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 여인들의 동성애와 죽음, <콩칠팔새삼륙>

1930년대 경성에서의 동성애를 소재로 만들어진 창작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이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본공연을 시작했다. <콩칠팔새삼륙> 제작진은 지난 3일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완성된 작품의 주요장면을 공개했다.

1931년, 함께 죽음을 택한 두 여인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은 1931년 실제로 일어났던 두 여인의 동반자살사건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 된 이나오 작곡가가 두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을 구상했고, 이수진 작가와 의기투합해 구체적인 내용을 그려나갔다. 여기에 주지희 연출과 조용신 프로듀서가 합류했고, 음원 녹음과정에서 배우 조회와 최미소·신의정이 참여하게 됐다.

제목 '콩칠팔 새삼륙'은 당시 서울 사람들이 쓰던 관용구로, '콩이다 팥이다, 사 더하기 삼은 육이다' 라며 되지도 않는 말을 떠들어 댄다는 의미다. 극중에서는 주인공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세인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며 보편적인 가치기준을 강요하는 모습을 노래하는 가사로도 쓰였다.
 
류씨(조휘)는 옥임(최미소)에게 청혼하지만, 옥임은 거절한다.

주인공 홍옥임·김용주는 당시 경성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들로, 여학교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용주(신의정)는 부모의 강요로 혼인한 상태이고, 옥임(최미소) 역시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자와 결혼해야 한다.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여학생들에게 동기들과의 연애를 오히려 권장했다고 한다. 순결을 잃을 수도 있는 남자와의 연애보다 그 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에게도 혼자서만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남녀간 연애보다 동기간의 교류가 더 위안이 되는 관계였다. 홍옥임,김용주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좌절하게 된다.

음악 속에 펼쳐지는 1930년대 경성의 삶과 사랑

3일 진행된 프레스콜에서는 첫 장면을 비롯해 아홉 개의 장면과 노래가 펼쳐졌다. 집안의 강요로 시집을 간 용주는 다시 학교를 다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여학생 시절 옥임과 떠났던 기차여행의 추억을 노래한다. 의사 류씨의 청혼을 거절한 옥임은 이미 그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옥임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용주(신의정)은 모든 것을 버리리라 결심하고 집을 나간다.

이어 '자유' '거울 속의 너' 등 솔로곡이 이어졌다. 기혼자라는 이유로 재입학을 거부당한 용주는 옥임이마저 류씨를 선택했다고 오해하고, 모든 것을 버리리라 결심한다. 그녀가 집을 나간 후 옥임은 곳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류씨는 옥임에게 자신과 미국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자고 유혹한다. 조휘 배우가 춤과 함께 열창한 노래 '아메리카'는 자신만만한 모던보이의 모습을 표현했다.

미국에서 영화같은 삶을 살자고 옥임(최미소)를 유혹하는 류씨(조휘)

마침내 재회한 용주와 옥임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이 장면에서 신의정·조휘 등 세 배우가 함께 부르는 '너와 나/그녀와 나'는 환희에 찬 두 여인과 버려진 한 남자의 마음을 각기 다르게 표현한다. 그러나 여인간의 사랑은 1931년 경성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두 여인은 결국 죽음을 결심한다.

가까스로 재회한 용주(신의정)과 옥임(최미소)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사랑하는 옥임(최미소)의 마음을 알게 된 류씨(조휘)

"창작뮤지컬의 좋은 선례로 남길 바란다"

<콩칠팔 새삼륙>은 여러 면에서 창작뮤지컬의 발전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참신한 소재가 돋보이며, 작품을 통해 1940년대 경성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원 원캐스트로 공연되고, 5인조 밴드가 직접 스윙·재즈·탱고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특징.

조용신 프로듀서는 “많은 분들이 뮤지컬을 사랑하고 극장을 찾아주시는 만큼, 뮤지컬이 가진 문화적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뮤지컬이 좀 더 소재를 확장하고 사회·문화·역사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며 "그런 점에서 <콩칠팔새삼륙>이 뮤지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모비딕프로덕션과 함께 제작에 참여한 충무아트홀의 공연기획부 최명준 차장은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주제가 굉장히 새로웠고, 음악이 훌륭한 곡들로 이뤄져 있었다. 올해로 공연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도 소극장 블루에서 계속 공연을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휘 배우는 “이 작품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같이 만들어온 것"이라며 "관객분들께서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각자의 기준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뮤지컬 ‘콩칠팔새삼륙’은 8월 5일(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딸 옥임을 회상하는 홍석후 박사(최용민)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미모의 여인 화동(정연)
세월이 지난 후,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다 문득 옥임과 용주를 떠올린다.
신경미 음악감독, 이나오 작곡가, 이수진  작가, 주지희 연출가(왼쪽부터)
최미소, 조휘, 신의정 배우(왼쪽부터)
김보현, 유정은, 최용민, 정연, 김준오 배우(왼쪽부터)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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