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연습공개

상상 그 이상의 이상한(?) 작품이 될 분위기다. 가만히 자리하기만 해도 묵직한 존재감을 저마다 뿜어내는 배우 8인이 분명한데, 이곳에서는 촐싹맞고, 변덕쟁이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가, 금방 삐치기도 하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로 변신해 연습실을 들썩거리게 하고 있었다. 정말 '살짝 넘어가기만' 했는데, 이 난리가 나다니. 보다가 웃음이 터지는데 그 뒤엔 가슴이 뜨끔거리며 씁쓸함도 남기게 하는 이곳은,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연습 현장이다.

연극 <억울한 여자><웰즈로드 12번지>, 드라마 <도쿄타워> 등을 쓴 일본 작가이자 연출가 츠치다 히데오가 쓴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교도소에 수감된 6명의 죄수와 2명의 간수들이 우연히 국경을 가르는 선 하나를 그으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담은 블랙 코미디다. 제 각각의 캐릭터들이 스스로 교도소 내 선을 긋고 이를 중심으로 편을 나누며 생기는 충돌과 힘의 관계에 따라 흥미롭게 목격할 수 있는 인간 심리의 변화 등이 이 작품을 마냥 '웃음'에서만 그치게 하지 않는 요소가 될 듯하다.


우연한 기회에 도쿄에서 이 작품의 초연을 봤다는 김광보 연출은 "블랙 코미디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아주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츠치다 히데오는 이 작품을 내놓으며 "대지진 이후 다들 너무 살벌해진 것 같다. 단정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고 정치에 대해서도 정책 이전에 입장만으로 비판을 하는 것 같은 감정이 앞서는 발언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극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을 때 정치나 사회를 운운하기 이전에 인간 행위에 시선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광보 연출은 이 말에 적극 공감하면서 "인간 자체가 사회 구성원 중에 하나니까, 인간이 변해간다는 건 사회가 모순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더욱 확장된 메시지가 작품 안에 담겨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국내 공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이른바 '김광보 사단'이라 불릴 정도로 과거 김광보 연출작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배우들의 대거 출연이었다. "이 작품은 호흡이 잘 맞아야, 앙상블이 잘 맞아야 해요. 8명이 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비중이 모자라다, 그런 것도 없고요. 그래서 앙상블을 생각해봤을 때 익히 작업해 왔던 배우들과 함께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했죠."(김광보)


최근 영화 <마돈나>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던 김영민과 <프로즌> <카포네 트릴로지> 등에 출연하며 올 한해 가열차게 무대 위를 채우고 있는 이석준, 그리고 <나는 형제다> <사회의 기둥들> 등의 작품에 출연해온 이승주, <엠 버터플라이> <그게 아닌데> 등의 유성주를 비롯해, 이번이 김광보 연출과 첫 작업인 유병훈과 임철수 등 오랜 시간 무대를 탄탄하게 채웠던 배우 6인은 이번에 경범죄로 수감된 죄수로 변신한다.

배역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본 리딩을 시작했다는 팀이지만, 처음부터 배역이 결정된 두 사람은 바로 간수 역을 맡은 유연수와 한동규다. 동료 배우들이 입을 모아 "적역을 만났다."고 칭하는 간수 경보 역의 유연수는 언제나 잠을 청하는 게으른 간수이면서 힘을 가진 후배에게 쩔쩔매는 모습이었고, 또 다른 간수 대기 역의 한동규는 원리 원칙을 따지지만 힘을 얻게 되자 무자비하게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주변을 장악하려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었다. 가장 반전인 캐릭터가 누구냐고 묻자 과격하고 거친 장창 역으로 등장하는 이석준은 "여기서 정상인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한국 초연을 위해 <목란언니> <순우삼촌> 등을 쓴 김은성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 저마다 이유가 궁금해지는 독특한 이름도 기억해두면 좋을 듯하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는 오는 11월 5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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