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爾)> “영원한 광대로 걸판지게 놀아 보자꾸나~”

숨소리도 쉬이 낼 수가 없었다. 중앙으로 나가 있는 배우들을 향해,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있는 다른 배우들과, 북과 장구, 꽹과리 등을 쥐고 있던 이들 모두의 시선이 고정된 이곳. 오는 6월 공연을 앞둔, 연극 <이(爾)>의 연습실이다.

폭군 연산이 광대 공길과 동성애 관계였다는 기발한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연산과 공길, 공길과 장생, 그리고 연산을 사이에 둔 녹수와 공길의 힘 겨루기 등의 갈등 구조를 통해 사랑과 권력, 그리고 광대를 비롯해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의 삶의 희로애락을 펼치고 있다. 2000년 초연 당시 한국연극상 우수공연 베스트 5, 희곡상,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했으며, 영화 ‘왕의 남자’, 뮤지컬 ‘이’ 등 다른 장르로 변신하기도 했다.
연산 역의 김내하를 비롯, 녹수 역의 진경, 장생 역의 이승훈 등 지난 <이>의 무대에서 십분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배우들이 다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날, 연습실 한쪽에 자리한 박정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과거 공길 역으로 무대를 누볐던 그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 때부터 연산 역을 맡아온 김내하와 번갈아 광기 어린 연산 역으로 관객 앞에 설 예정이기 때문. 박정환을 비롯, 오만석, 김호영 등 스타 배우가 거쳐간 공길 역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정원영이 맡았다.

무엇보다 광대들의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광대들일 것. 20여 명의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광대 역의 배우들은 성대모사, 흉내내기, 재담, 음담패설 등 언어유희를 통해 당시 세태를 풍자하며 신명 나게 놀아나는 흥이 가득하다. 악기 연주를 비롯, 상모 돌리기, 덤블링 등 자유자제로 몸을 구사함과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옷과 탈 등의 소품으로 한껏 재미진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모습이다. 관객들은 객석으로 던지는 이들의 농지거리에 대답하는 또 다른 관람의 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습이 무르익을 수록 작품 안에서 흥과 맛을 찾아가며 간간이 웃음을 내 비치던 배우와 스텝들 사이에서 쉽게 미소 짓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해 온 김태웅 뿐이었다. 역사 속 인물들과 사건을 토대로 긴장과 이완의 끈을 적절히 풀어내기 위한 집중과 섬세함이 작품을 세상에 내 놓은 지 9년 째인 지금까지도 팽팽하게 서려 있었다.

웃음을 주지면 결코 웃으며 살 수 만은 없었던 조선시대 광대들의 삶 이야기, 연극 <이(爾)>는 아르코시티극장 개관기념공연으로 오는 6월 9일부터 약 한 달간 공연될 예정이다.

연극 <이(爾)> 연습현장


어찌할 수 없는 끌림으로 가학적 성희를 사이에 둔 연산과 공길.


아이를 낳은 녹수의 기새는 등등하다.


빠질 수 없는 광대들의 놀이.



공길의 친구이자 그 이상의 감정을 나누는 장생.
권력에 눈이 멀이 놀이의 본질이 변질되는 것을 질타한다.


연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연산 역의 박정환(우)과 녹수 역의 이화정(좌).


"내 흉내를 내 보겠느냐?"


홍내관 역을 맡은 정석용의 맛깔나는 연기.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