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쟁이 유씨] 죽음이 있으니까 삶도 있는 게지..

사람에게 있어 죽음처럼 확실한 미래가 또 있을까. 당장 오늘 무슨 일이 생길진 몰라도 언젠가 죽는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단어’로만 느껴진다. 묘하게도 말이다. [염쟁이 유씨]는 죽음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하는 연극이다. 그리고 극장문을 나설 때면 죽음보다 지금 나의 삶에 대해 더 되묻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상 대대로 염을 업으로 살아온 염쟁이 유씨. 그는 일생의 마지막 염을 공개하며 그가 겪은 여러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가 접한 죽음은 단지 영혼이 떠나버린 시신 뿐이다. 하지만 유씨는 그의 죽음으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죽음에 삶이 묻어있고, 삶에 죽음이 묻어있어서 가능할 것이다. 소재는 죽음이지만 암울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수시로 관객들은 배꼽을 잡으며 웃을 수 있다. 배우 유순웅은 청국장 같이 진한 입담으로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말하고 대화한다. 조폭이 죽어 귀신이 돼 찾아온 일, 염쟁이가 하기 싫어 아버지와 실랭이를 벌였던 일, 아버지 유산을 둘러싸고 한심한 작태를 보이는 자식들 이야기… 염쟁이로 살아오면서 겪은, 웃지 못할 이야기를 웃으면서 담담하게 내보인다. 곧 자신의 인생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는 이는 극중 염쟁이 유씨와 배우 유순웅을 완벽하게 동일시 할 정도로 유순웅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염쟁이 유씨]는 등장인물이 유순웅 혼자인 모놀로그 드라마다. 하지만 작은 소극장 무대로는 이 한 사람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겨워 보일 정도로 그의 연기에는 생명력이 있다. 그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숙달된 솜씨로 조심스럽게 염을 한다. 새삼스럽게 죽음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는 말한다.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그가 공연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거 같다. 새삼 의식적, 무의적으로 죽음에 대해 잊어버리고 산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 연극의 재미있는 점은 관객이 연기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기자 역으로 염쟁이 유씨를 도와주는 관객도 있고, 한심한 자식들을 연기하는 관객들도 있다. 유씨의 소주를 받아 마실 수도 있고, 명함을 받을 수도 있어 소극장은 관객과 함께 울고 웃는다. [염쟁이 유씨]는 지난 2004년 충북 청주에서 창작극으로 초연돼, 지난해 서울 대학로로 입성, 벌써 1년째 공연 중이다. 입소문이 퍼져, 젊은이부터 중년을 넘어선 관객들로 극장은 항상 만원. ‘죽음’이라는 존재를 웃으며 삶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염쟁이 유씨의 공간은 그래서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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