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
비련의 여인 비올레타
잘츠브루크 오페라 페스티벌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를 오랜만에 관람하게 되었다. 작지만 알차게 준비된 < 라 트라비아타 > 무대는 소담스러우면서도 유럽 특유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올레타에 크리스티나 시미오네스크 샌듀, 알프레도에 비올렉 사프라칸이 맡았다. 고전시대에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관람하는 느낌을 가지면서 관람에 임했다.
매년 열리는 잘츠브루크 페스티벌에 주역으로서 초대받은 루마니아 국립오페라단은 < 라 트라비아타 > 말고도 < 토스카 >, < 카르멘 >의 작품을 가지고 공연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작곡가 주세피 베르디.
선이 굵은 남성적인 작풍과 애국심과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지금까지도 전세계 수많은 오페라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심금을 울리는 거장 베르디는 < 리골레토 >, < 아이다 >, < 오텔로 >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내어 놓았지만 많은 작품 중에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작품은 < 라 트라비아타 >이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 라 트라비아타 >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 라 트라비아타 >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 라 트라비아타 >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실존인물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소설 < 삼총사 >로 유명한 뒤마 페르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에 마리 뒤플레시스의 살롱을 드나들었는데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반하여 남몰래 연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후일 뒤마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 동백곷 여인 >이란 소설을 발표했고, 이 작품은 희곡으로도 각색되어 파리의 연극무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연극을 보게 된 것은 1852년 파리에서였는데, 당시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채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불안한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베르디의 처지와 비슷한 두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감명을 받아 오페라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 알다시피 초연은 실패였다.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가수의 풍만한 몸매가 폐렴으로 죽어가는 가련한 여인 비올레타 발레리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이탈리아인은 프랑스 파리의 사교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도 실패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벨칸토 오페라의 훌륭한 계승자이며 그 형식의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한 작곡가였다. 기존의 전통적 스타일에서 탈피하려고 했던 가닭은 다름 아닌 극과 음악의 이상적인 조화를 추구하였다. 벨칸토 오페라는 긴 셰나(Scena)를 중심으로 기교를 통한 목소리의 연기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극의 진행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그랜드 오페라의 경우는 프랑스식의 엄격함 때문에 일정한 규격으로 짜여져 있어야 하는데(5막으로 구성되고 발레가 포함되어야 하며 중간에 대사가 나와서는 안됨) 이는 극과 음악의 조화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로지 볼거리를 위한 것이었고 무대 장치 또한 불필요하게 사치스러웠다. 베르디는 소재면에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 내용상으로 남녀간의 사랑, 분노, 운명, 좌절 등의 인간적인 특성이 나타나 있다. 인간적인 면을 주로 사용한만큼 성악을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극들을 주도한다.
< 라 트라비아타 >도 예외는 아니다. 주옥 같은 아리아들 아, 그이인가(Ah, fors e lui-비올레타), 그를 떠나선 즐거움이 없네 (Lunge ba lei per me non 'ha diletto-알프레도), 저 프로벤자, 네 고향 발은 해와 달을 (Di pravenza il mar-제르몽), 영원항 이별이여! (Addio del passato-비올레타) 등과 이중창에 푸른 입술!(Oh qual pallor-비올레타, 알프레도), 사랑아! 파리를 나와 함께(Parigi, o cara, noi la seremo-비올레타, 알프레도) 등과 축배의 노래 (Brindisi-합창), 아! 비올레타 (Ah! Violletta! Voi Signor!-비올레타, 알프레도, 제르몽, 안니나, 의사)의 5중창 등 유명하고 주옥 같은 노래들로 차있는 오페라이다.
부연 설명이 많은 만큼 작품으로는 말할 필요도 없는 오페라라는 것이다. 이번에 내한한 잘츠브루크 오페라 페스티벌 팀은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앞에서 < 토스카 >도 그랬듯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추어진 작품으로 조화를 이루며 좋은 무대를 선사해 주었다. 비올레타를 맡은 크리스티나 시미오네스크 샌듀는 별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또한 연기력도 빠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기품이 있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무대에서 발산하여 주었고, 매력이 넘치고 갸날픈 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와 반면 알프레도를 맡고 있는 비올렉 사프라칸은 오케스트라의 박자와 어긋나는 아리아와 이중창을 들려주어 아쉬움을 샀다. 베르디의 이중창은 그 선율이 아름다워 화음의 조화가 극에 달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박자 때문에 그 맛을 못 살린다니 극의 흐름이 깨지고 있었다. 제르몽의 아리아 ‘저 프로벤자, 네 고향 발은 해와 달을 (Di pravenza il mar)’는 아들 알프레도를 만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호소력 짙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곡이다. < 라 트라비아타 >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리아이다. 이 곡은 2막에 있는데 바리톤의 음성이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면서 은근히 파고 드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베르디는 바리톤의 음들을 많이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체 3막 중에서 으뜸으로 뽑을 수 있는 막은 모두 다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막은 처음부터 1막 끝까지 우리가 흔히 듣던 멜로디들이 귀를 즐겁게 해주고, 2막은 알프레도를 위한 비올레타의 배려, 그 배려에 더 큰 사랑을 느끼는 알프레도, 비올레타에게 아들과의 헤어짐을 신사적으로 권하는 제르몽,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희생 등의 심리묘사가 아리아와 이중창에 모두 들어 있어 구구절절 사랑하기 때문에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들을 줄거리에 담고 있다. 3막은 비올레타의 최후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비올레타의 마지막 대사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참 이상도 해! 격렬하던 고통이 사라진 듯 하오. 다시 태어난 듯이 힘이 솟고, 아! 다시 살 것 같아. 아! 이 기쁨” 이것이 비올레타의 마지막 대사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던 알프레도에게 안겨 숨을 거둔다. 이 모든 심리적이고 아기자기한 아픈 사랑의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연주와 아리아, 이중창, 오중창, 합창 등으로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물해 주어 기쁘기만 했다.
기회가 되어 다음에도 한국으로의 연주를 계획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극장에서 그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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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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