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도둑> 도둑이 당당해져 버린 '황당 시츄에이션'
한 밤 중, 도둑이 고급빌라에 잠입한다. 주인 내외는 모두 외출을 해 오늘 밤 집이 비워있을 거란 ‘고급’ 정보를 입수한 도둑은 슬그머니 고급 빌라의 거실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제 마음 놓고 값비싼 물건들을 챙겨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안 들어올 것이라는 주인이 갑자기 들어오면서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그의 정부와 함께. 주인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정치인이다.
연극 <도덕적 도둑>은 1997년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다리오 포의 코미디 연극. ‘작가는 반드시 시대와 연결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뜻대로 이 작품 역시 시사풍자가 강한 코미디다.
<도덕적 도둑>에 도덕적인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정치인은 권위적이고 가식적인 인물. 돈의 힘이 작용하는 비례대표로 정치인이 됐지만 거실에는 ‘기호1번’이 당당하게 쓰여진 유세포스터가 붙어있고 화려한 거실 한 켠을 차지하는 보석들 중 태반이 가짜다. 결혼은 했지만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정부를 집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그의 아내 역시 겉은 사람 좋은 여성이지만 사실 남편 못지 않게 당당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도둑보다 당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이 코믹하게 이어진다. 남편의 정부와, 아내의 정부, 두 정부 사이의 관계를 알고 나면 이들이 왜 쉬쉬하는 지 알게 될 것.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 외칠 수 없는 그들의 사정은 폭소를 선사한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00당 최종구야!”를 반복하는 젊은 정치인 때문에 씁쓸한 웃음도 함께.
등장 캐릭터들은 작품 후반부에 갈수록 빛을 발한다. 바꿔 말하면, 전반부는 약하다는 이야기. 중반 이후를 위해 벌리는 포석은 조금은 과장된 연기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운 웃음과 기발한 발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작가인 다리오 포의 내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풍자를 정치인의 불륜이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로 접근했지만 요즘 우리나라 시류에는 새삼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주제다. 결말은 절반의 해피엔딩. 도둑의 기지로 무사히 위기를 넘기지만(그래서 ‘도덕적’인 도둑일 수도) 그런 미봉책이 얼마나 평화를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어느 정도의 몸 개그와 어느 정도의 과장, 여기에 정치인에 대한 일격으로 90분이 훌쩍 지나가니, 코믹한 연극을 보고싶다면 리스트에 추가해보자.
글: 송지혜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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