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키프렌즈] 뮤지컬 달고나를 보고

난 20대 후반의 70년대 생이다. 휴대폰, 미니홈피, MP3, 인터넷 소설로 뒤덮인 세상을 살면서 내가 10대가 아니라는 것에 늘 아쉬워했지만, “달고나” 이 뮤지컬을 보는 동안 만큼은 내가 70년대에 태어나 그때의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음은 물론, 왠지 뿌듯한 느낌마저 들었다면, 나이가 들어가는 징조일까? 추억의 물건을 파는 홈쇼핑 PD 세우. 그는 추억을 팔아 사람들을 향수에 젖게 하지만 막상 자신의 추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보통 첫사랑은 잊혀진다고 한다. 더군다나 여자는 자신의 첫사랑을 100% 잊고 살수 있다고. 그러나 세상엔 그런 여자만 있는 건 아니다. 첫사랑의 꿈이 담긴 타자기를 사서 제 자리를 찾게 만드는 장독대 소녀 지희. 그녀는 세우를 그녀와 함께한 추억 속으로 불러들여 이 뮤지컬을 시작하게 만든다. " 어린 시절, 세우와 지희는 장독대가 만남의 장소이자 놀이터였다. 서로의 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독 대에서 두 사람의 사랑과 꿈도 커져 갔다. 학창시절,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며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던 사랑의 편지들은 두 사람만의 장소 장독대의 항아리 속 보물상자에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다.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이별하게 된 두 사람. 40대가 되어 다시 찾아온 장독대에서 세우는 첫사랑 지희의 러브 레터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추억들과 젊은 날의 꿈을 노래한다." <달고나 홈페이지 줄거리에서 인용>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내용이었다. 40대가 추억하는 첫사랑이란 약간 퇴폐적인 불륜의 냄새가 나는 3류 멜로가 되던지, 아님 한없이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하고 집착하는 뻔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뮤지컬 “달고나”는 후자쪽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꿈과 순수했던 시절에 집착하는 점은 뻔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독창적이었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그룹 ABBA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면, 뮤지컬 “달고나”는 ‘우주소년 짱가’,’담배가게 아저씨’,’이별이야기’,’사계’등 70-80년대 유행가들을 모아 만든 뮤지컬이다. 시대적 상황에 적절하게 배분되어진 음악들은 관객이 음악과 내용에 호응하고 분위기가 살기 힘들다는 창작 뮤지컬의 한계를 극복하기에 좋은 시도였다. 또한, 뮤지컬 등 문화공연 관람에 익숙한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이 보고 즐기기에도 무리 없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술이 취해서 아들을 향해 꿈을 키우라고 강조하는 만화가게 아저씨 세우 아버지가 부르는 트롯트풍의 “은하철도 999” 주제가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 무능력한 가장, 꿈을 가진 아들에 대한 사랑 등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에 그보다 좋은 선곡은 없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무대배경 또한 아기자기하다. 70년대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마을. 장독대, 굴뚝, 담벼락, 빨랫줄, 구멍가게, 슬라브지붕 등 이제는 사라져가는 소품들이 모여 가난하지만 향수가 어린 그 시절을 표현한다. 회전하는 바닥도, 거대 set장이나 장식도, 눈길을 끄는 화려함도 없지만 빨랫줄위에 널린 이불을 극장입구, 바닷가 텐트 등 다양한 용도로 쓰는 아기자기함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특히 세우와 지희가 대학 MT로 간 강릉에서 기타를 들고 베낭을 맨 일행들이 저녁노을 속에서 담벼락으로 설정되어있던 무대 배경 위를 일렬로 걸어나가는 장면은 표현이 깔끔하면서도 그 느낌은 충분히 남아 한편의 멋진 그림을 보는 느낌마저 자아낸다. 그밖에 성우와 배우들의 과장된 말투와 표정이 담긴 영화 촬영 장면, 담배가게 아가씨에게 고백하는 청년의 스케치북 고백 등은 이 뮤지컬에서 빠뜨리지 않고 봐야 할 부분들이다. 한밤중 편지지를 펼쳐놓고 한자한자 써내려 갔던 편지, 고무줄 놀이, 뽑기, 뻥이요 하고 터지던 뻥튀기 과자, “철수야 밥먹어라” 하고 동네공터를 향해 들려오던 엄마 목소리, 짱가와 요술공주 세리, 보물이 담겨 있던 양철통, 두부장수 고철장수 등 잊고 살았던 그 시절 소리와 냄새들이 뮤지컬을 보는 2시간동안 고스란히 살아났다. 갑자기 떠오르던 나의 소꿉놀이 친구들, 고무줄 놀이할 때 부르던 노래, 그리고 첫사랑 그. “아~ 오늘은 집에 가서 그때 그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어봐야지” 하고 결심하게 했던 2시간. 2시간 뮤지컬 한편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면 달고나 관람은 권할 만 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극의 전반에 걸쳐 흐르기엔 “그때 그 시절 추억 회상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뮤지컬의 대부분이 에피소드 중심이어서 보는 순간 순간은 재미있고, 즐겁지만 뮤지컬이 끝나고 ‘이 공연에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뮤지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가 않다. 쉽게 말해서, 뮤지컬 “달고나”는 작고 재미있는 감동이 있는 단편 만화영화를 엮어 놓은 기분이 들 망정 한편의 서사적이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창작 뮤지컬 “달고나”에게 가슴에 오래 남는 감동마저 기대했다면 나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한없이 재미있다가 어의 없게 감동하며 끝나버린 “사랑은 비를 타고”보다 “달고나”는 확실하게 감동보다 재미쪽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감동은 없지만 어이없게 끝나는 당혹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 뮤지컬이 가진 단점이자 장점이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뮤지컬 “달고나”의 한 장면이나 음악이 아니다. 나의 어린시절, 내가 살았던 집과 놀이터, 나의 소꿉놀이 친구들, 내가 불렀던 만화주제가 등 철저하게 관객 자신의 추억에 빠져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뮤지컬 “달고나”가 가진 힘이였다. ==================== 글쓴이 : 티키프렌즈1기 박경화님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