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키프렌즈] 연극 열전 열 번째 이야기 <불 좀 꺼주세요> 관람기........
작성일2004.09.10
조회수10,763
'솔직히,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말이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에 진실성을 더하기 위해서 ‘솔직히’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그렇게 애써서 덧붙이게 되는‘솔직히’라는 말 뒤로 우리는 한 걸음 우리들의 본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이는 ‘솔직히’라는 말 대신 술 한 잔에 기댐으로,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성에 기댐으로 그렇게 자신의 본능에 귀 기울여 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남 몰래 해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극 열전 열 번째 이야기 <불 좀 꺼주세요>는 그런 이야기다.
외재적으로 보여 지는 나 자신(이성)과 내면적으로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나 자신(본능),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내 주변의 또 다른 누군가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바로 이 연극이다.
처음 <불 좀 꺼주세요>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18세 이상 관람 가능이라는 특별한 제재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뭔가 이상야릇한 상상을 하게 되는 건 나도 모르게 세속적인 사회에 젖어 그렇게 나이를 먹어버린 탓이었을까? 그때 마침 눈에 띄는 공연 팜플렛의 ‘우리의 삐뚤어진 상상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는 문구가 일침을 가하는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그때까지의 공상을 확실하게 날려 버리는 듯 했다.
소극장 무대의 진정한 맛이라면 아마도 배우들의 눈빛 하나, 손가락 떨림 하나까지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극 역시 그런 면에서는 탁월하게 관객과 하나 되는 연극임을 공연 시작에서부터 명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해 준다. 외재적인 나와 내면적인 나라는 어떻게 보면 쉬운 듯하지만 자칫 헷갈리기 쉬운 극의 전개에 대한 가이드처럼 등장한 엉뚱한 두 조연배우. 연극의 끝까지 이들에게 주목하라, 그러면 유쾌한 웃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1인 4역이라는 어려운 연기를 감칠 맛 나게 포장해 낸 그들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자칫 진지성에 치우치기 쉬운 정극에서 엔돌핀 같은 유머 장치인 셈이다.
브라운관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요즘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복잡한 혈연관계 이를테면 이복, 동복 관계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로 엮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토록 쉽지 않은 이야기들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말 그대로 순탄치 않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싶게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도 접하기도 어려운 듯하지만 어딘가에는 있을법한 이야기에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 연극을 통해서 비슷한 드라마 속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숨기고 싶은 과거를 갖고 있는 역정적인 한 남자의 인생과 그와 함께하는 친구들, 사랑하는 여인, 부인, 어머니, 아들 혹은 동생. 평범한 당신이라면 아마도 꿈속에서나 맛볼만한 파란만장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부한 드라마 같다는 지루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했다. 결국 외재적인 나와 내면적인 나로 이분되었던 두 남녀가 진정한 스스로의 솔직한 본능에 귀 기울여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받아들임으로써 하나 된 나를 찾는 것으로 극은 막을 내린다. 끝내 밝음이 아닌 ‘불 좀 꺼주세요’라는 대사가 필요한 어둠 속에서였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잣대로 인간의 내면을 이분화하기 좋아하는 듯 하다. 착한 나와 나쁜 나, 이내 내 마음 속 날개달린 천사와 뿔 달린 악마를 떠올려 본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성과 본능이라는 잣대로 한 번 더 우리는 조각내어지고 사회라는 이목에 의해 본능보다 한 뼘 더 이성에 무게를 옮겨 둔 채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마음 속으로는는 이러고 혹은 저러고 싶지만 사회의 통념과 제도에 의해, 주변의 눈길에 의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어항 속 알 수 없는 벙긋거림으로 뭔가를 알리고 싶어 하는 금붕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극 속 두 남녀, 강창영과 박정숙이 결국 수많은 갈등과 방황 속에서 비록 어둠 속에서였더라도 하나 된 자신이 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솔직히’라는 언어적 수식어가 아닌 마음의 소리를 찾아서 진정으로 솔직해져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지금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마음 편안함으로 우리의 일상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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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티키프렌즈1기 이현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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