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쿨 한국인 최초 우승자 조성진 "콩쿨은 꿈을 위한 도구, 나만의 길 묵묵히 가겠다"

조용하고 신중하고 솔직했다. 성급하게 푸른 미래를 그리기 보다, 진중하게 자신만의 길을 깊고 단단히 내어 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올해 스물한 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젊은 피아니스트. 2015년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조성진의 모습이다.

2월 1일, 다음날 다른 쇼팽 콩쿠르 입상자들과 함께 갈라 콘서트를 선보이기 위해 조성진이 입국했다. 입국하자 마자 열린 기자간담회장에는 그에 대한 높은 세간의 관심을 입증하는 듯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지난해 12월 초,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뒤늦게 한 회차 공연을 더 준비했지만 이 마저도 '솔드 아웃'을 기록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우승자 조성진이다.

"부모님이 음악을 하시는 분도, 관련 종사자도 아니시기에 아마 연주자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르시고 그저 믿어주신 것이 힘이 되었다."고 조성진이 말할 정도로,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순수 국내파 피아니스트인 조성진. 하지만 15세에 정명훈의 발탁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을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온 연주자이기도 하다.

"콩쿠르, 너무 스트레스 받아 싫지만
꿈을 위한 도구임은 분명해"


갈라 콘서트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이긴 했으나, 최초로 탄생한 한국인 우승자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곧 연주자이자 인간 조성진에 대한 질문공세로 이어졌다.

옅은 미소, 작고 느릿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질문에 대답하는 그는 역시 '작은 거인'다웠다.


도이치 그라모폰 전속 레코딩 계약
(왼쪽부터 그라모폰 A&R파트 부사장 우테 페스케 도이치,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협회장 아르투르 슈클레네르)

함께 자리한 아르투르 슈클레네르 폴란드 쇼팽협회장이 "콩쿠르 시작 전부터, 또 진행 중에 가장 자주 언급된 사람이 조성진이고 그의 연주는 개인적으로 가장 완벽히 연주한 쇼팽 중에 하나다."라고 말했지만 조성진은 "콩쿠르는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꿈이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인데, 이런 꿈을 가진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콩쿠르이기에, 내게 콩쿠르는 꿈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다."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남다른 콩쿠르 준비 과정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엔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고 말하며 "깊게 쇼팽을 공부하려 했고, 많은 연주자들의 다양한 해석 방식을 접하려고 노력했다."는 그다.

또 다른 참가자의 연주를 일부러 듣지 않아 다른 이들의 수준이 어떤지 몰라 우승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을 우승자의 담백하고 겸손한 소감으로 남기는 모습이었다.

특히 '휴대폰도 멀리하고 연습에만 집중했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누가 휴대폰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며 웃기도 했다.
"파리에서 지내고 있는데 작년 초 누가 휴대폰을 훔쳐갔다. 이런 일이 벌써 두 번째라 그냥 2G폰을 사서 8개월 정도 썼다. 콩쿠르 끝나고 바로 새 휴대폰을 샀다.(웃음)"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법한 나이, 스물한 살이기에 그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또래 친구가 많지 않고, 대부분 나이가 나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서 요즘 20대들이 뭐하고 노는지 잘 모른다."는 그는 "평소에도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고 한국 발라드 음악을 듣기도 한다."는 것을 몇 안 되는 취미 생활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롤모델 만들고 싶지 않아.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는 사람 아닐까"


콩쿠르 우승 이후 몰려오는 연주 일정과 음반 녹음 등으로 "나도 내가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을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배시시 웃는 그는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 사와 전속 레코딩 계약을 맺고 향후 5년간 총 5장의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기도 하다. 첫 번째 음반이 앞서 발매된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이고 다음 앨범이 오는 봄 녹음 예정인 정명훈과의 협연이다.

"정명훈 선생님과는 2008년 이후 아마 20번 넘게 협연한 것 같다. 배운 것이 너무나 많아서 감사드리고 싶다. 존경스러운 음악가이고 이번 작업을 같이 하게 되어서 무척 기대된다."

좋아하는 연주자는 있지만, 롤모델을 일부러 정해놓지는 않는다는 그는 "미래는 나도 모르지만, 앞으로 나만의 길을 찾아 가겠다."며 흔들리지 않는 꿈을 이야기했다.

"예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내 생각엔, 나에게 '훌륭한 피아니스트'란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을 할 때 만큼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곡가들이 명곡을 쓸 때 엄청난 노력과 고뇌들이 있얼을 테고, 그걸 대할 때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웠지만 "바이올린은 연주할 때 계속 서 있어야 해서 힘들었다."며 피아노 연주에 집중하게 된 계기를 수줍게 이야기하는 조성진. 큰 연주든 작은 연주든 똑같은 자세로 임하려고 노력한다는 그가 "그래도 내일 공연은 콩쿠르 후 첫 한국 공연이라 기대되기도, 설레기도, 긴장이 되기도 한다."고 소감을 더했다. 조성진과 다른 6명의 클래식 미래를 만들어 갈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2월 2일 오후 2시와 8시 두 차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단, 남은 좌석 티켓을 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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