항상 관객을 생각해야 한다. 관객이 없는 공연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을 이해하고 즐겁게 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한다. 당연한 진리같지만,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작품을 만들곤 한다. 나는 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 때면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객석에 앉아 그들 속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느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호두까기 인형!>만 해도 지금껏 250번 이상을 직접 관람하여 수정해 온 것이다.
최태지 : 한국에서도 근래에는 클래식 발레, 현대무용 그리고 고전무용계에서 협동작업을 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클래식 발레는 모든 무용의 기본이 되는 것일테고, 여기에 현대무용이 가진 표현력과 감정의 깊이, 그리고 고전무용이 가진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잘 융합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안무가와 무용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매튜 본 :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장르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영화, 미술, 무용의 역사, 디자인,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들, 그리고 나의 실제 경험 등등 나의 안무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이 훌륭한 공부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자신의 작품에도 살이 될만한 것을 분명히 발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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