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

내 새끼에 어린 기쁜 웃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는 회마다 웃음이 번져 나온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눈물이 주르르 흘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 하염없이 눈물이 내린다. 지난해 6월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올해 5월 국립극장 공연에 이어 세 번째로 공연되고 있다. 관객들에게 잔잔한 여운이 아닌 격동과도 같은 슬픔과 가슴을 치는 묵직함이 밀려들어 온다. 경주시 시골마을엔 정신지체 아버지 ‘이출식(김학선)’과 오른팔이 마비되고 다리마저 절름거리는 주책바가지 수다쟁이 팔푼이 엄마 ‘김붙들(염혜란)’,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선호(장정애). 선호는 소아암에 걸려 대구 병원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아빠 이출식은 자신이 운다고 내던져 정신지체를 앓게 한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아들에게도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이 손톱을 깎아 주고 발톱을 깎아 준다. 때때로 업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아버지에게 느꼈던 사랑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엄마 김붙들은 사고로 인해 팔이 뒤틀리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입은 걸고 욕이 끊이지 않는다. 입도 가볍다. 거기에 팔푼이다. 그러나 그녀는 딸 향이를 보내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이다. 아픈 선호를 살리기 위해 향이의 사진을 버리지 못하고 선호 누나인 선향이가 선호를 살려 줄거라 믿는다. 이들 가족의 지지리도 눈물겨운 가족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극 <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는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다 그렇듯이 선호의 아버지도 그렇게 했다. 선호의 누이 선향이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아내에게 그것을 태워야 선향이가 좋은 데로 간다고 믿고 있는 아버지 이출식. 그렇지만 아내 김붙들은 선향이가 선호를 살려 줄 것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차라리 죽어 선호를 살릴까 하는 말을 할 때 아버지의 마음에는 각인이 되었나 보다. 목사는 아버지에게 기도하면 모든지 들어 주신다는 말에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선호의 수술비가 마련되고 내일이면 선호는 수술을 받으러 대구에 큰 병원으로 간다. 그날 밤 오랜만에 노래하고 춤을 춘다. 춤이라고 할 수 없는 춤은 그 가족들만이 느낄 수 있는 언어의 춤이다. 그 춤은 천상의 춤일지도 모른다. 선호가 수술 받으러 가는 날 아버지는 교회로 식구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전날 아내 김붙들에게 받은 돈 6만원에서 5만원을 헌금통에 집어 넣는다. 아내 김붙들은 아까워하고 아버지는 기도하라고 한다. 선호는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김붙들은 선호가 낳아 주기만을 바란다. 엄마와 선호는 먼저 대구로 떠나게 되고 아버지는 선호를 불러 세워 한참을 바라보다가 ‘밥 많이 묵으라’라는 말만 한다. 아내와 아들을 떠나 보내고 그의 품에서 아버지의 초상화를 꺼내 십자가 앞에 놓는다. 향이의 사진을 불태운다. 그의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기도할 수 없던 아버지 주머니에 있던 돈 만원을 다시 헌금통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 기도한다. 그리고 그는 농약을 먹는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활짝 웃는 얼굴로 너무도 조용히 죽어간다. ‘내 새끼’ 아버지는 구천을 떠도는 자신의 딸 선향이를 좋은 세상으로 보냈다. 선향이가 좋은 세상으로 간다면 선호를 살릴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농약을 마신다. 그래서 눈먼 아버지는 선향이와 선호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었다. ‘아버지’ 내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의 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하셨을 것 같은 <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는 내 아버지를 말하고 있다. 내 아버지의 죽으면서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그 큰 마음이 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서럽도록 울었다. 나이 든 아버지 때문에. 가슴에 품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살며시 펴 보였다. 애절한 사랑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사랑을 대면하게 되었다. 먹먹하다. 나이 든 아버지를 생각하는 데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먹먹할까? 정신지체 아버지, 신체장애 어머니, 소아암을 앓는 아들의 가족애는 눈물겹다. 징글징글한 이야기를 재미와 유쾌함으로 때로는 폭소로 펼쳐 놓으면서 20-30분 동안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물결이 되어 퍼져 나간다. 신파이면서도 세련된 이야기 < 눈먼 아비이게 길을 묻다 >는 7월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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