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디팬미팅] 언니한테 다 물어봐~ 화끈한 그녀들의 고민상담소

2011년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의 끝자락. 내내 끙끙거리던 고민들을 모두 풀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해 보자! 어설픈 위로도, 판에 박힌 정답도 사절! 이 언니들과 함께라면 정곡을 팍팍 찌르는 현실적인 대안의 물고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당당한 언니들 네 명과 플레이디비 가족들이 만났다. 감히 단언하건데 이보다 알차고 유익하며 화기애애 눈물 흠뻑 웃음 활짝인 팬미팅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만 가진 고민인 줄 알았지만 대한민국,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여자들의 속앓이가 줄줄이. 사례들 속에서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는 신기한 경험, 지금부터 시작이다.


고민상담소 패널: 김여진, 이지하, 정영주, 정애연



Q. 예전에 한 작가님이 이쪽 계통(예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 부양할 가족이 없어야 하고, 둘째, 뭘 먹고 뭘 입고 어디서 자는지 상관 없는 방랑자여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첫 번째는 되는데 두 번째가 안됩니다. 희곡을 계속 쓰고 싶은데 주변에선 방송작가나 잡지사로 취직을 많이 하거든요. 현실적인 직업을 택하는 건 도피일까요, 아니면 내공 쌓기에 밑거름이 될까요? 연극에 대한 나의 사랑을 믿고 당당히 실업자를 선택해야 할까요? (22세, 희곡작가 지망생 K)

김여진 : 노희경 작가님이 “호떡 장수가 호떡 굽듯 글을 써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매일매일 잘 써지든 안 써지든 그냥 쓰라는 거죠. 현실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상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되죠. 일단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쓰세요. 그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요. 3년이 지나면 분명히 글 쓰는 근육이 붙어 있을 거고, 그렇게 첫 작품을 내고 둘째 작품을 내고 어느 순간 글만 쓰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 때는 글만 쓰고 살아도 되요. 지금 아무것도 없고 먹고 살 것도 없는데 글만 쓰면서 뭘 어떻게 해.

정영주 :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버는 일도 내 글의 소재가 되는 거에요.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가지고 가는 거에요, 흡수시키는 거죠.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생활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에요.


Q. 제 꿈은 상담 선생님과 연극배우입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상담 선생님이라고만 하는데 연극배우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많아서 그 꿈을 감추는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은 연극배우가 될 수 있을까요? (연극배우를 꿈꾸는 17세 고등학생 K)

이지하 :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어요. 전 별로 배우답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너무나 평범하고 남 앞에 나서 본 적도 없고. 대학교 연영과 시험을 보러 가서도 다른 지원자들은 특기가 어마어마한데 난 아무것도 없고, 내가 써 간 한 장면을 연기 했어요. 교수님들이 다 웃으셨어요. 얼마나 한심했겠어.(웃음) 그런데 마음은 있었으니까.

연극을 하고 나서도 10년 간 솔직히, 대중 앞에서 내 직업이 배우라고 말 못했어요. 스스로 인정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올해 42살인데 여전히 방랑하고 내가 진짜 배우인가, 계속 해도 될까, 고민하면서 살아요.


연극배우를 해라, 하지 마라, 두 가지 중 한가지로만 답변을 해야 한다면, 하지 않고도 적당히 견딜 수 있으면 하지 말아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이게 좀 더 낫지 않나? 이 정도의 선택이라면 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이거 밖에 안 보이고 이거 아니면 못 살겠고, 그런 사람이 배우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직 열 일곱 살이고, 지금 꿈이 얼마나 유지될 지 몰라요. 어떤 미래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김여진 : 저는 조금 다른데, 배우 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공연을 보러 갔는데 너무 재밌어서 끝나고 객석에 그냥 앉아 있었거든요. 관계자가 와서 집에 가라고 했는데 그냥 한 달 동안 포스터 붙여드릴게요, 했어요. 방학이었으니까 할 것도 없었고.(웃음) 대신 매일매일 두 번씩 공연을 봤어요. 한 달 되니까 대사를 다 외웠죠. 그런데 정말 배우 한 명이 펑크를 낸 거에요. 공연 시작 15분 전에 저 보고 무대에 올라가라고 했어요. 근데 만약 내가 목숨 걸고 배우가 되려고 했다면 너무 떨려서 그 무대에 못 올라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난 내가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결국 그 공연을 1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경우이긴 한데. (웃음) 너무 좋고 재미있고, 나 하나 잘못되고 쪽팔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였죠.

