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머니 속의 돌 > 17인 역을 소화하는 박철민, 최덕문
작성일2005.09.28
조회수12,043
생활의 새로운 발견
박철민, 최덕문
대학로에서 관객의 호응이 뜨거운 연극 하나가 있다. 바로 < 주머니 속의 돌 >이라는 작품이다. < 주머니 속의 돌 >은 영국에서 각종 수상 타이틀에 빛나는 영국 정통 코미디이다. 원작의 배경인 아일랜드가 한국에 와서 강원도 각색되었다. ‘8.5인의 드라마’, ‘분장실 사라지다’ 등 마케팅 tool을 내세워 성공한 케이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열 입곱 명의 캐릭터를 단 두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가장 연극적인 연극, 단 한 번의 퇴장도 없이, 한 명의 배우가 평균 8.5역을 소화해내면서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경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작품에 박철민과 최덕문은 출연을 하고 있다.
둘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더디 한다. 그 이유는 여러 캐릭터를 쉴새 없이 넘나드는 변신을 하는 두 배우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이다. ‘직접 무대에서 당신의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 그 작품 속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공연 2시간 전. 박철민과 최덕문은 무대에서 분장실로 돌아와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 늘근 도둑 이야기 >와 < 비.언.소 >의 무대에서 만난 대학로 선후배 사이이다. 연극 선배인 박철민은 무대에서 보여주는 코믹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듯 하다. 또한, 그가 하는 이야기를 글로 그대로 옮긴다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선배로서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흠뻑 들어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허물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가족과 같은 연대감을 가지게 하는 친근감을 가지게 된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이 너무도 구성지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나 고향이 같은 것은 아니고 아버님이 같은 고향이긴 하신데, 친하고 싶지 않고, 친할 필요도 없고, 친하기를 꺼려했죠. 피하다 파하다가 3년 전에 < 늘근 도둑 이야기 >로 만났었죠. 지금은 그렇습니다. 작품적으로 피하다가 ‘어차피 붙을 바에는 한 번 붙어 보자.’ 라고 생각했었죠. 후배가 건방지고, 어렵게 보듬으면서 이해하고 가고 있습니다.”
참 정겹다. 그는 어느 시골 내 친한 형과 같이 최덕문을 소개한다. 그 말에는 정겨움이 깃들여져 있다.
까불대고 떠들어 대고, 연극반에서 이강백의 작품을 하다가 대학에 와서 극단 동아리에서 연극을 하다가 자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연극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는 박철민은 18년의 세월을 연극과 함께 보낸 중년배우로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는 배우이다.
최덕문은 그런 선배와 맞서서 남자들의 정겨운 이야기를 던진다.
“저도 선배님이랑 똑같이 까불대고 떠들고, 연극 보러 다니고 했었죠. 대학에서는 연극영화를 전공했죠. 선배님은 동아리고 저는 전공이죠.(웃음). 아무 생각 없었어요.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최덕문은 그렇게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연극에 사는 사람이 되어 11년을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박철민은 연습할 때 호흡 맞추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에 개인 연습을 많이 해왔고, 결과적으로 호흡이 잘 맞는 팀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 둘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연기생활 각각 18, 11년 된 연극 생활에서 배우로서 힘든 연극은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 주머니 속의 돌 >은 20년 연극을 해야 나오는 분량이예요. 대사로 승부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냥 무대를 때우는 작품이 아닌 무대 위에서 즉각 바꿔야 하는 작품이라서 정말 힘들어요.” 17명의 캐릭터를 단 두 명의 배우가 1시간 반 동안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의 원작을 재 창조하여 올려진 작품이기 때문에 제작과정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을 뿐더러 17명의 캐릭터가 튀지 않으면서도 서로 엉킬 수 있게 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두 배우는 8월 한 달은 < 주머니 속의 돌 >의 대본을 외우느라고 정신 없는 여름을 보낸 것이다.
순수함을 가진 < 주머니 속의 돌 >은 줄거리를 떠나서 연극 자체가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의 약속’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연극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본연의 모습인 ‘순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구수하게 담겨져 있는 강원도 사투리에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죽음. 다소 주제는 무거울지라도 엮어가는 구성과 스타일은 코미디로 풀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우리나라의 해학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해학에서는 박철민과 최덕문이 큰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1시간 40분 동안 공연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첫 공연을 서현철씨와 홍성춘씨가 했는데 1시간 30분 조금 넘었어요. 그런데 저희 팀은 너무 달려서 1시간 25분에 공연을 끝낸 거예요. 잘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즈음은 천천히 가요. 저희가 즐기면서 공연을 하다보니 시간은 자연스럽게 1시간 30분에 마치게 되더라고요.” 그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 주머니 속의 돌 >의 매력에 흠뻑 취해 있다.
즐거움을 주고 싶어하는 두 배우는 2인극의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하고 있다. 쉽게 도전할 것이 아니라면서 내공을 더 쌓아서 자기 자신을 표출하고 싶을 때 2인극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박철민은 “첫 시도이고 이런 연극이 나올 또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찰지게 잘 표현했어요. 연출이나 배우들이 수준급이 아닙니까?(웃움) 솔직히 ‘이 작품을 제가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하는 사람들 아주 건방지게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제가 만들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아요.” 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공감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많이들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연극입니다. 아! 그리고 연장은 하지 않습니다. ‘연장할 때 보러 가지’라고 속단하지 마시고 10월 말까지 꼭 찾아 주셔서 ‘이런 연극이었구나’ 라는 것을 몸소 체험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덕문은 후배로 끝 말을 잊지 않았다.
완전히 형식을 깨어버린 < 주머니 속의 돌 >을 관극하는 나를 보게 된다. 박철민과 최덕문이 풀어 놓는 < 주머니 속의 돌 >을 10월 말까지만 기대해 보면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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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김형준 (C&Com adore_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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