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정원의 Klavipoesy] F. Chopin ‘Polonaise’
작성일200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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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Chopin의 Polonaise
Polonaise
폴란드의 대표적인 민족무용이나 그로부터 발생한 기악곡의 명칭이다. 무용은 16세기 말 궁정의 행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며 여러 조의 남녀가 나란히 줄을 지어 나아가면서 춤을 춘다. 원래 기사들의 춤이었으나 뒤에 여성 파트너가 끼이게 되었다. 장엄하고 격식 있는 무용으로궁정이나 귀족들의 저택에서 무도회가 시작될 때에 추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무용에서 독립된 기악곡형식이 나타났으며, 보통 속도의 3박자로서 여성(여린박) 마침을 지닌 프레이즈 구조, 짧은 리듬 동기의 반복이 특징이다.
1800년대에는 폴란드의 J. 코즐로프스키와 M.K.오진스키의 피아노곡에서 보기와 같은 리듬이 정형화되어 19세기 폴로네즈의 특징을 이루었다. 폴로네즈는 베토벤, 슈베르트를 거쳐 쇼팽의 피아노곡에서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는데 고도로 세련된 예술성과 함께 폴란드의 민족성을 반영하는 웅장한 표현으로서 널리 알려졌다.
Chopin, Fryderyk 쇼팽(1810.3.1∼1849.10.17)
폴란드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바르샤바 출생.
아버지는 바르샤바 육군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프랑스인 니콜라스 쇼팽이며, 어머니는 폴란드의 명문 귀족 출신인 유스티나 크지노프스카이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17년 정식으로 A. 지브니에게 피아노를 사사하였는데, 18년 공개연주회에서 기로베츠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22년부터는 바르샤바 음악원 창설자인 J. 엘스너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우고, 중학 재학 중에 러시아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 칭송을 들었다. 또, 시골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며 폴란드의 민속음악에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6년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등을 작곡하고, 이 무렵 J.N.후멜과 사귀게 됨으로써 창작하는 데 있어서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30년 11월 쇼팽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는데, 폴란드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 후 그는 후멜, 탈베르크, K. 체르니 같은 피아니스트와 교류를 가졌고, 21년 9월 빈을 떠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여, 러시아군에 의해 폴란드 혁명이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엇다. 혁명에 큰 기대를 걸었던 쇼팽의 실망은 컸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혁명 실패의 소식을 듣고 작곡한 것이 오늘날 ‘혁명 에튀드(작품 10의 12)’로 불리는 작품이라고 한다.
31년 9월 중순 파리로 나온 쇼팽은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C. 칼크브레너에게 피아노를 사사할 예정이었으나, 그의 개성이 상실될 것을 염려한 친구 F. 리스트와 F. 힐러의 만류로 이를 중지하고 만다. 32년 그는 파리에서의 최초의 연주회를 개최하여 호평을 받고, 그 뒤 폴란드 귀족의 소개로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드여놓았으며 이 무렵부터 작품도 활발하게 출판되기 시작했다.
35년 드레스덴에서 바르샤바 시절의 여자친구인 M. 보진스카를 다시 만났고, 이듬해에는 약혼으로까지 진전되었으나, 이 때 쇼팽은 이미 페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반대도 많아 결국 파혼하게 되었다.
이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여류문학가 G. 상드였다. 쇼팽보다 6세나 연상인 상드는 쇼팽의 지병에 신경을 쓰며 모성애적 애정으로 그를 돌봐줌으로써 이 두사람의 관계는 약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46년 가정불화가 원인이 되어 쇼팽은 상드 곁을 떠났다. 그 후 쇼팽의 건강상태는 악화일로를 거듭하였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하여 48년 영국으로 건너가 연주회와 개인적 모임 등에서 피아노를 계속 연주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후 그의 건강상태는 더욱 악회되어 개인교수 이외의 활동을할 수없게 되었고, 이듬해 가을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2주 후인 10월 30일에 거행되었는데, 그가 바르샤바를 떠날 때 선물로 받은 폴란드의 흙이 그의 유해 위에 뿌려졌다.
쇼팽의 작품에는 가곡과 첼로소나타, 피아노 삼중주곡 등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약 200곡에 이르는 피아노 곡이다. 그리고 협주곡 2곡, 소나타 3곡 이외에 24개의 전주곡, 2집의 연습곡, 4곡씩의 발라드와 스케르초, 19곡의 야상곡, 즉흥곡, 15곡의 왈츠, ‘영웅’을 포함한 11곡의 폴로네즈, 55곡의 마주르카, 즉흥곡, 자장가, 뱃노래 등의 낭만파적인 소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특징이다.
Polonaise(No.6) in A flat major, Op.53 “Heroic”
‘영웅폴로네즈’의 이름으로 너무나 유명한 1842년의 작품이다. 폴란드의 과거 화려했던 시대를 연상케 하는데, 그 구상의 웅대함과 완벽한 표현력이 영웅에 비길만 하기 때문에 ‘영웅 폴로네즈’라 불리운다. 구성이 섬세하나 당당하며, 웅대함을 지니고 있어 ‘영웅’이라는 곡목에 어울린다. 세도막 형식의 이 곡은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던 폴란드를 상기 시킨 듯이 규모가 웅대할 뿐 아니라 그만큼 완벽하기도 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찬란한 곡상과 더불어 완벽한 표현으로 ‘폴로네즈’ 최고 걸작이라 뽑을 수 있다. 아우구스트 레우의 의뢰로 작곡했으며, 곡은 의뢰자에게 바쳐졌다.
Polonaise(No.7) in A flat major, Op.61 “Fantasie”
1845-1846년 사이에 작곡된 이 곡은 폴로네즈이면서도 폴로네즈의 형식에서 먼 것이어서 ‘환상 폴로네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곡은 비통한 고뇌가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는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의 9년 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실의에 차있던 시기였고, 또한 병마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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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Chopin의 Polonaise(No.6) in A flat major, Op.53 “Heroic”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연주시간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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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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