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몸짓의 아우성, 정영두의 <제7의 인간> 연습현장

“어떤 권력이나 사회의 부조리함 때문에 본인의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어디론가 떠나기나 머물기를 강요 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안무가 정영두의 어조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강했다. 영국 작가 존 버거(John Berger)와 사진작가 쟝 모르(Jean Mohr)가 유럽 이민노동자의 삶을 다큐멘터리 기록 형식으로 담아낸 동명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 <제7의 인간>을 준비하며 그는 더욱더 살아있는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2006년도에 책을 읽었지만, 최근의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상황들과 잘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 초부터 작품에 대해 생각했어요.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문제, 기러기 아빠들, 직장에서의 정리해고 등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누구는 떠나야 되고, 또 누구는 머물러야 되고,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도대체 누가 이런 현상들을 만들고 있나, 뭐가 잘못 되어서 그런가, 그런 현상들을 바라보고 겪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철저히 자기 만의 춤 언어를 구축해 가며 한국과 세계 무대의 무서운 안무가로 평가 받고 있는 정영두는 특히 이번 작품을 만들며 무용수들과 함께 정기적인 토론과 답사 등 작품의 서브 텍스트 공부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보통 무용작업은 안무자가 무용수들에게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이 나쁜 게 아니라, 때로 어떤 서브 텍스트를 갖고 출발할 때 상상력의 제한도 크고 굉장히 많은 한계를 갖게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는 뚜렷한 메시지가 있고, 어떤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기에, 실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 또 사회의 커다란 모순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되었죠.”


토론을 통한 교류와 자연스러운 합의가 작품 속 리듬과 장면간의 연결들로 이어진다. 말러의 비통함이 흐르다가, 날카로운 비트에 귀를 멍하게 하는 헬리콥터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평소에 들어보고 좋았던 곡들에서 아무래도 음악을 찾게 되죠. 헬리콥터 소리는 일부러 넣은 것인데 권력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영두의 몸짓은 익숙한 기호를 벗어난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 속에서 떠올리는 동작들이다. 그간 억압되어온 스스로의 권리,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상황에 창자 깊숙이 눌러두어야 했던 말들은 입 안 깊이서 몸 밖으로 튕겨지는 손가락으로 표현되는 식이다.



메시지를 넣은 음악과 몸짓이지만 정영두는 자이의 생각한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에 대단히 조심스러워 한다. “그렇게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죠”와 “관객들 스스로 해석하는게 맞습니다”를 단 한번도 잊지 않는다.

“메시지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그 메시지를 전복시킬 만한 또 다른 메시지가 나오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또 나의 해석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식을 수도 있고요. 무언가를 보고 주체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깨달음과 타인을 통해 직유로 받아들여 깨닫는 건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늘 나중의 것이 익숙하죠. 누가 뭘 이야기 해 줘야 되잖아요.”


사회성을 담은 작품은 짐짓 예술성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역시 정영두는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예술은 사회성만 담을 수도, 또 예술성 그 자체만을 담을 수 있고, 저처럼 두 가지를 다 담아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용의 가장 큰 기능은 무용이잖아요. 무용을 잘 만들어야죠. 때론 ‘사회성을 담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 줄 거야’ 하는 생각들 때문에 전문성이 많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의미를 왜곡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 차라리 ‘우리 같은 사람만 이해할거야’하는 그 정신에 손을 더 들어주겠어요. 저는 사회성을 담는 노력, 또 그걸 잘 만들려는, 장인처럼 애쓰는 정신들 두 가지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이래야 해” 라고 말하는 자체가 예술을 더 억압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선 첫 발인 연극배우와 연출가(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로, 또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정영두는 경계 없는 자유로운 몸짓을 펄럭인다. "그 무엇도 굉장히 다르면서 같다"는 그는, 안무가로 나선 이번 작품에서 14명의 무용수들에게 ‘교감선생님’으로 불린다. 오로지 연습에만 집중하도록 단단한 마음으로 이들을 이끄는 선생님이지만, ‘교장’이라 할 만큼 권위적이지도 않기에 찾아낸 제대로인 별명이다.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어요. 작품이 불편하다고, 무겁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잖아요. 무수히 많은 조건들, 이를테면 종교, 사람, 직업 등이 이미 커다랗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주어진 선택권 안에서 결정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환경 안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것들을 따라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욱 구원받기 힘든 제7의 인간들인지도 모르죠. 모든 것은 관객 마음입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신혜(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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