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머니 속의 돌 > 박철민, 최덕문 편

“< 주머니 속의 돌 > 마이 재밌어” ‘강원도 사투리로 한다구? 이거 또 트렌드만 따라가는 연극 아냐?’ 라는 섣부른 생각에 이 연극을 그냥 지나친다면, 여러분은 길거리 떡볶이 집에 앉아있는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떡볶이 먹고 싶다...’란 생각만으로 그냥 지나치고 마는 서글픈 인간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영국작가 메리존스가 쓴 이 < 주머니속의 돌 (원제 : Stones in his pockets) >은, 배우들이 한 번도 무대 뒤로 퇴장하는 일 없이 2인 17인역의 변신을 거듭하는 이른바 ‘코믹 탈의극’이다. 2000년 5월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현재까지 영국 투어공연이 지속될 만큼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극중 배경인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은 강원도 산골마을로 옮겨 왔고, 할리우드는 서울로 설정을 바꿨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온 영화 촬영팀이 강원도 시골마을의 사람들을 엑스트라로 쓰면서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축으로 한다. 촬영이 시작되면서 엑스트라 배역을 얻지 못한 청년이 주머니 속에 돌을 넣고 물에 빠져 자살한다. 마을 사람들과 촬영팀은 예산을 생각해 일정대로 촬영 강행을 종용하고, 마을 사람들은 장례식을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는 엑스트라이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나 인생에서 단 한번 찬란했던 한때가 있었겠지만, 남들의 눈에는 조명과 박수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들이 아닌가... 이 극의 갑택과 진구처럼 스스로에게 배역을 주고 박수를 쳐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다 총 17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이 연극은 단 두 명이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여기서 이 연극의 연극적 상상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꽃 장식 모자, 지팡이, 안경, 손수건만으로 여배우가 되었다가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감독이 되기도 하는 등 눈앞에서 잠시의 틈도 없이 변신하고 천연덕스럽게 극은 진행된다. 그 상상력의 허용은 전적으로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상상력에 기대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배역을 숨 돌릴 틈 없이 넘나들면서도 각 역할마다의 호흡을 놓치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와, 그 감정에 동참하고 연기에 감탄하며 배우들의 호흡을 함께하는 관객이 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는 연극이란 흔치 않으니 말이다. 최근에 망망대해에 상어와 사람 한 명이 나온 ‘오픈 워터’라는 영화도, 이 연극을 봤더라면 그런 환불소동까진 빚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어는 등으로 물을 뿜으며 고래인척, 지느러미로 박수를 치며 물개인 척 했을 테고, 사람은 물갈퀴를 달고 인어인척하며 적어도 대여섯 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이 연극의 커튼콜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두 명의 배우 이외에 조명과 박수를 받는 이들은 무대 곳곳에 걸려져 있는 모자들. 그 모자들에게 치는 박수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모자들과 함께한 그들의 이야기는 훌륭했다 한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며 번역극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매끄러운 연출과, 관객인 내가 배우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자연스런 연기 또한 연극에서 배우가 가져야 할 미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다져진 내공으로 드라마와 영화까지도 넘나드는 배우 박철민과 최덕문이 짝을 이루고, 서현철과 홍성춘이 팀을 이뤄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한 사람이 8.5인의 다양한 연기개성을 선보이는 만큼, 내용을 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픈 충동을 느낄 만하다. 화려한 무대장치가 없어도, 유명세를 타는 배우들이 없어도, 연극을 위한 연극적 연기가 없어도 좋은 연극이란 어떤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극을 본 강원도 사람은 혹 이렇게 말할까? “웬 총각이 여자가 되미.. 할마이도 되미.. 울맀다가.. 웃깄다가..."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마이 재밌어~” ----------------------------- 글 : 백성운(개그콘서트 작가 dovan@naver.com) 사진제공 : 극단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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