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길들이기] 지식인이 되고픈 그녀, 술주정뱅이 교수 찾아가다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가득한 교수실. 권태로운 얼굴을 한 중년의 문학교수가 서성인다. 무언가 고심을 하던 그가 생각 났다는 듯 방긋 웃으며 향한 곳은 수 많은 책이 나란히 정렬한 책장, 아니 그 뒤에 숨겨놓은 술병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프랭크. 문학교수이지만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진력이 났으며, 결혼에도 실패했고, 시를 쓰는 것도 포기한 채 살아가는 권태로운 인생의 지식인이다. 어느 날, 그 앞에 리타라는 여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26살의 미용사. 결혼도 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을 주체 못해 개방대학(Open University)에 등록하고 프랭크 교수를 찾아간다.
미용사와 교수의 밀고 당기는 수업, "지식인이 되고 싶다고요!"
연극 [리타길들이기]는 술주정뱅이이자 권태로움에 휩싸인 프랭크 교수와 배우지 못해 무식하지만 지적인 욕망이 강한 리타가 만나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는 드라마. 이 작품의 묘미는 단연 리타다. 첫 등장부터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짜증나요”로 시작해 엄청난 수다를 떨기 시작한 그녀는 천박하다 할만한 말투와 옷차림으로 프랭크 교수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씬이 바뀔 때마다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변모해간다. 처음에는 발음도 제대로 못했던 영국 소설가 포스터(E.M. Foster)의 작품을 비평해 내고, 뿐만 아니라 페르귄트(Peer Gynt), 헨리 입센(Hemrik Ibsen), 윌리엄 블레이크(W. Blake)에 대해 교수와 설전을 벌일 정도다.
그녀의 의상과 말투의 변화는 점점 선망하던 ‘진짜 대학생’ 내지는 ‘지식인’들의 그것과 비슷해지지만, 프랭크 교수는 점점 그녀의 진짜 모습을 잃어가는 게 안타깝다. 물론 리타에 대한 이성적인 끌림과, 그녀가 점점 다른 사람들과 교류 하는 데에 대한 불만과 질투도 한 몫 한다. 이젠 그녀가 그리도 좋아하던 통속소설 ‘욕망의 도시’를 문학이 아니라며 외면하는 리타와, ‘읽어보니 끝내주던데’하는 프랭크. 그들 사이에서 나오는 답은 무엇일까.
이승비 최화정, 각각 다른 버전 대본으로 열연
[리타길들이기]는 1980년 런던에서 초연해 영화로도 제작되며 인기를 끈 작품. 2002년에는 현대 흐름에 맞추어 개작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91년 최화정, 윤주상, 이승철 주연으로 초연, 1997년, 2004년에도 공연되며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 멤버인 최화정, 윤주상 커플과 이승비 박용수 커플이 열연한다. 독특한 것은, 이 두 팀의 공연이 확연히 다르다는 거다. 이야기 줄기는 같지만 의상, 동선은 마치 다른 공연처럼 각기 개성있고 다르다. 게다가 최화정 윤주상은 초연 대본으로 공연하고 이승비 박용수 팀은 개작 대본으로 공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사도 다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두 팀의 공연은 각각 다른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이승비, 박용수 팀의 [리타 길들이기]는 정석을 보는 듯한 착실한 공연 전개와 감정 얼개로 단단한 감정 몰입을 유도한다. 유들한듯한 박용수(프랭크)의 연기와 엉뚱하고 깜찍하지만 지식에 대한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이승비(리타)의 연기는 잘 차린 밥상을 배부르게 먹은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서서히 변해가는 리타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이승비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최화정, 윤주상 커플의 [리타 길들이기]는 좀 더 코믹해 객석의 웃음을 유도한다. 28살의 나이로 설정됐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최화정은 털털하고 삐딱한 한 리타로 등장해 주목을 끈다. 윤주상의 프랭크는 좀 더 엄격하지만 그만큼 정도 더 많은 캐릭터로 그려졌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는 1980년 거대 노동계층이 존재했었을 때 쓰여졌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의 관객에게도 통하고 있다. 배움의 어려움과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은 지금, 여기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과 헤어진 리타가 눈물을 흘리며 “내 맥베스 리포트 어땠나요?” 물을 때, 웃음이 피식 나오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 송지혜(인터파크ENT song@interpa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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