이지하 : 결국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에요. 그 정도로 사로잡혀 있으면 하는 거에요. 너무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결과도 생각 안 해요. 내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 고민하고 답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Q.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공연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두 개의 길 사이에 서 있는 26세 여인)

정애진 :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님들은 나중에 다 따라와 주시거든요.
김여진 : 현실적으로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 되요. 그런데 사실 부모님 문제가 아닐 거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런 거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약간 자신이 없을 때,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남을 핑계로, 부모님 때문에 안정된 직장을 택하면 반드시 나중에 부모님 원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굉장히 비겁한 거에요. 세상은 이렇잖아요, 부모님이 원해서, 그래서 자기 하고 싶은 거 포기한 희생자처럼 다른 길을 따라가는 거, 수동적이고 비겁하게 사는 거거든요.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게 무서우니까. 그럴 거 없어요. 정확하게 자기 마음을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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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안정이 되면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지, 했는데 생각이 바뀌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성장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 2년째인데 나이도 신경 쓰이고 이상형을 만나 연애하고 싶은데 예쁘고 날씬해야지만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도약하고도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26세 대학생 K양)

정영주 : 중요한 건 결혼과 결혼 후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 내 삶에 있어서 결혼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이 있어야 되요. 주변에서 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게 부러우니 나도 가겠다는 건 내 행복을 추구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결혼을 인생의 끝에 두면 힘들어요. 인생을 열 계단으로 본다면 결혼은 다섯, 여섯 번째 쯤 되는 계단이에요. 스물 여섯 살이면 돌도 씹어먹을 나이네.(웃음)

김여진 : 연애를 많이 해요. 결혼 상대라고 생각하면 따지게 되는데, 그러지 말고 서른까지는 결혼 안 한다고 생각하고 많이 만나봐요. 그래야 정말 나한테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안목이 생겨요.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이고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되는지는 아무에게 물어보면 안돼요. 자기가 알아야 하는 거죠. 한 남자랑 6개월에서 1년 정도, 닥치는 대로 많이 만나봐요.(일동 웃음)



Q. 올해도 솔로 독거인으로 마감을 하네요. 내년에는 이 생활을 청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요? 결혼 꼭 해야 할까요? 절실한 상담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위, 아래 형제자매가 모두 결혼한 30세 직장인 N씨)

정영주 : 뭘 마감이야! 할 일이 태산이고 갈 길이 구만리인데! 친구들은 자기 일 있어, 애인도 있어, 결혼도 했어, 이런 게 비교되는 거죠? 20대와 30대는 확실히 다르긴 하지. 저도 딱 서른에 결혼했는데 원래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가 되어 보리라, 유학 비용 모으고 있었는데 나한테 대쉬하는 어린 애한테 홀딱 넘어가서.(웃음)

아직도 그 꿈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무얼 기준으로 “난 불행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선택해보고 가 봐야 그 길을 아는 거지. 중요한 건 내가 하면서 제일 행복한 게 뭔지를 찾는 거에요. 아이를 낳는 문제 등이 무게감으로 와서 여자들을 짓누르기도 하는데, 그런 잣대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런 것에 대한 신경을 자신으로 가져와서 즐기는 것도 좋아요.

결혼도 하나의 과정이고 할 수 있으면 해 봐요. 분명한 건 살면서 ‘이걸 하다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절대 살지 않게 되는 게 결혼이라는 거에요. 어쨌든 잘 유지하려고 하는 거죠.

정애연 : 결혼 자체가 두렵다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고, 내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이라는 걸 하고 싶을 때, 그 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너무 고민이 많으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것의 우선순위를 매겨요. 결혼도 남자친구가 생겨야 하잖아요. 저는 결혼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즐겁게 살고 있거든요. 아이를 통해서 그전까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결혼이 나쁘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지극히 평범한 걸 경험해 봐야지 다른 사람의 삶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사랑에 빠지면 남자에게 한 없이 잘해주지만, 저의 도도한 매력에 빠져 저를 좋아하게 된 사람은 부드러운 제 모습에 매력을 못 느끼는 듯 합니다. 계속 도도한 척을 해야 할까요? 일 할 때만 똑 부러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는 안 그런가 봐요. (신의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자기 사업을 운영 중인 30대 S씨)

김여진 : 막 베푸는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는, 여자들이 자기가 해 준 만큼 어떤 식으로든 바라기 때문이에요. 안 그런 것처럼 은연 중에 드러내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상대방은 부담이 된다는 거죠.

