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 두 부부의 살벌 현장
작성일2010.03.25
조회수10,887
“중무장한 그 쪽 아들이 우리 아들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문제는 의도적인 가격이었다는 것이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신의 그 태도가 절 열 받게 만든다고요!”
일이 났다. 나도 크게 났다. 두 사내아이의 싸움에 부모들이 해결에 나섰건만, 초반의 기품 있고 점잖은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애들 싸움은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대학살의 현장이 바로 이들 두 부부가 있는 이곳이다.
‘D-17’의 문구가 크게 붙어 있던 지난 주 금요일 <대학살의 신> 연습실.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습이 한창이다. 그간 다소 어두운 비극 작품에 주로 서 온 이들이 코미디극에서 만났다니, 제목에 이어 배우들의 조합에서 다시 고개가 갸우뚱 한다.
"박지일씨나 서주희씨는 저와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저 사람들이 비극적인 작품보다 코미디를 하면, 갖고 있는 저 센스를 살리면 굉장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배우들의 코믹 감각을 전 못 따라가요. 굉장히 대단해요.”
연출가 한태숙의 코미디 역시 새롭다. “대본을 전달 받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서 엉뚱한 작품을 읽게 되었다”는 한태숙은 “이 작품 못하겠다고 말하려고 다시 봤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서 원래 하기로 했던 작품 안하고 이 작품 하겠다고 했다”며 웃는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 <대학살의 신>은 11살 두 소년의 사소한 몸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양쪽 아이들의 부모들이 점잖게 문제에 대해 논쟁을 거듭하지만 점자 과격해져 유치한 설전과 몸싸움까지 불사하게 되는 ‘대학살’의 현장을 담은 코미디이다.
“초반 20분까진 굉장히 점잖은데 뒤로 갈수록, 세상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웃음) 무대가 난장이 되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쫀쫀하게 짜서 잘 끌어가면서, 어깨에 힘을 뺀 보편성이 담겨 있어요. 세상이야기, 위선의식, 부부간의 균열 등을 상당히 적절하게 짜 놓은 작품이죠. 말 맛도 대단해요.”
가해자 부모
변호가 알렝, 박지일 + 자산관리사 아네트, 서주희
부부로는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박지일과 서주희는 “이번 작품은 선물과도 같다"며 입을 모은다.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역할을 할 때는 실제 일상도 영향을 받아서 평소에도 좀 우울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죠. 코미디를 할 땐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워 지는 것 같아요. 그간 힘든 작품 많이 했는데 이번엔 재밌게 즐겨라, 하고 준 보너스 같아요.”(박지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유능하나 돈이 우선인 변호사와, 그런 남편을 두어 외롭지만 밖에서는 행복하고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아내가 이들의 몫이다.
“정말 재수 없는 남편이죠. 경제적인 여건은 굉장히 풍요롭게 해 주지만, 자기 주장만 하고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고. 일을 위해서는 가정의 파괴도 상관 없다는 지금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극대화 시킨 사람이 바로 알렝이에요.”(서주희)
살인사건이라 해도 권모술수나 뛰어난 언변을 통해 사건 자체를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비열함을 갖고 있는 인물, 정의보단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라며 서주희는 열을 식히지 않는다.
“부인에 대한 외로움은 당연히 모르죠. 내가 이렇게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부인은 그걸 잘 누리며 살고 있다고만 생각하거든요.”(박지일)
아이들 문제로 시작된 논쟁 속에서 부인 아네트는 평소 느꼈던, 이 상황과 관계 없는 여러 감정과 분노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이제까지 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말끔하고 멀쩡한 복장으로 나올 것”이라는 두 사람은 “우리 속에 꿈틀대고 있었던 삼마이 기질을 기대해 달라”며 야릇한 웃음을 남긴다.
피해자 부모
자수성가한 도매상 미셸, 김세동 + 역사에 조예가 깊은 작가, 베로니카 오지혜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오지혜와 최근 영화에서 더욱 활동이 활발했던 김세동 모두 반가운 얼굴이다.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은 아들을 위해 나선 이들 부부 역시, 엉뚱한 파국으로 달리는 ‘급행열차’를 탄 건 마찬가지다.
“사실 미셸은 애들 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애는 부모를 재앙으로 이끄는 존재다, 이렇게 까지 말하거든요. 그 부분 빼고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에요. 굉장히 학식이 있는 마누라에게 늘 좀 기가 죽어 있지만요. 그런 부부 생활의 불만을 이 기회에 토로하게 되요. 쌓인 게 폭발하는 거죠.”
김세동의 말에 오지혜는 “기우는 결혼이죠”라고 웃으며 맞받아친다. 돈은 못 벌지만 입은 충만하게 살아 있는 아내 역의 오지혜는 “남편을 가르치고 조정하려는, 남자들이 재수없어 하는 사람”이라고 베로니카를 설명한다.
“헛똑똑이, 바로 그거에요. 원칙주의자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는 헛똑똑이로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작품의 의도에요.”
“둘의 싸움이 금기 해야 할 부분까지 서로 마구 건드리는, 정말 끝장내다시피 하는 데까지 가요. 나의 대변을 보는 듯한, 음식을 먹을 땐 맛있다고 먹지만, 나중엔 아주 더럽다고 여기는, 그것, 나의 그 더러운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인 것 같아요.”(김세동)
이들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육탄전 후에도 해결이 안 난단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 어떻게 변해가는 세상 속 두 부부들의 모습인지, 무대에서 확인해 볼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이 상황이 따분한 변호사 알렝(박지일)과 그런 남편을 수습 중인 아네트(서주희)
요목조목, 따지는 건 똑똑한 아내에게.(오지혜, 김세동)
"그 사건에 관련된 기사가 경제 신문에 났더라고요"
한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알렝.
