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아래의 맥베스> 감시자이며 피해자인 이들의 운명

“누가 나쁘고 누가 옳은 것인가,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수용소 안에서 외치는 피 끓는 이들의 절규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전쟁은 본디 부조리한 것, 그 부조리 안에서도 진실은 있는 것일까.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감시자이며 피해자가 된 한국인 군속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지난 2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한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극단 신주쿠료잔파쿠의 창립 멤버로, 국내에 <야끼니꾸 드래곤>등의 작품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신작이다.

스스로 재일교포 2세로서 겪고 느꼈던 이방인,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고 따뜻한 고뇌의 시선을 무대에 담아 왔던 그는, 이번 작품에선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었던 한국인 군속들을 응시한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해 일본이 착출한 조선 젊은이들은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의 일본군 기지에서 포로 감시원으로 있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은 연합군 포로들의 고발로 감시자에서 포로가 되고 만다.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이들의 운명이 ‘맥베스’에 견주어 지는 것이다.


한국인 전범으로 수용소에 포로로 갇힌 이들.


'죄는 누구에게 있는가?'


내일 정오, 너희들은 사형될 것이다

1일 공개된 공연 장면에서는 포로로 싱가포르 수용소에 수감된 한국 군속들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고향을 그리며 석방을 꿈꾸는 처절한 몸부림과 수 십 년이 지난 현재, 군속 중 살아남은 김춘길이 그 때의 일을 증언하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조국과 일본 모두에서 버림받은 이들의 기구한 운명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려는 인물의 노력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손진책 연출과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극단 미추 단원들의 열연으로 펼쳐진다.


"과거를 내가 증언하지요, 있는 그대로."


김춘길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

“누굴 위해서 죽어야 하는가,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좀 가르쳐 달라”는 이들의 외침과 남은 자들의 고뇌의 무대는 오는 14일까지 계속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 사진: 정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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