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나틱 > 나제비의 주원성

내외면의 완숙미를 자아내는 루나틱의 히로인 나제비 “춤춘다는 것을 좋아했었죠. 꼬마였을 때 온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간식거리를 해결했다고 해요. 그만큼 춤을 잘 추었대요.” 주원성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들려 주신 이야기다. 중,고등학교때 접하게 된 주말의 영화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뮤지컬 영화였다. 장르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그 때에는 ‘영화’라는 것은 전부 노래와 춤이 있는 것인 줄만 알고 있었단다. 영화에서 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영화를 좋아했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이 뮤지컬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마냥 춤과 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 좋아하였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그룹사운드를 조직하여 집 지하실에서 연습을 했다. 주원성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명제가 놓여 있을 때는 그 입장이 바뀌었다.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룹사운드 하는 친구들은 밴드로 직업전선을 생각했고 주원성은 대학을 위해 공부했다. 원하던 중대 국문과를 실패하고 서울예전 연극영화과를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주원성은 입학시기에 전문대에 대해서 회의가 잠깐 일었다고 한다. 밴드를 하던 친구들은 짐을 싸서 연습실을 나가고 친구들이 ‘너의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것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같은 일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나중에 주원성은 그런 친구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한다. 그 무렵 영화 플래시 댄스를 보고 흑인들의 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는 브레이크 댄스를 그룹 스파크에서 배우게 된다. 대학을 들어온 후 자신이 보았고 좋아하던 영화들이 뮤지컬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날라리 같은데 열심히 하는구나 라는 평가를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에게 종종 듣곤 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 때문에 곁들어서 들었던 소리었죠.” 라고 겸연쩍게 이야기한다. 그가 겸손의 말로 한 것이지만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을 다 해 노력했다. 외롭기도 했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연기만 신경 썼지 뮤지컬이 가뭄에 콩나듯 했던 시절에 그 누가 춤과 노래에 신경을 썼겠는가. 그의 동기들은 뮤지컬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동랑레퍼토리였다. 84년 창단되어 그가 졸업하면서 동랑청소년극단이 부설되면서 배우라는 이름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 들게 되었다. 처음 작품이 < 방황하는 별들 >이었다. 청소년문화의 부제로 만든 작품이 생각지도 못하게 그 파급효과가 컸다. 그 때에는 그 유명했던 조용필이 부럽지가 않았다 한다. 남자라면 다 가는 ‘군대’를 간다. 포병으로 갔다가 예술단이 생겨 경기도, 철원 지방에 위문으로 군생활을 했다. 제대하자마자 그의 인생은 전환점에 전환을 가져 온다. 그 전환점의 첫 작품이 < 캣츠 >였다. “준호(허준호)하고 < 캣츠 > 오디션 공고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캣츠가 될까? 생각하고 있던 때에 안무가 박상규 선생님이 < 캣츠 >를 하고 계셨는데 < 캣츠 >연습실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멋도 모르고 갔다가 < 캣츠 >를 하게 되었죠.”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작품에서 그는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을 맞이 한다. 반항아 고양이 럼텀터거를 맡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계단을 올라서게 했던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 캣츠 >에서 지금의 아내 전수경을 만났어요. 대학가요제때 보고 매력적이라고 느꼈었는데 같이 연습하고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된거죠. 아내는 꼿꼿하고 터프한 면이 있어요. 각이 있다고나 할까? 선배로서는 답답했죠. 그래서인지 아내에게 잔소리로 괴롭혔던 것 같아요. 꼬집기도 하고 많이 괴롭혔죠.” 그는 전수경에게 관심이 많아졌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아내에게 핸드백으로 맞아 기절했던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두고 보자 했던 것이 < 캣츠 > 앵콜을 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귀었던 여자와 헤어지고 시련이 되었던 시기였다. 그는 자기 나이가 아직은 결혼할 나이가 아니고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미문과도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결혼을 하고 싶었던 원인을 제공한 여인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앞날을 생각해야 하는 여자의 가능성과 믿음을 준 그 여인이 지금의 아내 바로 전수경이었다. 투박하지만 원초적인 힘이 ‘이 여자다’ 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일하는데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다 보니 서로 보완이 되기도 한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가 발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분출하고 풀어 버리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쌍둥이 부모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든든하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어릴 때 주인공이라는 걸 다 해 봤던 터였다. 옛날 < 캬바레 >라는 작품을 할 때 코러스와 여러 배역을 맡아서 했었어요. 그 때 이인철, 김민수가 했던 MC 역을 하고 싶었죠. 언젠가는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세종문화회관에 오른 < 캬바레 >에서 MC를 맡게 되었다. 부수적인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가 원했던 것을 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는 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많은 걸 알았고 배우를 하면서도 스텝의 일도 함께 하기도 했다. 번역극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극을 하고 싶은 의식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첨가되는 부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 창작뮤지컬과 라이센스 뮤지컬이 비등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단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 >, < 하드락 카페 >등을 하면서 창작극은 많이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재현이한테 프러포즈를 받았죠. 같이 < 뮤지컬 루나틱 >을 하자는 거였죠. 공연을 보고 베이직이 잘 되어 있던 작품이고 노래도 좋고 드라마도 좋은 것이라서 흔쾌히 응했죠.” 그는 < 뮤지컬 루나틱 >에 그렇게 합류했다. 사실은 김선경이 함께 하자고 요청을 했고 그전에 백재현도 요청했던 터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서 흔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창작작품에 출연한 것은 4번째이다. 그는 한국사람은 김치를 먹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퓨전음식과 뮤지컬의 대비가 좋은 예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가 든 예는 이렇다. 뉴욕김치찌개는 버터와 스팸을 넣어 느끼함과 동시에 김치의 개운한 맛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순수 뮤지컬이 우리나라의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이 창작 뮤지컬의 갈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창작에 대한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창작극을 할 때 대본이 탄탄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 루나틱 >은 독특한 구석이 있다고 한다. 재건축이라는 단계를 밟으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동지가 많이 생긴 셈인 것이다. “< 루나틱 >이 끝나면 8월에 < 사랑은 비를 타고 >를 해요. 긴장이 됩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남편으로 아들로 그리고 아버지로 사는 것과 배우로 사는 것을 해내야 하니 하루하루가 피곤하죠. 아내도 그런 말을 해요. ‘난 슈퍼우먼이 아니야’ 라고 한 편으로는 힘들지만 한 편으로는 아내를 배우로 이해하니까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들은 뮤지컬 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이다. 동료로서 부부로서 같은 부모로서 행복하게 사는 잉꼬부부이라는 것이다. 주원성은 뮤지컬 배우들이 중심을 가지고 의식 있는 배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대본을 읽고 노래를 하고 춤만 추는 그런 뮤지컬이 아닌 뮤지컬의 묘한 감칠 맛을 내는 그런 배우가 많아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가 좋아하고 선택한 < 뮤지컬 루나틱 >에서 나제비로 어떻게 분하는지 한 번 기대해 보자 --------------------- 글 : 이준한 (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김형준 (C&Com adore_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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