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우맨] 잔혹하고 슬픈 핏빛 동화

아이들에 가해진 연쇄 살인과 용의자로 지목한 한 소설가. 경찰서 취조실… 연극 [필로우맨]은 마치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아나가는 추리 스릴러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물이 아니다. 범인은 1막이 끝나가기도 전에 금방 밝혀지니까. 아니 그 전에 관객들은 누가 범인인지 대략 눈치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필로우맨]은 그 자체가 잔혹한 소설이자, 슬픈 핏빛 동화다. 괴기한 소설을 쓰는 카투리안은 영문도 모른 체 경찰서 취조실에 끌려와 형사들에게 취조를 당한다. 두 아이의 살인사건과 한 아이의 실종에 용의자로 지목된 것. 카투리안이 쓴 소설의 내용대로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자 형사들은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분노하고, 점차 카투리안의 잔혹한 소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쓴 소설은 음침하고 잔인하다. 게다가 모두 어린아이들이 학대 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난 ‘작은 사과맨’과 ‘강가의 한 마을’을 비롯해 ‘어린 예수’ ‘작가와 작가의 형제’ 등은 잔혹도가 상당히 높아 듣고만 있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순수함을 훼손당한다. 아직 철모르고 힘이 없는 그들은 어른에 의해 상처받고 폭력을 받아 쓰러진다. 카투리안과 그 형이 겪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무참한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 깊은 슬픔과 동정이 있어서일 거다. 잔혹이 이야기가 진행되며 울려 퍼지는 순수한 어린 아이의 노랫소리가 공포감보다는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필로우맨]에서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선 최민식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보너스다. (최민식보다 카투리안에 집중할만큼 이야기는 강렬하다) 카투리안역을 맡은 최민식에게선 올드보이와 파이란에서의 그가 떠오른다. ‘연극적’ 보다는 ‘영화와 연극 사이’를 오가는 그의 연기는 카투리안에게 무게감을 실어준다.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은 윤제문이 맡았다. 순수하지만 순수함의 농도만큼 잔혹해져 버린 캐릭터에 생명감을 불러일으켜 박수를 받았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필로우맨은 상징적인 캐릭터기도 하다. 불행하고 처참해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자살을 권유하고 이를 돕는 마음씨 좋은 베개인간. 끔찍하지만 슬픈, 핏빛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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