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해선 “연극적인 작품 만나고 싶었다”

여류 조각가이자 우리들에게는 로뎅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까미유끌로델이 뮤지컬로 탄생했다. [까미유끌로델]에서 광기 어린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여인으로 분한 배우는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손꼽히는 배해선. 그는 가슴에 상처 가득한 한 예술가를 섬세하고 깊게 이번 역할을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배우 배해선의 모습을 기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다시 한번 충족시켜 놓고 있다.

맡은 캐릭터에 몰입이 잘되는 성향 탓에, 까미유끌로델 극장에서 만난 배해선의 표정에는 까미유끌로델의 잔향이 남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특유의 털털함과 장난끼가 보이기도 한다.
8개월 이상의 [아이다] 대장정을 마치고, ‘연극적인 작품’으로 충전하고 싶은 욕심에 [까미유끌로델]을 선택했다는, 뼛속까지 배우인 배해선을 만났다.

까미유끌로델이라는 비극적인 역할 때문인가. 좀 가라앉아 보인다.
아무래도 공연 기간 동안 맡은 캐릭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편이다. 하지만 까미유의 인생 전반이 다 어두운 것은 아니다. 좋은 시간들도 있고 고통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배역이다. 그래서 연기하기 재미있다.

[까미유끌로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몇 년간은 대작을 위주로 출연해 왔지만 사실, 그 동안 연극이 너무 하고 싶었다. 원래 연극으로 데뷔를 했고, 몇 년에 한번 꼴은 연극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중에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다. [까미유끌로델은]은 기존 뮤지컬 형태를 지니고 있기 보다 연극성이 강한 작품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역할을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 하고 싶었다. 한 캐릭터에 비중이 큰 작품이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많아서 좀 더 연륜이 쌓이면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선뜻 이걸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배우도 하나의 예술가다. 나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까미유가 고뇌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 세계도 알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게다가 여자 이야기여서 더 매력을 느꼈다. 소극장 무대라는 점도 좋았다. 우리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소극장 공연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다] 끝나고 조금 쉬고 싶지 않았나.
쉬고 싶었고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쉬게 할 수 없을 만큼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다. 나를 보여주는 기회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고 깎이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배역에 몰입하는데 자기만의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특별한 건 없다. 어렸을 때는 집중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집중은 아니었다(웃음). 꼭 말해야 한다면, 내 삶 자체가 정말 단순하다는 거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것에 빠져 있지 않는다. 공연 할 때는 특히 심플한 생활을 한다. 친구들을 만나든가 외출을 하는 일도 자제한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충전을 하는 편이다.

사랑에 빠지는 배역을 맡으면 연애가 하고 싶지 않나.
물론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일에 빠져서 일부로 안 사귀는 거냐고 묻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길 거 같다. 특히 까미유끌로델 같은 캐릭터는 굉장히 감성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이런 역할을 할 때면,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땠는지 생각 한다. 진짜 연애를 하면 더 깊은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그게 아쉽다(웃음). 우리 로댕 선배님 두 분은 유부남이다. 총각만 됐어도 연애를 해보겠는데(웃음). 그래서 정말 사귀고 싶은, 이 사람이라면 인생 전부를 던지고 싶다 하는 사람을 그리면서 연기를 한다. (이상형을 밝혀달라고 하자) 하하하,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 밝힌 순 없다. 아휴…. 생각만 해도 좋다. 아무튼 연애를 하고 싶은 누군가를 상상하면 된다(웃음).

상상력이 풍부한가.
공상을 많이 즐기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혼자 앉아 있으면 다른 세계에 다녀오기도 한다(웃음). 그런데 그게 참 좋은 거 같다. 배우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연기 경력이 10년이 넘었다. 배우로 전환점이 된 작품을 꼽으면 무엇인가.
나의 모든 작품이 계기를 주고 전환점을 마련해줬다. 나는 다작을 하지는 않는다. 많아야 1년에 2~3편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고심하면서 작품을 결정한다. 결정하는 기준은 다른 게 아니다. ‘이 작품 정말 하고 싶다’ ‘좋은 경험이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면 된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이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하다. 소녀 같은 캐릭터, 보이쉬한 캐릭터, 푼수 같은 캐릭터 등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고, 그래서 한번도 작품을 하면서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생스러워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한 여름밤의 꿈]. 이 작품으로 처음으로 여성스러운 역할을 벗어나 짖궂고 괴팍하고 드센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실 이 이후에는 조금씩 변형된 캐릭터를 했지만 그때는 나에게는 너무 낯선 캐릭터였다. 첫 시도였고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던 거 같다.

[맘마미아]에서 소피 역할은 발랄했다.
사실 맘마미아 소피를 많은 분들이 좀 더 귀엽고 깜찍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다라는 조언을 많이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역할 자체는 어떻게 해도 그렇게 보인다. 푸른 에게해에서 풀치마 입고 뛰어 다니면 다 그렇게 보이지 않겠나(웃음).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리스 섬에 있는, 아직까지 통제 받지 않고 길들여 지지 않은 어린 소녀의 치기 같은 것들 이었다. 지금 소피역을 맡고 있는 정미양이 어떻게 하는지는 공연 전체로는 보지 못했다. 일부만 봤는데 나랑은 색깔이 달라서 참 좋더라.

(무대에서 객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객석에 앉으니 어떻나.
정말 흥미롭다. 나는 객석에 앉아서 작품을 신나고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물론 직업적인 것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굉장히 ‘관객처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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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운영마케팅팀 song@interpark.com)
사진 : 강유경 (9859prettygir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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