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전> 사랑스런 뚱보에게서 라틴의 삶이 느껴진다
작성일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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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를 넘어서 여기 모든 사람들은 ‘뚱뚱보’의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 뿐만이 아니다. 동물, 과일, 악기, 테이블 등 세상의 모든 것은 제 형태를 잃고 새로이 팽창된 양감과 질감으로 탄생했다.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본 사람은 처음엔 대상의 통통함에 웃음을, 그 다음엔 그 안에 담긴 라틴 사람들의 삶에 긴 여운을 갖게 된다.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채로 인간사를 표현하고 있는 <페르난도 보테로 전>에 절로 관심이 간다. 볼록 렌즈로 세상을? 사랑스러운 통통함

풍만한 인체로 더욱 잘 알려진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의 작품이 지난 6월 30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등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은 강렬한 주제, 풍부한 색감을 특징으로 현대 미술사에 뚜렷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은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성으로 부드럽고 우스꽝스러운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물&고전의 해석’, ‘라틴의 삶’, ‘라틴 사람들’, ‘투우&서커스’의 주제 아래 총 89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 3점이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는 것은 정물들이다. 정물화의 주요 소재인 꽃, 과일, 그릇 등이 작품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3차원의 양감이 볼록하나 섬세하게 2차원의 화면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창조를 낳은 패러디

세잔, 피카소, 보나르 등 거장들의 작품을 차용하여 재창조 하는 것도 보테르의 작품 활동에서 빼 놓을 수 없다.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된 이러한 작업은, 회화에서 주제 뿐 아니라 그것을 창출해내는 표현 양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왼쪽 그림은 루벤스의 1609년 작 ‘피터 폴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를 특유의 팽창된 인물로 변형한 것이며, 작품명도 ‘벨라스케스를 따라서’인 오른쪽은 벨라스케스의 ‘흰 옷의 왕녀 마르가리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유달리 큰 몸집에 작은 얼굴 등 비정상적인 비례를 통해 예술이 가진 변형 과정 역시 창작의 한 부분임을 설명하고 있다.
라틴, 그곳의 일상

보테로는 자신이 처한 주변의 것에서 관찰의 눈을 유지하는데, 동포인 라틴인들의 삶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일상을 사는 보통사람들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리의 풍경(좌)에서는 평범한 이웃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화면 중앙의 신사와 수녀, 그리고 왼쪽 경찰은 각각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권위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독재체제 하에 서로를 믿지 못한 채 사생활 까지 감시 당했던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삶을 비춰내고 있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서 있는 창녀와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엄마 등 이들은 모두 한 때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 경직된 표정 속에서 당시 사회상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오른쪽 ‘춤추는 사람들’에서는 암울한 역사 속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으려는 라틴인들의 삶이 담겨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문화 요소인 라틴 댄스를 추고 있는 두 남녀는 이미 흠뻑 춤과 음악에 빠져 있는 듯 하다. 보테로 작품 속 여인들이 즐겨 하고 있는 붉은 색 머리띠와 하이힐, 빨간 리본과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 등으로 보아, 이 아가씨는 평범한 여자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색색의 불빛과 장미무늬 커튼은 작품의 단조로움을 피하게 해 준다.
빼 놓을 수 없는 두 가지, 투우&서커스
열광적인 투우 팬인 삼촌을 둔 까닭에 보테로는 12세 때 투우사 양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그는 투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습득한다.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의 첫 작품이 투우사를 그린 수채화였으며, “사람들이 소를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내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투우에 대한 그의 애착과 추억은 대단하다. 자화상 속의 보테로는 투우사의 복장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 정도이다.

공연 중인 광대의 기이한 모습을 담은 유화와 드로잉도 다수 있다. 2000년 이후에 보테로는 집중적으로 서커스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곡예사, 어릿광대, 동물 조련사 등을 비롯하여 원숭이, 낙타, 코끼리 등 이국적인 동물들도 대상이 된다. 왼쪽 ‘서커스 단원들’ 속에서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여자 단원은 감각적이고 풍만한 육체 표현으로 작품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또한 오른쪽 ‘곡예사’에서는 재주를 넘는 곡예사의 공연 장면을 포착했으나 정지된 화면을 보는 듯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오묘함이 느껴진다. 둥근 서커스의 객석은 실제 멕시코 서커스단인 ‘시르코 아타이데’가 원형 구조물 안에서 투우를 응용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덕수궁에 입장하여 전시회장인 덕수궁미술관까지 들어오는 길에서 보테로의 조각품을 만날 수 있다. 풍부한 양감을 자랑하는 그의 특징은 회화 뿐 아니라 조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73년부터 본격적인 조각활동을 시작한 보테로는 주로 대리석과 청동을 사용하여 흐르는 듯한 선을 표현하고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연구했다. ‘누워있는 여인’은 누드임에도 에로틱하지 않고 동적인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전시장엔 자녀를 둔 가족단위 관람객과 젊은이들이 더욱 많다. 낮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하루에 여덟 번 도슨트가 작품을 설명해주며,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도 준비되어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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