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42번가'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2)
작성일2004.08.10
조회수8,546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스킵하실 분 스킵)
페기 소여는 이제 겨우 서울에 상경한 촌뜨기 여자에 불과하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무척 유명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도회적이지 않은 순박하면서 순수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뮤지컬에 출연하고 싶어하며 스스로의 댄스실력과 노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그런 그녀가 줄리앙의 새 공연 연습장에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플롯은 사실 무척이나 단순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준비하는 극단내에서의 사랑과 성공기를 담았다. 즉 줄거리는 몇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순박한 시골소녀 페기가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우연히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은채 스타가 된다'는 이 단순하면서도 숱하게 반복되어 온 듯한 줄거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줄거리를 보기 위해 뮤지컬을 택하지 않는다. 그 단순한 플롯으로 인해 이야기전개의 이해가 쉽고 또한 평범한(?) 소녀의 탭댄스와 군무를 보기 위해 열광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 사랑이야기가 들어간다. 허영에 가득찼으면서도 과거만을 기억하려 드는 스스로의 실력을 모르는 도로시와 그녀의 애인간의 사랑과 페기를 보면서 근언함을 풀어가는 줄리앙과 페기의 사랑이 그것이다. 아쉽게도 후자의 경우 내가 본 뮤지컬에서는 은근한 복선으로만 나타내어졌고, 전자가 도드라졌다.
항상 내 곁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그리고 숨어만 다녀야 하는데도 개의치 않는 남자.. 그러면서도 원망을 하지 않는 사람... 그런 남자가 있기에 도로시는 행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최고의 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여겼기에 부자들을 꼬셔서 주연배우로 출연할 연극에 후원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허영심은 자연히 남들의 무시를 낳기 일쑤였고, 결국 페기의 등장으로 인해 그녀는 사랑을 다시 뒤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쓰러질때 뒤에서 받아서 안아줄 그 남자가 있기에... 그녀는 사랑으로 올 수 있었던 점이다.
페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언제나 드라마의 백미는 반전이 아니던가. 주변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심어주어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 그녀는 우연한 사고로 막을 내릴뻔한 뮤지컬의 주연을 따낸다. 그리고 힘든 연습과정을 거쳐 진정한 스타로 태어난다.
처음 가본 '팝콘하우스'는 뮤지컬 전용극장 답지 않게 다소 빈약한 무대 시설을 보여줬다. 특히 관객석이 최악이었는데, 급격한 경사도로 인해 앞사람의 움직임으로 방해받지 않는 시야각은 좋았지만 냉방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연신 땀을 닦아야만 했고, 좌석간 간격이 너무 붙어있어서 편한 자세로 감상을 할 여유를 가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도 귀를 간지럽히듯 생생히 들려오는 듯한 잘 갖추어진 탭댄스의 흥겨움, 그리고 부족한 시설에 대한 보강차원에서 기획된 듯한 여러가지 무대장치... 비록 조금 흐릿하긴 했지만 중간에 무대위 원형회원바닥에서 춤추는 여자배우들을 보여주는 대형 거울은 제작진의 성의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막과 막 사이를 연극과 실재를 구별하기 힘들게 한 구성이나, 자연스레 울려퍼지는 음향감 또한 몰입에 도움을 주는 요소였다.
조금 아쉬운 점은 2층 관객을 위한 배려였는데, 아무래도 멀어서 배우들을 알아보기 힘들어서 그런지 연극 자체에 대한 이해가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 배우들 하나하나를 멀리서 구별하기가 힘들었는데 겨우 전수경 정도를 알아봤다. 이 점은 별도 스크린 등의 설치로 막간을 이용한다든지 해서라도 충분히 만회가 가능했던 부분이라 여겨지기에 1% 부족한 성의를 기대해본다.
최근 영화에서 감초 조연들의 주가가 치솟듯 '브로드웨이 42번가'역시 전수경이라는 감초 조연의 연기가 무척 돋보였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심각할 수 있는 부분조차도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 뮤지컬에는 심각할 수 있는 부분조차도 정말 적은 편이다.^^) 그리고 중후한 연기를 보여준 줄리앙 역의 배우 역시 카리스마 그 자체로 무대를 장악해주었다. 특히, 막판에 조금 망가지는 듯한 순식간에 무너지는 연기를 보여줄 때의 신선함은 대단했다.
줄리앙은 페기에게 말한다. ' 최선을 바라지 않아. 난 니가 최선보다 잘하길 바래. 너의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원해' 라고 말한다. 누구나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이미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안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말이다.
성공은 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선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욕심이 아닌 스스로의 열정과 갈망이 있을 때 성공한다. 그게 인생이고, 또한 바람직해야할 인생의 법칙이다. 이 모든 인생의 함축이 '브로드웨이 42번가' 라는 뮤지컬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페기라는 순진하기만 한 아가씨를 통해서 말이다.
왜 우리 사회는 페기를 감싸주는 '먼지같은 코러스 걸'처럼 따뜻할 수 없을까? 인생이 모두 들어있지만 왜 우리는 페기같이 순수해져서는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만 하는지 자괴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이미 사라진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들에 대한 회고록일 수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나의 재능을 질투가 아닌 호감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억누르기 바쁜, 천재가 탄생하기 힘들다는 이 나라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페기 소여는 뮤지컬 속에서 살아가는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닌, 우리가 닮아야 할 과거로의 회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바라고픈 순수함에 대한 상념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는 작품일지 모른다. 그게 내가 '브로드웨이42번가'를 보며 느꼈던 감상이다.
'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먼지같은 코러스 걸의 하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젊다. 젊기에 최선을 넘어서는 열정을 선보일 시간이 있다. 우리는 페기 소여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스스로의 삶에 만족을 하고 살아가는 뮤지컬 속 배우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소우주가 곧 하나의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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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우철(칼럼니스트). 티키프렌즈 1기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
geniwoo@naver.com
cy/bluewoo에 사랑과 문화관련 칼럼 운영중
수필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려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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