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경이 함께하는 양희은 33년 드라마 콘서트

동생 양희경의 목소리로 듣는 언니 이야기.. 언니 양희은의 행복했던 시간들, 아파했던 기억.. 그리고 사랑. 이번 양희은 33년 드라마콘서트 언제나 봄날은 동생 양희경이 언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추억들을 시작으로 데뷔 후의 모습들을 회상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콘서트이다. 어쩌면 이는 단지 가수 양희은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들, 마대들,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유쾌하고 발랄한 양희은의 모습! 동생 양희경과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콘서트 언제나 봄날은 양희은에게도 매우 색다른 시도이다. 하얀 목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삶을 보듬어주는 주옥 같은 양희은의 명곡들과 동생과 함께 그리고 관객과 함께 쏟아내는 유쾌한 수다에 동참해보자. 양희은 33년 드라마콘서트 언제나 봄날 Preview 언니, 그 청춘을 되새기다 봄이 가져다 주는 나른한 향취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자극한다. 겨울내 움츠렸던 신체기운을 생동하게 만들어 집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보다 가볍게 느껴지는가 하면, 어디론가 끝없이 뻗은 푸른 벌판을 내달리고픈 벅찬 마음이 요동친다. 따뜻한 햇살이 제공하는 꽃그늘 아래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찔한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 아늑한 시간 속에 내달리는 마음은 산 속으로 들 속으로 만이 아니다. 기억 속 먼 곳, 긴 시간을 가로질러 그 언젠가 시선이 간절히 멈추었던 유년의 아득한 순간에 이르고야 만다. 애지중지하던 낡은 장난감 하나, 멀게만 느껴지던 하교길의 골목, 가슴 아렸던 연애편지 한 구절, 긴 밤을 세워 읽은 낡은 책…… 소년의, 혹은 소녀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 무언가 끝없이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순수함의 고통은 봄의 냄새와 함께 진한 향수로 다가온다. 5월 과 함께 시작을 여는 양희은의 콘서트 “언제나 봄날”은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하는 중년층, 그것도 특히 여성층을 위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동생인 양희경이 언니와 함께 전면에 내세워진 것만 보더라도, 이 공연이 음악으로, 연기로 성공한 두 자매의 화려한 앙상블로 꾸며질 것임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언니의 무대에서 멘트를 전담한 양희경은 ‘드라마 콘서트’라는 컨셉에 걸맞게 , 특유의 넉살좋은 제스쳐와 말솜씨로 언니와 얽힌 추억과 사연들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했다. 말하자면 이 공연은 양희경이 1인칭 해설자로 나선 한 편의 음악 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녀는 줄곧 개구진 언니의 엉뚱한 시도에 희생양이 되었던 자신의 고달픈 기억이나, 각종 강아지가 즐비했던 집안 풍경, 라면과 회수권, 고무신에 청바지로 추억되는 대학시절의 언니의 모습, 그리고 결혼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언니의 인생역정을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깔깔대며, 생생하게 전달했다. 덕분에 양희은 씨의 멘트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으나, 공연 전체적으로는 끊김이 없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긴장감을 놓을 세 없이 빈틈없이 꽉 차여진 구조가 되어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구조에 일조했던 것으로 무대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함과 강력함을 주무기로 하는 댄스나 락 음악과는 달리 통기타만 달랑 하나 둘러메고도 완성되는 그 지극한 소박함을 기반으로 하는 포크 음악이 현대적 무대효과와 적절하게 조우하는 광경은 인상적이었다. 첫 곡 “숲”에서 PIGI 영사기법으로 샤막 위에 펼쳐진 푸르른 숲과 드넓은 들판과 광야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할 뿐더러 동시에 노랫말과 적절히 부응하여 도입부의 인상을 강렬하게 남겼다. “내 어린 날의 학교”나 “백구” 등에 등장했던 촌스런 옛 향수 가득한 흑백 사진의 영상, 편지지 화폭 같은 영상 위에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의 가사가 한 줄, 한 줄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서서히 위로 올라가는 것도 노래에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 진짜 마냥 무대 위를 빽빽히 채우고 있던 헐벗은 나무기둥들이 내뿜는 스잔한 분위기 사이로 불리우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서”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평소보다 더 가슴 아프게 들렸다면 오산일까. 양희은의 노래가 강렬한 제스쳐나 표정변화 없이 단지 목소리의 풍부한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다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가수 양희은만의 공연이 아니라 ‘자매’의 공연이었다는 데에 중점을 두면 좋을 것 같다. 혹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음악적 시도의 부재를 일갈하고 싶다면, 중년 여성의 노스텔지아적 취향을 공략한 점이 과거의 암울한 시대를 비추어 주던 아이콘으로서의 양희은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면 동생 양희경이 공연 중 멘트에서 남긴 말이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될 듯하다. 그녀의 말처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한 채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은 생각치 않은 채 양희은은 마치 그 때 그 모습이어야 한다는 데서 우러나오는 실망감은 불합리한 것이다. 포크음악이란 원래 투사에 의해 불리우는 저항음악이라기 보다는 간소한 악기 운영만큼이나 개인적인 처연함을 불리우는 데에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음악이다. 70년대의 양희은의 음악이 억눌린 사회적 상황에서 젊음이들의 희망이 되었다면, 지금의 양희은의 음악은 가난과 억압의 시대에 유년과 청춘을 보낸 중년의 세대가 그 추억을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하게 할 수 있도록, 그래서 현재의 생활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 웃음을 머금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 행복을 찾는 실마리 - 이번 공연의 코드는 ‘언니’였다. 든든하고 믿음직한, 그리운 언니. 양희은과 듀엣으로 부른 “한사람”에 이어 양희경은 여성주의 음악 가수 안혜경의 “사랑하는 언니에게”를 부르며 관객의 후렴구 합창을 유도했다. 그 노랫말처럼 ‘등대 같던, 호수 같던, 언덕 같던, 조랑말 같던’ 언니는 양희은을 떠올리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련한 듬직한 큰 언니라도. 친근한 시선을 주고 받으며 “일곱 송이 수선화”를 부르는 두 자매의 모습이 정겹고 부럽다. 언니란 저런 것인가. 좋은콘서트 객원기자 오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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