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Lover > 이 부부의 치열하고 서글픈 일탈

한 중산층 가정의 거실. 아침 출근 길, 남편은 아내에게 그녀의 애인이 오는 지 묻고, 퇴근 후 아내는 남편이 만나는 정부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다. 단정한 원피스와 굽 낮은 구두로 중산층 전업주부의 면모를 보이는 아내가 변하는 시간은 그녀의 ‘애인’이 오는 오후 시간이다. 아찔한 하이힐과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는 그녀의 기대를 반영하듯 화려하고 육감적이다. 그리고 아내는 오후에 어김없이 찾아온 정부와 ‘남편과는 할 수 없는’ 섹슈얼한 놀이에 빠져든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금세기 최고의 작가라 불리는 헤롤드 핀터의 대표작, < The Lover >가 예술의전당에서 문을 열었다.

< The Lover >는 결혼 10년이 넘는 부부가 서로의 애인을 인정한다는 파격적인 일탈을 그린다. 영국 런던 근교에 사는 중산층 부부 사라와 리차드. 이들 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을 조금 파고들면 소통의 부재에 시달리는 권태로운 부부가 있을 뿐이다.

 
왼쪽부터 오경택 연출, 송영창, 이승비, 김호진

결혼이란 제도에 보호 받으며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을 덮친 권태. 열정 대신 자리 잡은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언뜻, 충격적이거나 혹은 우스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극을 쓴 해롤드 핀터 특유의 건조한 대사와 침묵, 생략을 통해 구현된 이들 부부의 모습은 서글프고 안쓰럽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면 연극도 부조리해야 한다”며 부조리극을 소개해 ‘핀터레이크’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한 해롤드 핀터 특유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긴 < The Lover >는 그의 기존 작품보다는 대중적으로 표현됐단 평을 받고 있다.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부부 리차드와 사라


"당신이 애인과 만날 때, 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단 생각은 안 드나?" 

이번 무대의 연출을 맡은 오경택 연출은 “헤롤드 핀터의 작품은 부조리 연극 계열이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이 쉽게 접하진 못했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유독 <티타임의 정사>로 국내에서 여러 번 공연돼 흥행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극적인 남녀 모습 보단 사람과의 관계, 소통, 이해에 초점을 맞췄다”라며 “침묵, 생략, 휴지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내면과 표면이 극명하게 분리돼 이것을 어떻게 푸느냐가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스토리는 어렵지 않다. 10년 차 부부가 권태에 빠지고 역할놀이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우유 배달부 "블라인드 가지고 장난 치는 거 다 봤어요."

 
이들의 이중생활


"이보세요, 난 남편이 있는 여자라구요."

남편 리차드 역을 맡은 송영창은 “20년 전 <티타임의 정사>을 봤지만 지금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굉장히 힘들었지만 관객과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인 사라를 연기하는 이승비는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다 문자로 작품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남녀 간의 투쟁이 너무 아름다운 희곡이라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작품에서 무대는 네 번째 배우가 될 만큼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며 “절정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머나,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이들의 치열하고 서글픈 투쟁

 

우유 배달부 역을 맡은 김호진은 “전체 극 중에서 1분 47초 정도 등장한다”며 “짧고 굵게 나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짧게 나오지만 공연에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무대는 사각 회전무대를 사용해 작품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시간의 흐름과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상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The lover >는 오는 8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스튜디오 춘(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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