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42번가'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1)
작성일2004.08.12
조회수11,475
문화공연에 대한 평을 쓸 때... 항상 솔직하고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느낌이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평의 솔직함은 정보로 작용하기 보다는 거슬리는 가시로 작용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언제나 말한다. 난 이런 사람이라 이렇게 쓰는 것이니까 그 환경상의 관점 차이를 미리 알고서 내 글을 읽어달라는 점을 말이다.
'브로드웨이42번가'는 내가 2년전 유시어터 에서 봤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2기 공연을 끝으로 하면 2년만에 보게 되는 뮤지컬이다. (백사난을 뮤지컬로 볼 수 있겠지..) 따라서 공연평이라는 것을 전문적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관련 정보를 지닌 초보자이다. 여기에서 글을 쓰는 방향의 한계가 생긴다. 이 뮤지컬에 대한 객관적 비교대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공연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위주로 할 수밖에 없다. 이점을 유념하면서 모쪼록 도움되는 공연글이 되었으면 한다.
12시가 되면 꼭 다시 돌아가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입은 드레스는 허름한 옷으로 변하고 공주만 타는 듯한 화려한 마차는 호박으로 돌아가고 말죠. 난 신데렐라에요... 왕자님을 만나 화려하게 변하는 신데렐라...
'콩쥐팥쥐'와 '심청전' 그리고 물건너온 고장의 '신데렐라'스토리...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쁘고 착한 여자주인공이 각자의 고난으로 인해 고생을 하다가 왕자님을 만나서 왕비가 되어 성공한다는 부분이다. 동서양을 통틀어서 약자의 위치에서 오래 존재해왔던 여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가 이런 소위 말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로드웨이42번가'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기존 신데렐라 이야기를 비껴나간다. 앞에서 예를 든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은 스스로가 아닌 남의 도움이나 신비스러운 우연으로 인하여 성공시대를 열었다면 '브로드웨이42번가'의 페기는 순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한다. 물론 여기서 신데렐라를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그녀가 여자주인공이며 전형적인 징징짜기를 역시 선보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형 신데렐라 변종 스토리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점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오면서도 계속적으로 적용되어 오고 있는 스토리라인이라고 한다면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반증해주기 때문이다. 대중은 신데렐라를 좋아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발달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국을 비롯한 숱한 국가들이 왕정을 폐지하지 않고 있는 점만 해도 알 수 있다. 왕정이 존재할 때 '신데렐라'가 탄생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파리의 연인'이 인기상종가를 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구도만을 답습하는 탓에 한국드라마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필자는 우연히 큰집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이 드라마의 재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왜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난 김정은의 존재감을 그 이유의 절반이상으로 봤다. 항상 밝은 행동과 발랄함으로 주변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누구나 그녀를 보면 친절해질 수밖에 없고 부러움을 느끼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그런 캐릭터가 바로 배우 김정은이 연기하고 있는 주인공이었고, 이는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로 느껴졌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항상 그 사람과 있으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왠지 모르게 같은 일을 처리할 때라도 조금 더 신경써주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순수함을 넘어선 순백색의 영혼을 지닌 그녀들에게 사람들은 힘을 잃고 순종하게 된다.
페기 소여가 그런 Heroin이다. 그녀는 넘치는 끼와 탭댄스 실력, 그리고 외모와 노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게 할만큼의 재능을 지닌 여자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최고의 호감도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완벽한 실력과 어설픈 행동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철딱서니 없게 느껴지지만 누구도 부인못할 순수함과 선함을 지녔다. 그래서 그녀를 싫어할 수 없다. 재능을 뽐내는 것 보다는 스스로를 감출 줄 아는 점을 동양에서는 '겸양지덕'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왜 그걸 보여주는게 잘난체가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깨끗한, 시기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그사람을 잘난척쟁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걸 질투로 느끼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지지 않을까?
'브로드 웨이 42번가' 뮤지컬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 몇안되는 악역으로 나오는 도로시마저도 마지막에 나와서 공연을 앞두고 두려움에 가득찬 페기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초보에게 힘이 되는 베테랑이 들려주는 '넌 할 수 있어'를 말한다. 무뚝뚝하면서도 장중함을 지닌 엄격한 듯 느껴지는 줄리앙 조차 페기를 위해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음악의 힘은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넣을 만큼의 우울함을 주기도 하고 ('Gloomy Sunday'), 그리고 행복함과 들뜨는 기쁨을 느끼게 할 만큼의 강력함을 지니고 있다. 밝은 소녀의 성공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준비한 음악이 가득한 뮤지컬이라면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조차도 밝아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이러한 따뜻한 사람들의 존재를 이해하게 한다. 다만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따뜻함이 조금 지금 내가 처한 사회 속의 역경을 더 힘들게 느끼게 한다는 점은 개인적인 고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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