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산다 < 루나틱 >
작성일2005.07.07
조회수10,020
잘 버무린 웃음과 진한 감동
루나틱은 ‘달의 영향을 받은’ 의 뜻에서 옛날, 달에서 나오는 영기에 닿으면 미친다고 여겨졌다. 미치광이, 괴팍스러운 사람, 괴짜, 바보 등을 일컫는 말이며 정신 이상자라고 칭한다. 정신병자 같은 이야기의 뮤지컬을 문화일보홀에서 대학로로 옮겼다가 또 한 번 대학로 씨어터 일에서 일을 냈다. 미치지 않으면 진짜 살기 힘든 세상에 정상인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정신병자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뮤지컬이다.
17만 관객을 모았다는 기록도 대단하지만 ‘굿닥터’ 대본을 기초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것도 경이롭다. 웃음과 폭소 뒤에는 언제나 울음이 있었고, 그 울음 뒤에는 하염없이 볼을 흘러내리는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주원성, 김선경, 김법래의 합류로 백재현에서 이름을 바꾸고 < 루나틱 >에 전염하고 있는 김태웅이 만나 콜롯세움의 축소판 무대에서 사람을 웃기고 또 울린다.
제비로 태어난 나제비. 친구인 남편을 이용해 부인을 유혹하지만 그의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자살해 버린 그녀를 나중에야 사랑했음을 깨닫고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모든 여자를 그녀로 착각하게 되는 나제비. 죽은 남편의 퇴직금을 받으러 갔다 모자란 돈을 은행에 찾아가 광적으로 집착을 보이면서 돈을 받아 내려 한다. 그 집착에 못이겨 지점장은 돈을 내어 주지만 고독해의 병적인 집착은 망상으로 빠져들고 만다. 개방적인 아버지 무대포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남자가 될 수 있게 선물을 준비하는데 창녀와의 하룻밤을 선사한다. 그러나 무대포의 아들은 에이즈로 죽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강박관념으로 미쳐버린 무대포. 객석의 정상인. 그러나 충격적인 그의 사연들이 다른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간단한 스토리이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 루나틱 >. 몇 년 사이에 아버지가 자녀를 한강물에 던져 죽게 하고, 어머니를 죽여 그 시체가 썩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그 집에 산 아들. 유괴한 아이를 돌려 보내지 않고 죽게 만들어 버린 이야기 등 너무도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세상을 김태웅은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주제로 나제비, 무대포, 고독해, 정상인 네 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풀어내는 사연을 코믹하게 풀어내어 세상에 만연된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정신 이상자들의 병을 고쳐주고 있는 의사에 김선경. 그녀가 이끌어 가는 극 내내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는 도도하고 때로는 섹시하게 때로는 자상한 의사로 때로는 같이 미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정신 이상자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주원성은 나제비로, 무대포의 아들로, 은행의 직원으로 분하여 극중 극의 역할을 소화해 내고 있다. 30대에서 10대로 또 20대로 종횡무진하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그는 천상 배우인 것이다.
고독해의 양꽃님은 나제비의 사랑을 믿었다가 배신당해 자살하는 여자로, 집착증 강한 남편을 잃은 할머니로, 창녀로 분하여 열연한다. 또한, 무대포의 인성호는 나제비의 순진한 친구로 지점장으로 아들을 잃는 무대포로 분하여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루나틱 >의 백미는 정상인이다. 김법래의 연기는 물이 오를 데로 오른 혼신의 연기를 보여 준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관객들과 같이 엄청난 호흡의 리듬을 가지고 간다.
< 루나틱 >의 김태웅과 주원성, 김선경, 김법래의 힘은 씨어터 일에서 폭발하고 있다. 김선경은 < 루나틱 >에 출연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주원성에게 SOS를 쳤고 흔쾌히 출연을 응해 주었다. 그리고 김법래도 선뜻 참여하겠다고 하여 이루어진 < 루나틱 >팀이 된 것이다. 연출과 배우들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어 관객들에게 보이는 < 루나틱 >이 사랑 받을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작품에서 보여주는 시사성 주제도 잃지 않는 드문 창작 작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 세상을 딱 꼬집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정상인으로 사는 것이 미친 사람보다 더 못하기에 차라리 살짝 미쳐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의미라고 꼬집고 있다. 극장을 찾아 < 루나틱 >이 시작하면 당신은 미치지 않으면 < 루나틱 >이 재미없고 따분하고 최악의 뮤지컬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제대로 미친다면 < 루나틱 >의 매력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상인이 되는 것보다 미치는 것이 더 인간다운 < 루나틱 >이 되자. < 루나틱 >을 즐겨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이길 거부하지 않는 이상 미쳐야 사는 것이다. 미쳐 보자. 미치자. 그리고 한 세상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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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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