"그간 쌓였던게 얼마나 많다고! 더 이상은 못참아!!"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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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신의 그 태도가 절 열 받게 만든다고요!”
일이 났다. 나도 크게 났다. 두 사내아이의 싸움에 부모들이 해결에 나섰건만, 초반의 기품 있고 점잖은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애들 싸움은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대학살의 현장이 바로 이들 두 부부가 있는 이곳이다.
‘D-17’의 문구가 크게 붙어 있던 지난 주 금요일 <대학살의 신> 연습실.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등 연기파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습이 한창이다. 그간 다소 어두운 비극 작품에 주로 서 온 이들이 코미디극에서 만났다니, 제목에 이어 배우들의 조합에서 다시 고개가 갸우뚱 한다.
"박지일씨나 서주희씨는 저와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저 사람들이 비극적인 작품보다 코미디를 하면, 갖고 있는 저 센스를 살리면 굉장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배우들의 코믹 감각을 전 못 따라가요. 굉장히 대단해요.”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 <대학살의 신>은 11살 두 소년의 사소한 몸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양쪽 아이들의 부모들이 점잖게 문제에 대해 논쟁을 거듭하지만 점자 과격해져 유치한 설전과 몸싸움까지 불사하게 되는 ‘대학살’의 현장을 담은 코미디이다.
“초반 20분까진 굉장히 점잖은데 뒤로 갈수록, 세상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웃음) 무대가 난장이 되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쫀쫀하게 짜서 잘 끌어가면서, 어깨에 힘을 뺀 보편성이 담겨 있어요. 세상이야기, 위선의식, 부부간의 균열 등을 상당히 적절하게 짜 놓은 작품이죠. 말 맛도 대단해요.”
가해자 부모
변호가 알렝, 박지일 + 자산관리사 아네트, 서주희
부부로는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박지일과 서주희는 “이번 작품은 선물과도 같다"며 입을 모은다.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역할을 할 때는 실제 일상도 영향을 받아서 평소에도 좀 우울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죠. 코미디를 할 땐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워 지는 것 같아요. 그간 힘든 작품 많이 했는데 이번엔 재밌게 즐겨라, 하고 준 보너스 같아요.”(박지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유능하나 돈이 우선인 변호사와, 그런 남편을 두어 외롭지만 밖에서는 행복하고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아내가 이들의 몫이다.
“정말 재수 없는 남편이죠. 경제적인 여건은 굉장히 풍요롭게 해 주지만, 자기 주장만 하고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고. 일을 위해서는 가정의 파괴도 상관 없다는 지금의 현대인들의 모습을 극대화 시킨 사람이 바로 알렝이에요.”(서주희)
살인사건이라 해도 권모술수나 뛰어난 언변을 통해 사건 자체를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비열함을 갖고 있는 인물, 정의보단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라며 서주희는 열을 식히지 않는다.
“부인에 대한 외로움은 당연히 모르죠. 내가 이렇게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부인은 그걸 잘 누리며 살고 있다고만 생각하거든요.”(박지일)
아이들 문제로 시작된 논쟁 속에서 부인 아네트는 평소 느꼈던, 이 상황과 관계 없는 여러 감정과 분노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이제까지 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말끔하고 멀쩡한 복장으로 나올 것”이라는 두 사람은 “우리 속에 꿈틀대고 있었던 삼마이 기질을 기대해 달라”며 야릇한 웃음을 남긴다.
피해자 부모
자수성가한 도매상 미셸, 김세동 + 역사에 조예가 깊은 작가, 베로니카 오지혜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오지혜와 최근 영화에서 더욱 활동이 활발했던 김세동 모두 반가운 얼굴이다.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맞은 아들을 위해 나선 이들 부부 역시, 엉뚱한 파국으로 달리는 ‘급행열차’를 탄 건 마찬가지다.
“사실 미셸은 애들 문제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애는 부모를 재앙으로 이끄는 존재다, 이렇게 까지 말하거든요. 그 부분 빼고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에요. 굉장히 학식이 있는 마누라에게 늘 좀 기가 죽어 있지만요. 그런 부부 생활의 불만을 이 기회에 토로하게 되요. 쌓인 게 폭발하는 거죠.”
김세동의 말에 오지혜는 “기우는 결혼이죠”라고 웃으며 맞받아친다. 돈은 못 벌지만 입은 충만하게 살아 있는 아내 역의 오지혜는 “남편을 가르치고 조정하려는, 남자들이 재수없어 하는 사람”이라고 베로니카를 설명한다.
“헛똑똑이, 바로 그거에요. 원칙주의자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세상 물정 모르는 헛똑똑이로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작품의 의도에요.”
“둘의 싸움이 금기 해야 할 부분까지 서로 마구 건드리는, 정말 끝장내다시피 하는 데까지 가요. 나의 대변을 보는 듯한, 음식을 먹을 땐 맛있다고 먹지만, 나중엔 아주 더럽다고 여기는, 그것, 나의 그 더러운 부분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인 것 같아요.”(김세동)
이들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육탄전 후에도 해결이 안 난단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 어떻게 변해가는 세상 속 두 부부들의 모습인지, 무대에서 확인해 볼 수 밖에 방법이 없다.
연극 <대학살의 신> 연습현장
시작은 품위 있게-
시작은 품위 있게-
이 상황이 따분한 변호사 알렝(박지일)과 그런 남편을 수습 중인 아네트(서주희)
요목조목, 따지는 건 똑똑한 아내에게.(오지혜, 김세동)
"그 사건에 관련된 기사가 경제 신문에 났더라고요"
한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알렝.
"그간 쌓였던게 얼마나 많다고! 더 이상은 못참아!!"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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