그 전의 주체성이나 자립성은 다 버리고 남자에게 푹 빠져서 매달리고 있는 거죠. 정말 잘해주는 사람은 해 줄 때 딱 하고 싹 잊는 사람이에요. 내가 해 준 것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어요. 근데 여자들은 안 그래, 그러기 너무 어려워.

그러니 아예 해주지 말라는 거에요. 누가 해달라고 했나?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해 준건데 요만큼이라도 고맙다는 말 바라면 상대방을 괴롭히는 거죠. 근데 제가 굉장히 남자 성격이라.(웃음)

가끔 여자들이 ‘내가 남자다, 내가 돈 벌고 내가 먹여 살릴거고, 내가 잘 해줄거다’ 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해요. 그럼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베푸는 사람이 되고, 바라는 게 없으면 되게 멋있어요. 그러면 정말 아무한테나 대쉬 할 수도 있고, 싫다고 하면 다른 사람 찾아가기도 쉽죠.
 


그리고 인생

Q. 고정관념과 편견, 가장 깨기 어려웠던 건 어떤 것이었나요? (30대 직장인 K씨)

정영주 : 나는 부당하게도 내가 중심인 세상이 아니라 세상이 중심인 곳에서 나를 보는 고정관념, 편견과 유난히 싸워서 지내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포스터 붙이는 잘생긴 남자를 따라서 우연히 뮤지컬 오디션장에 갔었는데 (웃음) 다들 김태희 같은 거야. (웃음)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어 진짜 무모하게 도전을 한 거죠. 그런데 합격 후 오리엔테이션에 갔더니 제작사 대표님이 “너 같이 생겨서 뽑았어” 하시더라고요. 무대 위 배우가 다 36, 24, 36이면 재미없지. 내가 있어야 무대 볼륨감도 생기면서 시각적으로도 다양하고.

18년 배우 인생 동안 꾸준히 편견과 고정관념에 부딪히고 극복하고 때로는 깨지고 깨트리면서 버텼어요. 고맙게도 내가 맡을 수 있는 배역과 영역을 가져보니, 참 달콤하더라고요. 상대방들은 여전히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겠지만 최소한 내 앞에서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죠. 그런데 난 부모님이 주신 가장 완성도 높은 것이기 때문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어요. 타인의 생각들에 내둘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죠.


Q. 세 개의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고 그 중 탈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고교생 멘토링 활동도 하고 있죠. 제가 조금 우유부단한 편이고 큰 불만은 없지만 이런 활동들을 하기에 제 성격이 가끔 힘들어요. 주변에선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단단해질 수 있을까요? 친구들 말처럼 후배들에게 군기 잡고 혼내고 싶지도 않은데요. (마음 여린 20대 대학생 S양)

이지하 : 나도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는데 똑같이 이랬어요. 나중엔 제가 막 울었어요, 얘들아, 한번 만 살려줘.(웃음) 난 선생님은 안되겠구나, 생각을 했죠. 전체적으로 리더를 하는 사람들은 기질이 좀 필요하기도 해요. 자신의 기질과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일을 하면 수월해 질 수도 있죠.

그런데 자기만의 방식대로 적응하면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도 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려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요. 그런데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직업이고 한 여자이고,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은 너무 높고 난 못 쫓아 가겠어, 다리가 찢어질 것 같아요. 그 기준에 맞추려면 나를 기계처럼 굴려야 해요. 전 그게 벅차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고 기준을 저에게 두려고 많이 노력해요. 크게 성공은 못할지언정 (웃음) 저는 행복해요. 스스로에게 큰 불만은 없어요.

김여진 : 주변의 간섭을 신경 쓰지 않으면 되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면 “니가 할래?” 그러세요. 그런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책임을 안 지려고 하거든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민옥(okjass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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