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으로 채색한 '호두까기 인형'
작성일200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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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안무가 매튜 본의 패러디 춤극 ‘호두까기 인형’(30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의 키 워드는 ‘관능’이다. 매튜 본은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지만 원 안무자 마리우스 프티파의 그것과는 철저하게 다른 작품을 그리고 있다.
프티파는 호두까기 인형을 중심 모티브로 해서 행복한 가정의 즐거운 성탄 축제를 동심의 꿈으로 꾸몄다. 그러나 매튜 본은 행복한 가정을 불행한 고아원으로, 순수한 동심의 축제를 욕망과 관능의 향연으로 바꿔놨다. 순백의 눈꽃의 왈츠를 힘찬 에로틱 스케이팅 댄싱으로, 화려한 사탕과자 나라의 축제를 핑크빛 관능의 파티로 채색했다. 같은 음악으로 이렇게 다른 표현이 가능한 지 믿기 힘들 정도다. 프티파는 원곡의 표면적인 밝음과 아름다움에 춤을 실었다면, 매튜 본은 음악의 깊은 심연에 몸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프티파는 아름다운 낙관에서 클라라와 왕자의 행복을 찾았다. 하지만 매튜 본이 마련한 우울한 자본주의의 그림자에서 클라라가 진실한 사랑을 찾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매튜 본의 드라마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변한 환상의 왕자는 악덕 고아원장의 딸 슈거 공주의 차지가 된다.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오데트가 흑조 오딜에게 왕자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대중춤을 지향하는 매튜 본이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현실적인 선택으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해피 엔딩을 준비했다. 꿈에서 깨어난 클라라가 애인과 함께 창을 깨고 지옥과 같은 고아원을 탈출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튜 본의 신랄한 블랙 유머가 특히 빛난다. 상징성이 넘치는 무대, 대중적인 춤사위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강력한 표현력이 매력만점이다.
김승현기자
2004. 5. 13.[ⓒ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