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의미, 더 파고들겠다” <필로우맨> 연습현장

무섭다, 끔찍하다, 불편하다, 그러나 슬프고 측은하다.
<필로우맨>의 매력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오묘한 긴장감에 관객들을 몰아넣는 것일 거다. 아동 살해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 살해 방법과 똑같은 동화를 쓴 작가, 그리고 그 형. 화려한 특수효과나 격정적인 장면 없이 오로지 단 네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와 문득 등장하는 잔혹한 동화가 내뿜는 힘이 이처럼 탄탄하게 작품의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작가 마틴 맥도너가 써 2003년 런던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후 2007년 최민식 주연으로 국내 첫 선을 보인 연극 <필로우맨>. 2012년과 2013년 소극장 무대로 옮겨져 전석 매진 기록을 이어갔던 작품이 2년 만에 다시 찾아오는 이유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도 화제의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이번 무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 캐스팅이다. <알리바이 연대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다시 대학로 활동에 본격 예열을 시작한 반가운 배우 정원조를 비롯해 <그게 아닌데>로 2012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윤상화, 그리고 <리차드 2세> <웰즈로드 12번지>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수현, <변신이야기> <반신> <히스토리 보이즈> 등에서 탄탄한 무대를 만들어 온 이형훈의 조합은 연극 애호가들의 기대감을 더욱 높일 만하다.


지난 22일 늦은 밤 찾은 연습실에서 만난 <필로우맨>은 과거 작품의 모습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용의자를 취조하는 투폴스키 형사 윤상화는 결코 높지 않은 목소리에 형용할 수 없는 웃음 섞인 표정으로 작가 카투리안을 오싹하리만치 능숙히 다루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날것으로 폭발시키지 않는 그의 모습 안엔 더욱 밀도 높은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간 번역과 드라마투르기를 맡았으며 이번 프로덕션에서 연출로도 나서고 있는 이인수 역시 "윤상화 배우의 또 다른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배우 본인도 "전에는 주어진 상황에 직접적으로 몸을 던져 대면하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항상 거리감을 두고 관망하면서, 비웃기도 하고 그 상황을 유머로 비틀 수도 있는 역"이라 말했다고.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숨기고 있는 듯한 정원조도 카투리안에 새로운 결을 입히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쓴 이야기들을 끝까지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작가인 동시에 부모의 학대 속에 자란 형을 보살피고자 하는 동생으로서 그의 내적 갈등은 극에 달하는 모습이다.


이인수 연출은 "이 작품은 '이야기 쓰기'에 대한 극이며, 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과거 공연보다 더욱 텍스트의 의미를 찾아 언어가 가진 공감의 힘을 살려보았으면 좋겠다. 스토리텔링을 아주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아닐까. 언어가 지은 허구의 세계가 현실만큼이나 힘이 있기 때문에, 허구와 현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묘한 경계선이 만들어 내는 호기심,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 작품의 마력인 것 같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필로우맨>이 우리 현실의 일부인 어두운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걸 더욱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동폭력, 학대, 부모 살해 등 우리 현실 속에 있어서 더욱 보기 힘든 부분들을 끄집어 내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수다스러운 배우가 한 명도 없어서일까. 순간 장면에 몰입하며 시작되는 연습과 연습 후 요란하지 않게 피어나는 웃음 소리가 이번 프로덕션의 색을 보여주는 듯하다. 굳이 나누자면 '고요한 배우군'에 속할 법한 마이클 역의 이형훈이 팀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밤 9시, 연습이 끝난 배우들에게 "평소 모습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했더니 연습실 구석에 나란히 앉아 대본을 펴 드는 이들이다. <필로우맨>은 8월 1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해 한 달 간 공연을 이어간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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