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창작하는 이만의 행복 느끼며 산다”

어느 날, 문득 보니 잘나가던 개그맨 백재현은 창작뮤지컬 제작자이자 연출가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한때 개그프로에서 1.5리터 물병을 들이키며 브라운관을 장악했던 그가, 이제는 피땀 쏟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는 희열에 빠져있는 것이다. 뮤지컬 [루나틱]이 흥행했지만 척박한 창작뮤지컬 제작 환경 때문에 답답한 속을 풀어놓는 백재현을 만났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편견섞인 잣대부터 없애야

창작 뮤지컬 제작자,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어려운 점은 없나.
지금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들어오면 너도나도 봐야한다는 풍토가 조성돼 있고, 반면 창작 뮤지컬에 대한 시선은 척박하기 그지 없다. 대형 기획사는 제작을 하는 곳이 아니라 유통회사다. 연출의 핵이 없고 화려한 볼거리만 제공할뿐이지 않나.
사실 외국에서 오리지널팀이 와서 공연하는 건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배우들로 이뤄진 대형 라이선스 공연에는 문제가 있다. 브로드웨이 토니상 다섯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건 그 배우들이 연기했을 때 여우주연상이든 뭐든 수상하는 게 아닌가.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써 이건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변화했으면 하는 점은 무엇인가.
편견이다. 관객들도 라이선스 작품을 보는 눈이 좀 더 관대하다. 지금 올리고 있는 [페이스 오프]만 하더라도 ‘반전의 반전’에 대해 비판적인 잣대를 대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 유명 라이선스 작품 중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구성과 내용이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만약 창작 뮤지컬이 외국 나가 토니상이라도 타봐라. 삼성처럼 추켜세울 거다.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70일을 줄인다고 난리가 아니지만 정작 쿼터가 필요한 건 창작 뮤지컬이다. 현재 창작 뮤지컬에 대한 업계의 인식은 ‘이 보다 더 안 좋을 순 없다’다. 예를 들면 창작이 극장 하나 잡아서 들어가려면 방염처리 했냐고 극장주들 난리다. 라이선스 작품? 불 피우라고 독려한다. 규정상 사용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극장주들부터가 창작과 라이선스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천억이 넘어간다. 만약 미국에서 한국 정서에 맞는, 예를 들어 ‘연개소문’ 같은 작품을 만들어서 내 놓으면 국내 창작 뮤지컬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재정적인 문제는 없었나.
지금까지 배우들에게 돈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내가 배우였을 때 제작자가 나는 돈 안주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면 욕했다. 그래서 어길 거 같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준다. 한 때 배우들에게 돈을 지급 못 할 만큼 어려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차가 크지 않나.(웃음) 그래서 저 차를 팔아서 주려고 했다. 그런데 차 띠고 포 띠고 차 할부금이 나가니 달랑 사백만원을 준다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 모아놓고 말했다. 차 팔면 우리 사십만원씩 나눠가질까?하고.(웃음) 그달 내내는 기름값도 없었다. 모든 매출이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소주 여섯 병을 사가지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먹고 죽으면 가는 거고’ 하는 심정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런 눈물까지도 행복이다. 사회와 타협하고 흘리는 눈물에 비하면 행복한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루나틱]은 상당한 흥행을 이뤄냈다. 재정이 넉넉해지지 않았나.(웃음)
[루나틱]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많다. 하지만 한달 벌어 한달 산다. 우리 단원들 나눠주고, 무대 올리는 데 기본적인 경비가 많이 든다. 사실 루나틱 오픈런, 이거 불안해 죽겠다.(웃음)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유일한 매출 창고를 끝낼 수는 없었다. 힘들어도 같이 굴러먹으면서 가는 거다.
사실 돈 버는 방법은 안다. 폭소 강의를 차려놓고 혼자 대관 빌려 두 시간 동안 웃길 수 있다. 난 뮤지컬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만들고 싶은 작품을 컴퓨터에 썩히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돈으로 재테그하겠다는 게 아니라. (웃음)

[페이스 오프]에 ‘루나틱2’가 붙었다. 사실 둘의 연관성이 깊어 보이진 않는다.
보신 관객들은 루나틱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 정말 좋았다는 분도 있고 실망이라는 분도 있다. 루나틱2에 대해서는 지난 3년 동안 구상을 해왔다. 1편과 너무 똑 같은 2편으로 실망한 적은 없었나. 나는 있었다. 루나틱과는 다르면서 전해주는 메시지가 닮은 작품을 원했다. 사실 자기 부인의 재산을 노린다는 이야기는 정상이 아니다. 또 다른 미친 이야기인 것이다.

뮤지컬 제작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는 무엇인가.
구성이 탄탄한 뮤지컬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뮤지컬은 쇼에서 기원을 했기 때문에 구성이 허술한 면이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구성면으로 볼 때 우월한 사람들이 많다. 구성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경쟁력이라고 본다. 국내 뮤지컬 마니아가 10만명이다. 이들이 계속해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 것이다.

다시 TV에 컴백할 계획은 없나.
개그맨으로 언젠가 카메라 앞에 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외 방송에는 신물이 났다. 한 방송사의 MC를 2년 반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방송 내내 그날 누가 나오는 줄도 몰랐다. 대본 받아서 녹화하고, 그날 컨디션이 좋으면 에드립 잘 나와서 성공하는 거였고…. 성취감이 없었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1.5리터 들이키는 것도 한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웃음)
어느 날 레슬링 행사를 하자고 전화가 왔다. 나는 장내 아나운서 제의라고 생각하고 갔다. 그런데 시합을 뛰래…..(웃음) ‘아, 방송은 사람이 할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반성하고 정말 자질있는 배우들에게 돌아온 거다. 이 곳에서는 하루하루 예술 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 함께 고민하고 의견 나누고, 싸우기도 하면서 일궈낸 결과물을 무대 위에 올리는 과정이 행복하다.


Musical [페이스오프] 中 ‘만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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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운영마케팅팀 song@interpark.com)
사진 : 강유경 (9859prettygir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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